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지창영 (시인)
등록일 : 2024.05.15

종자-2.jpg

 

씨를 뿌리거나 심는 농부에게 “그것은 무슨 씨앗입니까?” 하고 물으면 곧바로 정확한 답이 돌아온다. 농부는 자신이 심는 종자가 어떤 작물이 될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도 있듯이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결과가 그대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한 편의 글도 종자가 분명해야 한다. 종자가 확실하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완성된 글의 대강을 알 수 있게 되고 그런 만큼 글을 쓰는 과정에서 걸리거나 헤매는 일이 줄어든다.

 

글의 종자란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기초이자 핵이다. 식물의 씨앗이 제각기 그에 맞는 줄기와 잎과 꽃을 펼치듯이 작품도 종자에 따라 그에 맞는 소재가 동원되고 그에 맞는 내용이 구성되고 그를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과 연 또는 단락이 결정된다. 종자에 맞게 잘 구성된 작품은 흐름이 자연스럽고 메시지가 분명하며 감동도 그만큼 커진다. 

 

해바라기 씨에는 똑바로 선 억센 줄기와 넓은 잎과 둥글고 큰 꽃이 피어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들어 있고, 나팔꽃 씨에는 넝쿨이 벋어가고 자그마한 잎이 달리고 나팔을 닮은 작은 꽃이 피어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들어 있다. 해바라기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면 해바라기 같은 종자를 마련해야 하고 나팔꽃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면 나팔꽃 같은 종자를 마련해야 한다.

 

작품의 종자는 한 문장으로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윤동주의 「십자가」를 보자.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png

 

이 작품의 종자는 ‘신에게서는 응답을 기대할 수 없으니 내가 대신 희생의 길을 가겠다’로 정리할 수 있다. 씨앗 한 톨이 식물 한 그루로 자라는 것과 같이 이 문장은 비록 짧지만 이로부터 5개 연에 걸쳐 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연에서 화자는 교회당 꼭대기에 서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다. 2연에서는 그 높이에 감탄하는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3연을 보면 교회에서 종소리가 나지 않아서 화자가 휘파람을 불 생각을 한다. 4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복과 괴로움을 생각하고 그 행복과 괴로움의 이중성을 자신도 감당하고자 한다. 5연에서는 어둠 속에서 피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화자의 결의를 드러낸다. 1연에서 5연까지는 그 어느 것도 종자에 어긋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윤동주 시인이 문자로 남긴 작품의 각 장면만 설명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씨앗에서 싹이 터서 자라난 하나의 식물과 같다. 독자는 이 식물을 바라보면서 그 꽃과 열매에 해당하는 주제와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느낌을 공유한다.

 

일제강점기에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신과 기독교에 대한 회의감 속에서 시적 화자는 신에게 의지하는 대신 자신이 뭔가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의한다. 종소리 대신 휘파람을 불겠다는 것이다. 그 휘파람은 진리를 말하는 행동으로서 독립을 지향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행동은 당시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었고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진리를 설파하다가 처형된 예수 그리스도처럼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고난이 따르는 괴로운 길이지만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기에 행복한 길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실제로 그런 길을 걸었다.

 

종자가 명확한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신의 무력함에 한탄하고 자신이 시대의 사명을 하겠다고 결의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된다. 이 시를 감상하다 보면 어두운 역사 속에 처해 있던 윤동주 시인의 고뇌의 무게가 느껴진다.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몇 편의 작품을 들어 그 종자를 살펴본다.

 

한용운, 「님의 침묵」 - 님은 갔어도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빼앗긴 땅에는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
김소월, 「진달래꽃」 - 떠나는 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
김수영,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한다.
천상병, 「귀천」 - 죽는 것은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 잊혀져 가는 민주주의를 되새겨 본다.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가는 길이 힘들지만 끝까지 함께 가자.
박노해, 「손무덤」 - 동료 노동자의 잘린 손을 묻는다.

 

위 예에서 보듯이 종자는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좋다. ‘꽃이 아름답다’ 또는 ‘네가 그립다’와 같이 막연한 내용은 좋은 종자가 될 수 없다. 그로부터 명확한 표현을 이끌어 내서 메시지와 감동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종자가 뭐요?” 하고 묻는다면 콩이오, 팥이오, 토마토요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지 ‘식물입니다’라고 말하면 막연하지 않겠는가.

 

창작할 때 종자를 먼저 마련해야 글을 쓰는 과정에서 헤매지 않는다. 한 문장으로 정리된 종자를 보면서 그에 맞는 요소들은 선택하고 맞지 않는 것들은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자는 주제와도 다르고 소재와도 다르다. 주제가 작품의 중심 사상이고 소재가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라면, 종자는 주제와 소재를 비롯하여 글에 필요한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도록 하는 바탕이다. 종자 속에 주제와 소재와 줄거리 등이 다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해바라기 씨앗 속에 줄기 잎 등이 들어 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종자 속에는 그런 것들이 자라날 수 있는 요소만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글쓰기 수업 시간에 여러 차례 강조하는 데도 불구하고 종자를 착실히 준비하는 수강생은 매우 드물다. 습작품을 받아 들고 “이 글의 종자는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하면 명쾌한 대답이 나오는 대신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다. 종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줄기를 내고 가지를 뻗고 잎을 펼친다면 텃밭은 무성해져도 도대체 무슨 작물인지 알 수 없는 덤불들만 차고 넘친다. 종자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면 그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산만하게 되어 완성도가 떨어진다.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종자부터 차분히 준비할 일이다. 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정리한 종자를 들고 작품을 써 나가면 분명히 완성도 높은 글을 더 빨리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지창영.jpg
지창영 시인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

삭제하시겠습니까?
취소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취소

연재

서울대 '용권이 나무', 엄마는 아직 답을 못 들었다

ㅡ 1987년 카투사에서 의문사한 김용권의 어머니 박명선②

2024.06.29

연재

지춘란(20)ㅡ 회담 중에도 폭격하며, 조선을 불바다 물바다로 만드는 미국

: 네이팜탄 사용과 관개용 댐 폭격

2024.06.29

역사

한국전쟁 깊이 톺아보기

2024.06.25

연재

초보자를 위한 시창작 강의(11) ㅡ 구체적 표현의 중요성

2024.06.25

역사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레이건과 CIA

ㅡ 니카라과의 혁명과 반혁명

2024.06.24

교양

과학의 당파성

2024.06.22

교양

노동자문화 그 자체에 대하여 (1)

2024.06.20

교양

[시] 먼 기억

2024.06.17

역사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은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했는가?

2024.06.17

연재

지춘란(19)ㅡ 종이호랑이 미국과 일본의 비밀 참전

: 2년을 끄는 정전 회담

202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