교양
백수인 (조선대 명예교수)
등록일 : 2023.05.20
광주 분수대.jpg
1980년 5월  광주 도청앞 분수대  모습

 

80년 오월 광주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외로운 섬이었다
파도조차 닿지 않은 피 묻은 감옥이었다

 

우리들은 매일 도청 앞 분수대를 중심으로 모였다
노무자도 식당 종업원도 대학생도 고등학생도
회사원도 교사도 운전기사도 청소부도 
우리들은 모두 시민의 이름으로 평등했다

 

분수대는 더 이상 물을 뿜어내지 않고
시민들의 열정만을 뽑아올렸다
분수대 난간에는 누구든 올라 소리칠 수 있는
자유가 펄럭이고 있었다


어떤 이가 마음속 울분을 토하면 그 분함이
모두의 가슴 속에 메아리쳤다
어떤 이가 올라와 “살인마 전두환”을 규탄하면
모두가 일어나 박수로 환호했다


그 때였다
어떤 이가 나가서 한 옥타브 높은 소리로 외쳐댔다
“미국 항공모함이 부산항 가까이 오고 있답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흥분했다


정의의 나라 미국, 세계의 민주경찰 미군이 오면
독재의 뿌리, 군부의 불의와 역리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민주주의를 꽃피울 정의 세상을 꿈꾸었다
빛나는 햇살이 금남로에 출렁였다

 

며칠 후 새벽 광주는 침몰하는 섬이 되고 말았다
하늘에서 총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의 붉은 피가 금남로 위에 흥건했다
시민들의 가슴 가슴엔 피멍 같은 구멍이 송송 뚫렸다

 

전두환은 광주를 그렇게 짓이기고 
광주의 민주 열망을 폭파시키고 
기어이 “대통령 각하”가 되었다


우리는
미국이 민주의 편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사자가 아니라
세계 시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 말 잘 듣는 ‘각하’의 편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를 지켜주는 형제의 나라 미국
굶주린 우리에게 밀가루를 공짜로 주고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나라로 숭상해야 한다고
유신 시절 귀에 못이 박히게 배워온 우리들의 가슴에서
어느새 성조기가 불타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미문화원이 불타기 시작했다


* 백수인 시인은 1954. 4. 12. 전남 장흥 출생. 2018년 광주문학상 수상하고 전남 광주 조선대 명예교수로 고향 전남 장흥 향토사학자이며 반미 자주 통일 노동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문단 <민족작가연합> 고문으로 후진양성에 문학적 기량으로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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