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ㅡ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 (2회)
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등록일 : 2024.06.08
1982년 3월 18일 발생한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은 반미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png.jpg
불타는 부산 미국문화원. 1982년 3월 18일 발생한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반미투쟁의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오직 계급 대 계급의 모순만 강조하면서 통일전선에 대해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크다. 국제주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주의는 각 시기마다 특수한 조건에 맞춰 확장되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맑스·엥겔스는 노동자 국제주의를 내세워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단결을 주장하면서도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 민족적 통일을 위한 투쟁, 민족해방투쟁, 노예제에 맞서는 투쟁을 강조하면서 각 시기마다 특수한 국제주의 과제를 폭넓게 제시하였다. 레닌과 스탈린, 디미트로프는 제국주의 전쟁의 시기로부터 반파쇼 인민전쟁의 시기까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확장하였다. 

 

일부 교조주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은 민족주의 일반을 부르주아 민족주의로 규정하고 (半·新)식민지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부정한다. 

 

민족문제에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좌경적 오류는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제와의 투쟁, 남북문제 등을 소홀히 한다...
최근에 또 하나의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맑스레닌주의라는 적대적인 이념을 적당히 버무려서, 민족문제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을 부정한다.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깃발에 “저항적”이라는 분홍색을 칠해서 노동자계급에게 강매한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의(이하 “노정협”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노정협의 맑스레닌주의 총서3 <민족과 계급>에서는, “조국은 하나다”(김남주)라는 시를 소개한다...
조국과 민족은 정말 하나일까? 민족대단결은 가능할까? 그러나 맑스는 말했다.

 

“노동자들은 조국이 없다. 그들에게 없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누가 옳은가? 시인에게 남과 북은 모두 조국이다. 남과 북의 분단을 거부하고, 통일된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은 시인에게는, 그리고 민족주의자에게는 지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배타적으로 사랑(편애)할 조국과 민족은 없다...
민족은 몰계급적인 개념이다...따라서 사실은 “민족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계급문제로 불러야 한다...
“해방” 이후에 한국에서 노동계급의 혁명 진영은 몰살되었다. 혁명이론이 실종되었다. 노동자 국제주의도 잊혀졌다. 결국 “반미 반제 통일운동으로 표현된 민중의 항쟁”은 “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문제: 부르주아 민족주의인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인가?, 이현숙/자유기고가)

 

김남주 시인.jpg
'조국은 하나다'를 외친  김남주  시인

 

이는 맑스와 엥겔스가 아일랜드와 폴란드에서 나타나는 외세에 반대하여 나타나는 민족주의를 적극 지지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의 논쟁에서 국제주의를 내세워 자결권을 부정하는 것을 비판하는 레닌의 민족문제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이후 코민테른 내에서 반동적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대비하여 민족혁명투쟁, 민족해방 투쟁을 적극 지지했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현숙은 레닌이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애국주의, 국가주의를 내세우고 이를 사회주의를 자처하면서 동조하는 사회배외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반동적이라고 비판한 문구 일부만을 근거로 민족주의 일반이 반동적이라고 규정한다. 이현숙은 “약소민족 부르주아지는 1930년대 대공황부터 반동화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반동화 된 것으로부터 민족주의 일반이 반동화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민족문제는 순수하게 노자 간의 계급적 문제로, 사회주의혁명의 문제로, 노자 양자의 국제주의적 문제로 전화되었다”는 주장은 민족문제의 상대적 고유성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민족문제 자체를 부정하고 계급문제로 환원하는 것으로 전혀 차원을 달리 하는 문제다. 이는 결국 맑스레닌주의의 민족문제에 대한 노선에도 반하고 현재 우리의 운동의 진전에도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강령 조항들 가운데 어느 한 조항을, 예를 들어 민족자결 조항을 제국주의 하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거나 ‘환상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삭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오류일 것이다. 민족자결권이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절대적, 경제적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겠고, 아니면 관례적, 정치적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겠는데, 둘 중 어느 한 경우일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에 그 주장은 이론상 근본적으로 틀렸다. 첫째로 자본주의하에서 그런 의미로 실현될 수 없는 것은, 예컨대 노동화폐라든가 공황의 근절 같은 것들이다. 민족자결도 그와 같은 식으로 실현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둘째로 그런 의미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논박하는 데는, 1905년에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분리된 예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테제))


