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허영구(전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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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과  남한강

 

미세먼지와 황사로 하늘이 희뿌연 날 집을 나선다. 양평읍내 외곽길에서 백운봉으로 들어가는 백안리를 지나는데 마을 길 양편으로 전원주택이 꽉 들어차 있다. 3km쯤 올라가 양평 용문산자연휴양림에 도착한다. 평일이라 휴양림 숙박시설에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계곡에는 맑은 졸졸 흘러내린다. 미세먼지도 없이 깨끗한 환경이다. 

 

오늘은 왕복 6km 남짓 백운봉(941m)이 목표다. 36년 전 봉사단체 모임에서 용문산에 올랐을 때 용문사에서 출발해 장군봉(1,055m)을 거쳐 백운봉을 하산한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정상인 가섭봉(1,157m)까지 통제구역이었다. 그 후로 양평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뾰족한 백운봉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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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이나 주변 산에만 올라도 용문산이 멀리 바라보인다. 몇 년 전 상원사를 통해 용문산 정상에 올랐다가 용문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데 백운봉의 자태가 너무 멋있어서 꼭 한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쓰여진 산행일지들을 보면 백운봉을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설명도 있다. 과도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멋있는 산이다. 지난번에 중미산 정상에서 용마산 줄기와 백운봉을 바라본 후 곧바로 찾게 되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당시의 등산로는 생각나지 않았다. 날씨는 따뜻했으나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겨우내 내린 눈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다. 높지 않은 작은 폭포였는데 물이 떨어지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 봄이 내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서북면 골짜기에는 잔설이 남아 있다. 겨울과 봄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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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를 걷다 하늘을 쳐다보니 바위 위에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금방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조금 오르다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다. 산에서는 라면보다는 국물맛이 일품이다. 빈 물통에 맑은 계곡물을 받은 뒤 올라가고 있는데 눈 앞에 ‘백년약수터’가 나타난다. 그렇지! 사람은 천년이 아니라 백 년도 살기 어려우니 소박하게 꾸는 꿈이고 희망일 게다. 다만 건강하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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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백운봉의 자태가 드러난다. 몇 굽이를 돌아 백운봉 정상이다. 용문산 남쪽 능선으로 연결된 최고 높은 봉우리답게 사방이 확 트여있다. 다만 미세먼지에 가려 멀리 조망할 수 없어 안타깝다. 용문산 정상 가섭봉까지 암봉능선이 펼쳐진다. 서쪽에는 함왕골, 동쪽은 연수리 계곡이다. 함왕골에는 서기 923년(경명왕 7년)에 승려 대건이 청건한 사나사(舍那寺)가 있다. 

 

꼭대기에는 용문산의 유래가 적혀있다. “ “용이 드나드는 산:, ”용이 머무는 산“,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 전해 온다. “미지”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이고 ‘미리’는 경상도와 제주지방의 “용”의 옛 방언이며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음운이 비슷하여 “용”과 연관이 있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차이가 없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용이 몸에 날개를 달고 드나드는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내려온다.“ ‘백운봉’ 표지석 옆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백두산 천지에서 가져왔다는 암석도 하나 설치되어 있다. 


용문산이 거느린 산줄기는 가히 국립공원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사진도 찍고 영상 촬영도 한다. 올라오면서 매캐한 연기가 산 위로 올라왔는데 산불이 난듯 하다. 소방헬기가 연신 물을 실어와 뿌리고 있다. 간식과 커피 한잔 마시니 천상 아래 절경이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산을 시작한다. 한참 내려오다 헬기장 갈림길에서 두리봉 방향으로 걷는다. 흙산이다. 등산로에는 쌓인 눈이 녹은 뒤 낙엽이 드러나 있다. 고도 400m를 아래 지점인 두리봉 정상(543m)에 당도한다. 서쪽으로 석양이 지고 있다. 남한강 줄기가 용이 꿈틀대며 기어가듯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이다. 강의 물줄기는 석양에 반사되어 온통 황금빛이다. 도시에서는 탐욕이지만 자연에서는 햇빛과 바람과 물이며, 바위와 흙과 나무다.

 

휴양림까지 650m에 불과했지만 매우 가파르다.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고 있다. 남한강을 따라 달리다 두물머리(양수리)에서 북한강을 만나고 다시 한강으로 흐른다. 둘이 하나가 되면 크게 될 것이며 더 큰 서해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구름되어 용문산으로 돌아와 비와 눈으로 내릴 것이다. 

 

508회, 용문산(백운봉, 두리봉), 2024.3.1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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