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3.09.14

 

photo_2023-09-14_10-46-21.jpg

 

딱 2년 만에 가을꽃을 보러 화악산으로 향했다. 의정부 지나 서울포천 고속도로를 달려 종점을 나서면 구불구불 지방도를 따라 백운계곡을 지난다. 민박집들이 즐비하고 아이들이 물놀이 기구가 곳곳에 걸려 있는 걸 보니 한여름에는 꽤 붐볐을 것으로 보인다. 여름 지나고 가을초입이고 거기다 월요일이라 적막한 계곡이다. 

 

백운계곡이 끝나자마자 구비 구비 돌고 도는 오르막길이다. 다시 내리막길 따라 펼쳐지는 계곡은 광덕계곡이다. 요즘이야 자동차로 쉽게 넘을 수 있는 길이지만 예전에는 이 고개를 넘기 어려워 서울, 경기지역에서 휴가를 온 사람들은 주로 백운계곡을 찾았을 것 같다. 포천시 이동면 도평삼거리에거 화천시 사내면 파출소 앞까지 약 20km 길 이름이 ‘포화(포천-화천)로’다. 

 

photo_2023-09-14_10-46-34.jpg

 

우측으로 화악산 표지가 보인다. 고개를 따라 쭉 올라서니 화악산 아래를 통과하는 화악터널을 지난다. 화천과 가평의 경계다. 다시 오른쪽 울타리가 쳐진 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3분의 2는 올라선 느낌이다. 거기서부터 정상으로 4km 거리의 길은 군부대로 향하는 시멘트 도로다. 가끔 군차량과 공사차량이 왕래한다.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햇빛도 없고 덥지 않으니 등산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이제 본격적으로 화악산 가을꽃을 구경할 차례다. 먼저 어린순을 채취해 (곤드레)나물로 먹는 고려엉겅퀴를 만난다. 어릴 때 넘어져서 피부가 벗겨지거나 피가 날 때 엉겅퀴 뿌리를 빻아서 붙였던 기억이 새롭다. 약용식물이 식용식물이 되는 셈이다. 

 

photo_2023-09-14_10-47-11.jpg

 

이질풀, 둥근이질풀, 미역취,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포천구절초, 닻꽃, 과남풀, 동자꽃, 송이풀, 바위취, 고마리, 까치고들빼기, 바위채송화, 할미밀망, 물봉선화, 투구꽃, 산꼬리풀, 나래해나무, 꿩의비름, 넓은잎외잎쑥, 배초향, 금강초롱 등 많은 꽃을 만난다. 정겨운 이름들이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거나 지인에게 물어서 겨우 이름을 익히지만 다시 산에 가면 가물 가물이다. 그래도 계속 반복해서 보면 기억이 난다.  

 

photo_2023-09-14_10-47-11 (2).jpg

 

지루한 시멘트 길이지만 꽃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중봉정상을 200m를 남겨둔 곳에 도착한다. 화악산 중봉(1446.1m)은 매우 높은 산이지만 중턱까지 차로 올라올 수 있어 마치 446m 높이의 산을 오른 기분이다. 이날은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바람에 중턱 주차장 차단기까지 열려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정상 바로 아래인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올라오기도 했다. 

 

점심은 준비해간 컵라면 등 간식으로 대신하고 마지막 고지를 오르듯 정상에 당도한다. 화악산은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전남 여수에서 북한 중강진을 잇는 국토 자오선(동경 127도 30분)과 위도 38도선을 교차시키면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진짜 정상은 군부대가 위치해 이를 대신하는 중봉을 한반도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photo_2023-09-14_10-47-58 (2).jpg

 

65세 이상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 숫자를 10명 중 7명에서 4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주장이나 설악산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고 부동산투기로 수백억대 재산을 불린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인증샷을 찍는다. 

 

photo_2023-09-14_10-47-59.jpg

 

그런데 지난 번처럼 날개 달린 개미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얼굴과 목덜미로 달겨든다. 여왕개미를 따라 하늘로 치솟는 결혼비행을 끝낸 개미들이 그 수명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시원한 커피 한잔을 마신다. 눈앞에 온갖 야생꽃들이 피어 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구름이 걷히면서 건너편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주차장에 도착했고 귀가길은 가평으로 나간 뒤 경춘국도로 탄다. 주말이면 언제나 막히는 곳이지만 평일이라 한가하다. 들판에 벼가 익어간다. 북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2023.9.11. 

 

[울산함성 무료 구독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

 

삭제하시겠습니까?
취소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취소

연재

[허영구의 산길순례] 장마구름이 몰려오는 날 인왕산에서

2024.07.03

연재

[허영구의 산길 순례] 화악산에서 가을꽃에 취하다

2023.09.14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