레닌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가 확립될 때까지 문제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 민족 사회주의자들의 위선과 비겁을 특별히 고려에 넣는 명확하고 정확하게 정식화된 정치 강령으로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요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1989년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임수경이 북한을 방문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png
1989년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임수경이 북한을 방문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러시아혁명 이후에 당시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식민지에서 민족주의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후진국에서의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 문제를 특히 강조하고 싶다. 바로 이 문제가 약간의 의견 차이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이 후진국의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을 지지해야 한다고 성명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또 이론적으로도 올바른가의 여부에 대하여 논쟁했다. 이 논쟁의 결과 우리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 대신에 민족혁명운동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적당하는 만장일치의 결정에 도달했다. 후진국의 주민 대다수가 부르조아적=자본주의적 제관계의 대표자인 농민이므로, 모든 민족운동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반대론이 제기되었다. 만일 우리가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 운운하게 되면 개량주의운동과 혁명운동 사이의 구별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구별은 최근 후진 식민지 제국주의에서 완전히 명료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 부르조아 계급이 피억압 민족 내에서 전력을 기울여 개량주의운동을 이식시키는데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국의 부르조아 계급과 식민지 국가의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일정한 접근이 일어났다. 그 때문에 대단히 자주ㅡ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ㅡ 피억압 국가의 부르조아 계급은 민족운동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또 제국주의 부르조아 계급과 협력하여, 즉 그들과 손을 맞잡고 모든 혁명운동과 혁명적 계급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이 사실은 위원회에서 반박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별을 고려하여,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부르조아 민주주의적’이라는 표현 대신 ‘민족혁명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표현 변화의 본뜻은, 공산주의자로서의 우리는 식민지 국가의 부르조아적 해방운동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경우에만, 또 우리가 농민 및 광범위한 피착취 대중을 혁명적 정신으로 교육·조직하려고 하는 것을 운동의 대표자가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만 부르조아적 해방운동을 지지해야 하며 또 지지할 것이라는 뜻이다.(코민테른 2차대회 레닌의 보고, 1920년 7월 26일, 코민테른 자료선집2, 동녘)


코민테른에서 채택한 레닌의 입장은 “식민지에서 중간층의 부르조아민주주의운동과 노동자·농민의 혁명운동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세력이라는 입장”(같은 책 주)이라는 인도 공산주의자인 로이의 좌경적인 테제에 반대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혁명적 민족해방운동, 민족혁명운동, 민족해방운동, 혁명적 해방운동, 혁명운동, 혁명적 해방적 조류 등 각국별로 다양하게 표시하였다고 하는데, 이 주장의 본질은 민족운동이 “개량주의운동과 혁명운동”으로 분화됐으며 공산주의자들이 식민지에서 혁명적인 민족해방 투쟁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구속되는 문부식 씨.png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체포되는 문부식 씨

 

이현숙은 제국주의와 결탁한 현지의 부르주아나 지주들만 보고 민족주의 일반을 반동적으로 변했다고 비판하면서 식민지 내에서 압도적 다수였던 “농민 및 광범위한 피착취 대중”을 무시한다. 그런데 북(조선)에서는 반일무장항쟁을 하면서 제국주의에 맞서 저항하던 노동자와 압도적 다수의 민중은 물론이고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양심적”, “애국적” 지주들조차도 적극적인 통일전선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남만주 일대에서 활발하게 반일 무장투쟁을 하면서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적대적이었고 심지어 이들을 학살하기조차 했던 양세봉 휘하 구국군조차도 반일항쟁에 있어서 통일전선의 대상이었다. 프롤레타리아 해방이 아니라 반일 민족해방이 통일전선의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반면 당시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교조주의자들”은 식민지, 그것도 근거지가 없는 가운데 반일 해방투쟁을 하는 당시의 구체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소비에트 노선 추종을 관철시키려 하면서 좌경 노선으로 일관하였다. 이현숙은 이러한 역사를 무시하거나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현숙의 입장이 당시에 적용되었다면 좌경적 입장으로 경도될 수밖에 없다.

 

이현숙은 앞에서 “민족문제에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좌경적 오류는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제와의 투쟁, 남북문제 등을 소홀히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이는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했는데, 바로 여기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는 “민족문제에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좌경적 오류는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것이”고,  “미제와의 투쟁, 남북문제 등을 소홀히” 하는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현숙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지만 이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의 민족문제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가장 명확한 논리적 형태로, 그리하여 가장 체계적인 형태로 분명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민족끼리 반미자주”하자는 주장을 노사협조주의, 심지어 범죄라고까지 극단적이고 종파주의적으로 매도하는 노사과연의 입장을 가장 극명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노사과연에게는 민족은 없다. 오직 민족은 “몰계급적인 개념”으로 부정해야 하는 것이며 오직 “세계적 차원의 계급문제”만이 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는 맑스주의를 가장 저급한 형태로 축소, 왜곡시키는 것이고 트로츠키주의 특유의 정치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사과연은 민족·동족관계가 파탄하고 적대적 관계로 전환했다는 북의 발표가 있자, 이를 근거로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미제와 그 주구들의 반민족 적대행위로 민족관계가 파탄이 났는데, 이를 “관계”의 파탄이 아닌 민족 자체가 없었다는 근거로 삼고 있다.

