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지창영 (시인)
등록일 : 2024.04.29
노을-2.jpg
변산반도 채석강에 비치는 노을.

 

실용문은 사실 전달이 주목적이지만 예술문은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사실 전달에는 논리가 생명이다.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 수 있도록 당연하고 이치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느낌을 전달하는 표현은 논리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울산댁 배가 남산만 하다’고 한다면 이는 물리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사람의 배가 아무리 커도 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느낌을 전달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예술문에서는 ‘비논리적 논리’가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보면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 속사정을 알고 보면 논리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조선 시대 시서와 음률에 뛰어났던 개성의 기녀 황진이가 지은 예술문에서도 비논리적 논리를 볼 수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님 오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문자 그대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짓달 밤이 사람처럼 허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베어낼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베어낸 허리를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나중에 펼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화자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면 이해가 간다. 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 소중한데 혼자 지내는 밤은 너무 길게 느껴지니 그 긴 시간을 보관해 두었다가 님이 오신 밤에 함께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함이 숨어 있다. 

 

동짓달.jpg

 

이렇게 숨은 의미까지 고려할 때 비로소 논리가 통한다. 이런 것이 비논리적 논리다. 비논리적 논리는 한마디로 ‘말이 돼?’로 시작해서 ‘말 되네!’로 끝나는 것이다. 

 

비논리적 논리를 구현하는 방법에는 과장, 건너뛰기(비약), 무관한 것들을 연관 짓기, 인과관계 뒤바꾸기, 생소한 표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몇 가지 사례와 그 효과를 살펴본다.

 

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② ’남편의 총구를 바라보던 별빛이/ 아내의 눈 안에 떨어졌다/ 그 피 흔적 퍼져 핀 꽃,/ 불갑산 상사화‘(장진기, 「상사화」)

③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에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 먹어요’(전봉건, 「과수원과 꿈과 바다 이야기」)

④ ‘내 몸을 다 적시고/ 네 마음도 다 적시고/ 말없이 흐르는 강물도 다 적시고/ 선하디선한 하늘의 눈마저 다 적시는/ 저, 불길’(이미령, 「노을」)

 

①에서는 서로 무관한 별개의 일들이 마치 서로 연관된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눈 내리는 것은 화자가 나타샤를 사랑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시인은 마치 그 두 가지 일을 연관된 것처럼 표현했다. 그 결과 독자는 나타샤를 사랑하는 화자의 마음이 눈이 푹푹 내리는 것처럼 무한하고 순결하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게 된다.

 

② 역시 서로 무관한 것들을 연관시켜 놓았다. 붉게 핀 상사화는 서로 죽고 죽이는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마치 그 사건의 결과 상사화가 핀 것으로 묘사됐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극성을 강렬하게 나타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③에서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표현했다.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 먹’는다고 했는데(‘말이 돼?’), 여기서 생략된 과정, 즉 과수원에서 수확한 과일로 쨈을 만드는 과정을 고려하면 결국 과수원을 얹는다는 표현도 허용되는 것이다(‘말 되네!’).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현실은 비록 가난하지만(쨈) 꿈은 여유롭고 넉넉하다(과수원)는 것을 암시한다.

 

④에서는 ‘불길’이 무언가를 ‘적신다’고 표현함으로써 논리성을 벗어났다. 불길은 무언가를 태울 수는 있어도 적실 수는 없다. 그러나 노을빛을 보며 특별한 감정에 젖어드는 것이 마치 물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으므로 이를 감안하면 적신다는 표현에도 내적인 논리가 성립된다.

 

이 밖에도 ‘땀에 전 시간을/ 빨랫줄에 널어놓은 채’(조민정, 「마당으로 출근하는 여자」), ‘며칠 전 병원으로 실려 간 할머니의 잠을 둘둘 말아 개 놓고 오늘은 할머니가 입던 시간도 깨끗이 빨아 널었다’(이관묵, 「반지하」), ‘탄환을 쫓는 비명 소리’(김기덕, 「한탄강」), ‘소음이 도시를 끌고 다녀요’(이설야, 「붉은 달」) 등 비논리적 논리의 표현들은 무수히 많다.

 

빨랫줄.jpg

 

비논리적 논리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느낌을 짧은 표현으로 단박에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기발한 면이 있으므로 일반적인 표현보다 오래 기억될 수 있다. 비논리적 논리는 ‘낯설게하기’와도 관련이 있다(‘낯설게하기’ 관련 설명 : http://www.ulham.net/culture/16659). ‘낯설게하기’의 한 방법으로 비논리적 논리가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크기나 규모를 상상을 초월하여 부풀려 보거나, 현실적으로는 연결이 불가능한 것들을 서로 연결해 보거나, 응당 있어야 하는 과정들을 생략해 보거나, 사물에 대하여 물리‧화학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형용사나 동사를 붙여 보거나, 나타나는 현상의 순서를 뒤바꿔 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비논리적 논리의 표현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시는 논리에 매여 있을 수만은 없다. 가끔은 논리를 초월하여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자. 외롭게 지내는 ‘기나긴 밤’을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님 오신 밤’에 길게 펴겠다는 황진이의 비논리적 논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살아 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창영.jpg
지창영 시인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

삭제하시겠습니까?
취소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취소

연재

[민병래의 사수만보] 붉은 반점투성이... '조선소밥' 15년이 그녀에게 준 훈장

한화오션 조선소의 여성노동자 정인숙·나윤옥 ①

2024.05.01

교양

[시] 다시 오월

2024.05.01

연재

지춘란(16) ㅡ 제3지대장 남도부에 대한 허위사실과 진실 ②

ㅡ 사람을 찾아서

2024.04.30

연재

초보자를 위한 시창작 강의(7)ㅡ 비논리적 논리

2024.04.29

연재

요셉 스탈린(제24회) ㅡ 스탈린과 부하린 논쟁 (1)

2024.04.28

교양

법이야기 ⑥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의외로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4.04.25

교양

나는 사장님이 아니로소이다

2024.04.22

연재

지춘란(15)ㅡ 제3지대장 남도부에 대한 허위사실과 진실 ①

ㅡ 사람을 찾아서

2024.04.16

교양

[허영구의 산길순례] 이성계와 남이장군의 전설이 있는 축령산의 봄

2024.04.15

교양

초보자를 위한 시창작 강의(6)ㅡ 착상과 포착

202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