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
등록일 :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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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 지났다. 어느새 손주까지 본 나이가 됐지만 지금은 부모가 된 아이들이 어릴 때가 생각난다. 야근에 노조활동에 (심지어 예전엔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었고) 평소엔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 일을 하는 일이 적었다. 하지만 이날만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걸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다 중얼거리곤 했다. “평소에 잘 할걸”.

 

되기 며칠 전부터 놀이공원을 가볼까? 어떤 체험활동이 좋을까? 궁리하다 결국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날씨를 확인하고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놀이공원 뙤약볕 아래 몇 시간 줄 서는 일은 대부분 아빠의 몫이다. 공원을 가득 메운 대부분의 부모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의 얼굴 표정 모두 비슷하다. 하루 온종일 시달리다 돌아오는 오후, 유모차를 미는 아빠 얼굴의 미간 주름은 더욱 진해지고,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 얼굴엔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의 벅찬 감동과 기쁨은 잠시, 곧 ‘돌봄’이라는 낯선 영역의 노동으로 이어진다. 아이는 어김없이 세시간 이면 배가 고프다고 운다. 기저귀가 젖으면 울고, 몸이 불편하면 또 운다. 의사소통을 우는 걸로 밖에 할 수 없는 갓난아이는 보호자의 무한 희생을 요구한다. 몸이 힘들어 짜증이 나면 ‘내게 부성애는 없는건가?’,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었나?’ 자괴감이 밀려든다. 오직 도 닦는 심정으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최소 24개월이다. 그 때 난 마치 도망치듯 출근했다. 하지만 종일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아내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아내는 많이 힘들어 했고 난 사실 마땅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시 누가 나에게 “출근해서 일 할래? 아니면 집에서 아이 볼래?" 라고 물었다면 나는 단연코 출근한다고 했을 것이다.

 

이 질문은 회사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중에 어느 게 더 큰가를 묻는 것이고, 동시에 어떤 일이 내 인생에 더 의미 있느냐를 묻는 것이겠지만, 실은 질문이 틀렸다. 이 질문은 육아휴직이 당연한 환경인지, 승진 등 다른 불이익은 없는지, 휴직으로 경제생활의 어려움은 없는지의 문제를 차치한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엄청난 노동이고 말못할 스트레스이고 그렇다고 금전적 보상이 이뤄지지도 않는 일이다. 하지만 회사는 다르다. 자연히 ‘난 밖에서 돈 벌잖아!’ 같은 알리바이가 생기고 육아휴직도 없이 돌봄에 드는 비용을 벌어오는 경제 생활에 더 높은 가중치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솔직히 말해, 부끄럽지만 육아휴직이 가능했더라도 육아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난 출근을 선택했을 것 같다. 24년 전의 나를 반성한다.)

 

어떤 이는 육아를 직장에서 하루 종일 손님 접대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아이를 돌보는 일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눈을 떼지 못하는 지루한 인내와 육체적 피로가 쌓이는 중노동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란 미지의 존재다. 왜 우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제 갓 아이를 나은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겐 자신을 보호할 절대적이고 유일한 존재지만, 그들도 초보이긴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은 엄빠와 아이가 모여있는 가정은 세상이 처음인 초보와 아이가 처음인 초보가 모여있는 곳이다. 어디 물어볼 곳도 없다. 사람은 본디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의 돌봄으로 살아간다. 그건 아이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고 했다. (그렇게 옛날도 아닌) 예전엔 아이가 열이 올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야기 해주는 옆 집의 언니들이나, 낮 시간 동안엔 아이를 봐줄테니 낮잠이나 잠시 자라고 해주는 뒷집의 할매들이 있었다. 아이가 꼬박꼬박 인사 하는 동네의 아저씨들이 아이의 안전을 지켜보는 CCTV였고, 우리 아이가 쫓아 뛰어다니는 동네 언니들이 아이들의 보육교사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마을 공동체는 언감생심,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병원에 데려가고 낮이고 밤이고 깨어 아이를 안아주고, 그 와중에 아이에게 드는 돈을 벌어와야 하는 역할이 모두 엄마와 아빠에게만 주어진다. 공동체가 함께 담당하던 돌봄과 육아는 이제 오로지 개인의 영역으로 돌려졌다. 그 결과는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이다. 해마다 인구가 소멸하고 있다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현재 150만 명이 출산 돌봄, 요양 돌봄 ,장애 돌봄 등 돌봄 노동에 종사한다. 특히 내년이면 65세 인구가 전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돌봄 서비스가 사회의 주축 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돌봄 노동에 대한 투자보다는 돌봄 노동에 드는 비용이 많으니 이를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시키자고 한다. 최근 한국은행은 발행한 보고서에서 이주노동자를 최저임금 이하로 고용해 돌봄 노동에 종사토록 하자고 했다. 돌봄 노동자가 갈수록 부족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현재 국내의 요양 보호사 자격증 소지자만 해도 260만 명이 넘는다. 그 중 50만 명 정도만 실제로 일한다. 나머지는 장롱 면허인 셈이다. 원인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 열악한 근무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 노동을 더욱 저임금, 나쁜 일자리로 만들면 사회적 돌봄의 영역은 더욱 파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돌봄 노동을 국가 책임으로 강화해야 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돌봄 센터를 구축하고, 양질의 돌봄노동자를 국가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방법이다. 아이는 마을이 키우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나이들어도 배제되지 않고, 아파도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출산해도 육아의 고통없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사회, 나이 들어도 배척되지 않는 사회, 결국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24년 전의 어린이날을 다시 떠올려본다. 매일매일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24개월쯤 육아휴직을 맘편히 내고 육아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아플 때, 아이가 밥을 먹지 않을 때 물어볼 전문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앞으로의 일도 생각한다. 이제는 나이든 어른들을 간병하고 편히 돌볼 수 있을까. 우리가 나이 들고 아플 때는 어떻게 될까. 24년 전의 어린이날을 반성하는 것처럼 몇 년 후, 우리의 삶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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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출처: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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