 

반미자주화.jpg

 

1980년대 광주 학살 이후에 타올랐던 반미 통일 운동,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친미 물신 숭배가 판치는 한국에서 미제에 맞서는 반미 민족해방투쟁, 민족·동족관계가 파탄나기 전에 남북 간에 협정들(특히 북의 민족대단결과 통일운동)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이현숙은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 “‘저항적’이라는 분홍색을 칠해서 노동자계급에게 강매한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누구에게 강매한 것도 아니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규정한 것이다. 이현숙은 광주학살 이후 신군부 도살자들의 배후에 있는 미국에 맞서 거대하게 타올랐던 반미 자주화 투쟁, 통일투쟁을 자신들의 종파주의적 관념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현숙에게는 혁명시인, 민중시인,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김남주 시인도 몰계급적인 민족주의자에 불과하다. 

 

“‘반미 반제 통일운동으로 표현된 민중의 항쟁’”은 ‘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현숙의 주장은 실제로는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 “부르주아지”라는 회색을 칠해서 부르주아지에게 공짜로 넘겨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사과연은 러우전 이후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신나찌 세력들을 내세워 치르는 전쟁에 대해 서방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와의 투쟁으로 양비론적으로 해석하고, 중국을 “강도와 같은 제국주의”로 규정하면서 집요하게 반미 서방제국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을 회피하고 있다. 노사과연의 민족문제의 실천적 결론은 반미를 대중운동 내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관계의 파탄을 딛고 다시 민족·동족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투쟁에 기권하는 것이다. 미일한에 맞서는 조중러 동맹 사이에서 중립, 양비론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미일한 전쟁동맹에 맞서는 투쟁을 물타기 하려는 것이다. 러우전 이후 노사과연의 정치사는 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면서 대신 러시아, 중국의 제국주의성을 밝히고 폭로하는데 전력하는 것으로 타락하였다.

 

노사과연은 그리스공산당의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을 추종하면서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국가가 압도적 다수의 인민, 민족을 억압, 착취, 수탈한다는 레닌의 테제가 지금 현실에는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노사과연은 억압 민족 대 피억압 민족의 대립은 자본주의 독점의 발전에 따라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이들은 독점이 곧 제국주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곧 제국주의고 그렇기 때문에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 간의 대립일 뿐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연 “제국주의로부터 신식민지 민족국가의 해방이라는 민족문제”는 현대제국주의 체제 하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민족문제는 순수하게 노자 간의 계급적 문제로,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로, 노자 간의 국제주의적 문제로 전화”된 것인가? 노사과연과 이현숙에게는 현대제국주의 체제 하에서는 “신식민지”는 없다. “신식민지”가 없으니 민족해방의 과제는 없는 것이고 자주권의 과제는 국내 부르주아지와의 계급협조에 불과한 요구이기 때문에 내걸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제국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스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노사과연.jpg
노사과연 출판 책자

 

그러나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바로 민족해방투쟁이 아닌가? 아프리카 니제르를 포함해 사헬지역에서 반프랑스, 반미투쟁,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서 나타나는 투쟁이 바로 민족해방 투쟁이 아닌가? 베네수엘라에서 미제의 간섭과 정권교체에 맞서는 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이 아닌가? 쿠바와 조선에서 미제의 침략책동과 제재에 맞서는 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이 아닌가? 한국에서 제국주의의 지배에 맞서 민족의 자주와 자결이라는 “민족해방”의 과제는 사라졌는가? 한국에서 분단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민족민주”적 과제는 사라지고 오직 순수 계급문제만 남아 있는가? 

 

한국에서 민족해방의 과제는 미제국주의로부터 자주와 자결을 쟁취하는 문제다. 우리 운동이 경제주의적 협소함으로 고통 받고 있음에 비춰볼 때, 이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몰계급적인 관점이 아니라 가장 의식적으로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것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 이 땅의 “점령군”으로 들어와 강점하고 있는 미제국주의 군대와 미제국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 지배로부터 해방을 쟁취하는 문제는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자본주의에서 외형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왔다 할지라도 이러한 역사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미제국주의 지배로부터 다방면으로 해방되는 문제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민족 분단해결과 통일을 위해서도, 궁극적 해방을 위해서도 전략적으로 중대한 문제다. 남북이 체결했던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파탄과 오늘날 남북군사협정의 전면적인 파기와 점점 더 일촉즉발로 고조되는 전쟁위기를 막기 위해서도 미제의 군사적 점령과 다방면의 지배, 미일한 군사동맹을 해체하기 위한 투쟁은 절박한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0일 오전 10시 제주 제주시청 앞 광양사거리에서 4.3민중항쟁 76주년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윤석열정권 퇴진과 더불어 4.3민중항쟁을 노동자가 계승하고 발전시킬 해방운동의 역사로 세워나갈 .png.jpg
미군의 전략폭격기 이착륙이 가능한  제주 제2공항의 '군사기지화' 중단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2024.4.30  제주시청 앞)

 

과연 이러한 투쟁이 반동적인 부르주아 민족주의이고 배척해야할 대상인가? 과연 외세 제국주의 자본에 종속, 결탁하며 성장해온 한국의 어느 재벌과 거대 자본가들, 극우들이 친미적이지 않고 반미를 주장하고 있는 사례가 단 한 건이라고 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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