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민 (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등록일 : 2024.06.26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이 2024년 6월 2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6.25 한국전쟁 74주년 기념예배를 하는 모습.png
한국교회총연합( 한교총)이  6월 2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6.25 한국전쟁 74주년 기념예배를 하는 모습.

 

ㅡ 개신교 교단, 진보에서 극우까지 포진했으나 보수가 지배적

 

에큐메니컬 운동은 모든 기독교 교회를 통합하자는 것으로서 1924년 발족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서 시작되었으며, 194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로 이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8개의 개신교와 한국 정교회(동방기독교) 등 총 9개 교단이 가입해 있다. NCCK는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광복절, 제주4.3, 광주5.18 등을 기념해 대규모 합동기도회를 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로고.png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로고

 

NCCK가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선언'을 통해 기독교의 반공주의를 비판하고 평화통일 운동에 기독교가 기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보수적인 개신교 교회들이 NCCK에 반발해 1989년 월남한 개신교들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출범시켰다.

 

한기총은 개신교 최대 규모의 연합체였으나 2012년 부정선거 등 내분이 발생하여 일부가 탈퇴해 보수적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창설했다. 한교연은 2017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의 통합 문제로 분규가 발생하여 한교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탈퇴해 중도보수 성향의 한국교회총연합을 만들었다. 현재 한교총은 예장 통합, 합동, 백석, 고신,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 30여개 교단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개신교 교인의 95%가 가입돼 있다.

 

한기총은 전광훈이 2019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회장을 맡으면서 극우화됐다. 전광훈이 극우정치에 참여하고 이단 교회를 자의적으로 이단에서 해제하자, 주요 교단들이 탈퇴했다. 이후 전광훈은 선거절차 문제로 법원에 의해 직무정지를 당했고, 2022년 12월 이단으로 규정돼 제명이 추진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장백석,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장개혁, 예장고신, 예장합신,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이르는 교인 수 1위부터 10위까지 대규모 교단이 모두 탈퇴한 상황이다.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png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

 

한국 개신교는 진보적인 NCCK, 중도보수적인 한교총, 보수적인 한교연, 극우적인 한기총으로 분할돼 있으나 한교연과 한기총의 규모는 유명무실한 정도이다. 2023년 한기총과 한교총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ㅡ 개신교의 뿌리는 보수적인 미국 개신교의 선교활동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19세기 말에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됐다. 선교사들은 미국 개신교 중에서도 금주법 운동을 주도한 보수적인 교단에 속했다. 일제하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서울과 평양에서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선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교세를 확대했다. 평양에서 1907년 대부흥운동이 성공하면서 개신교가 널리 퍼졌으며, 이들 청년운동의 일부가 해방 후 월남하면서 서북청년단으로 발전한다. 

 

일본이 청나라를 조선에서 내쫓고 동학군도 진압하면서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을 때인 1901년 조선예수교장로교공의회가 '교회의 정부 사이에 교제할 몇 가지 조건'이라는 결의안을 통해 “교회는 나랏일을 하는 곳이 아니니, 정부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의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할 때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서울의 공사관을 철수하는 등 일본의 조선점령에 사실상 협력했다. 미국 선교사들도 미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정교분리, 내정불간섭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의 조선 지배에 협력했다. 그나마 조선에 우호적인 선교사들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조선인들이 미개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기독교 선교와 교육으로 계몽운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교연 로고.png
중도보수적 성향의 한교총 로고


ㅡ 친미 이승만과 군사독재 시절에 개신교가 폭발적으로 증가

 

미국 개신교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미국이 한국을 정치경제적으로 지배하면서부터이다. 해방 직후 미군청이 남한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선교사들이 대거 입국했으며 기존의 선교사들이 조선의 실정을 잘 알고 있어 미군정에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미국의 원조물자 중 상당수는 개신교 교단에 기부됐으며, 개신교는 이 물자들을 배급하면서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원조물자 일부는 교회 운영비 등 교세 확장에 사용됐다. 

 

미국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돌아 온 감리교인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개신교도들이 주요부처를 장악했고 미국은 이들을 후원했다. 배덕만 교수에 따르면 제1공화국이 만들어질 때까지, 한국 기독교는 인구의 5%도 되지 않았지만 장관급 40%가 기독교인이었다. 미국의 원조물자가 한국경제를 지탱해주면서 미국의 국교인 기독교 역시 마치 한국의 국교인양 대접받았다. 이때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의 딱지도 떼고 미국의 환심도 살 겸 개신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이때 이미 미국의 온갖 개신교 교단들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집회를 금지하던 유신헌법 시절인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여의도에서 100만 명을 모아놓고 한국전도대회를 열도록 허용했다. 박정희 정권은 집회 참여자에게 통행금지령을 면제해주었으며, 예배 때 경찰 군악대가 와서 연주까지 해주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창립한 보수적인 김준곤 목사가 주도한 '엑스플로74'에 10일간 100만 명가량이 모였다. 이 시절 개신교는 5%에서 20%로 성장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전도대회(1973.06.03).png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전도대회 광경 (1973.06.03)


개신교는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등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한국의 지배집단이다. 2004년 10월 2일 방영된 KBS의 ‘한국사회를 말한다’의 내용에 따르면 상장사 기업 임원의 43%, 국회의원 중 120명이 기독교인이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선교대국이다. 총 신자 수는 1200만 명이고, 교회 규모로 볼 때 세계 1 위(80만명), 2위의 교회가 모두 한국의 교회이다. 


ㅡ 개신교와 보수단체가 자발적인 보수 집회 개최 

 

2002년 당시 기독교 재단은 사립학교의 80%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을 전후로 사학재단의 부패와 특혜를 개혁하자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개신교 교단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고 목사들은 삭발투쟁을 감행했다. 한기총이 보수단체와 연대해 처음 대규모 집회를 한 것은 2003년 6.25 대회 때부터이다. 과거 군사정부 때 반공적인 관제데모와 달리 이들의 집회를 어느 정도 자발적이라고 봐야 한다. 

 

한기총이 최초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것은 2002년 1월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이다. 한기총은 2003년 1월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를 열었으나 반공, 주한미군 철수반대, 반미반대 등 보수적인 주장을 내걸었다. 이러한 대규모 집회는 2003년 3.1절 국민대회로 연결되었다. 이때 한기총은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서 10만 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 금식기도회’를 가졌다. 

 

한기총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념예배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2009.11.15).jpg
한기총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념예배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2009.11.15)

 

개신교와 보수단체의 대규모 국민대회 개최 비용은 한 회당 2억~3억 수준이다. 이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비용을 모금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기업과 경제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2003년 6.25 대회 때 삼성 이 1억 원, 전경련이 4천만 원, 대한상공회의소가 3천만 원, 대한무역협회가 3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대회비용이 적자가 나자 당시 재정위원장 봉두완이 삼성의 이학수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8.15 대회 때는 경제단체들로부터 1억3천만 원을 지원 받았다. 경제단체들은 보수집회 지원뿐만 아니라 대학에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인 강좌를 위한 재정을 후원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 집회 때 태극기와 성조기가 거리를 뒤덮고 이스라엘 국기도 흔히 보인다. 집회 참여자들은 한국이 이스라엘, 미국처럼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반공국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반중국 정책에 동조하는 구호도 등장한다. 이들은 코로나를 ‘중국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며 중국의 실험실을 코로나의 진원지로 지적하고 중국 공산주의 정권과 거리를 두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ㅡ 극단적인 행동과 주장으로 개신교 보수 집회가 분열돼 

 

2003년 한기총과 보수집단의 공동집회에서 반공 극우세력들이 인공기를 소각하는 등 과격한 포퍼먼스를 감행하자 자유총연맹,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 관변단체들이 노무현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8.15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국민대회’에 불참했다. 한기총 역시 교단 내부의 반발로 대회에 불참했다. 

 

보수집회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활발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극우세력들은 활동의 동기가 약해지면서 쇠퇴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으로 보수진영들은 거리에 나올 일이 별로 없었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다시 보수진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태극기 집회는 친박진영이 주도했는데, 보수적인 개신교 목사들은 박근혜 탄핵 반대에 직접 신도들을 이끌고 참여하지 않았지만 개별적인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한기총이 한교총과 통합을 가결했지만 여정 험남(2022.6.7).jpg
한기총이 한교총과 통합을 가결했지만  순조롭지 않았다(2022.6.7)

 

2016년 11월부터 박근혜 탄핵 추진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집회가 본격화됐다. 이들 태극기 집회는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며 2017년 대선에 조원진 후보를 내세웠으나 0.1% 득표에 그쳤다. 


2017년 대선 이후 친박진영은 정치적으로 파산되고 태극기 부대도 힘을 잃었다. 전광훈 목사 역시 기독자유당의 후원회장에 나서는 등 극우정치를 지원했으나 선거에서 참패했다. 2020년 코로나 직후 교회 예배를 통한 집단감염이 이어지자 정부는 예배를 제한했고 이에 대해 일부 교회가 반발했다. 예배를 하지 않으면 성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는 2020년 광복절에 태극기 부대와 함께 집회를 강행했다.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에 따르면 전광훈 목사 측은 126만 명을 대상으로 총, 1천 3백만 건이 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서 광화문 집회 참석을 독려했다. 전광훈 목사는 교회 건물이 있는 재개발조합 측에 500억 원을 요구하며 건물철거에 저항하는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하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사랑제일교회.jpg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사랑제일교회에서 신도들이  재개발 철거를 반대하며  농성하는 모습

 

2020년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회장직을 직무정지를 당했으며, 결국 사퇴했다. 한기총은 2022년 전광훈 목사에 대한 이단여부를 조사한 후 임원회의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했으나 여러 차례 논란 끝에 제명 조치가 완료되지 못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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