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주(경북북부 이주노동자센터)
등록일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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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4일 발생한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현장.    사망자 23명 중 중국인이 17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  BBC  뉴스 코리아


  아리셀 참사보도를 접하는 날이 바로 김승만 동지의 부고를 들은 날이었습니다. 십몇 년을 아픈 몸을 부여안고 투쟁의 현장으로 가고 싶어 몸부림을 쳤던, 그러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동지가 차라리 부럽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지옥도를 보지 않아도 되는 동지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생을, 이주노동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동지가 먼저 도착한 세상에는 또 하나의 계급, 이주노동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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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 비자를 아십니까?

 

아리셀 참사는 행정관할의 난잡함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와도 여러모로 관련돼 있다. 굳이 리튬전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사업장 안전관리에서 소방과 안전의 영역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책임의 분산과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행정의 관할권 역시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로 이원화돼 있다.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 노동자가 농사를 짓는지, 물고기를 잡는지에 따라, 심지어 작은 배를 타는지 큰 배를 타는지에 따라서도 담당 기관이 달라지고 다른 법이 적용된다. 겉으로는 복잡한 행정체계의 문제지만 이것이 이 나라가 가진 이주민에 대한 차별의 근간이다. ([매일노동뉴스] ‘참사, 진상규명에 이르는 길’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

 

자본은 참 대단합니다. 이주노동자를 E-9으로 H-2로, F-4로, C-4로, E-8로, E-10으로 선을 그어놓고 가두고 갈라치기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이 선을 넘어오는 자들을 미등록으로 내몰고 강제 추방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제 고용허가제로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의 비자는 E-9입니다. 사업장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업종 간 이동도 금지되어 있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족쇄를 채워서 부려 먹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는 ‘아! 대한민국’에 일제 강점기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혹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만주로 연해주로 떠났던 많은 동포가 찾아왔습니다. 발전된 조국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그래서 동포를 우대한답시고 특례 고용허가제를 만들었습니다. 사업장도 약간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업종 제약도 없어서 그나마 약간의 권리가 보장됩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단체가 특례 고용허가제도를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차별을 조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이 알량한 특례 고용허가제도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로 가는, 그래서 모든 이주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오롯이 누리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특례 고용허가제로 한국을 찾는 동포 신분의 이주노동자들 비자는 H-2 비자입니다. 그런데 H-2 비자 이주노동자들이 안정적 체류를 확보하기 위해 또 비자를 바꿉니다. H-2 비자는 특례 고용허가제 비자이기 때문에 체류 기간이 4년 10개월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F-4 비자로 비자를 바꿉니다. 영주권에 준하는 안정적 체류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비자를 획득하는 방법의 하나가 자격증을 따는 것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자격증이 많습니다. 그래서 또 출입국 사무소 주변 행정사 사무실은 F-4 비자 알선이란 선전 문구를 내걸고 중계 수수료 등으로 돈을 법니다. 우여곡절 끝에 H-2 비자로 한국을 찾은 동포 이주노동자들이 또 온갖 노력을 기울여 F-4 비자를 취득합니다. 그러나 무슨 무슨 자격증으로는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격증은 현장에서 쓰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외국인(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외국인,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다시 단순노무업종으로 내몰리는 동포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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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투브 화면 캡쳐


그런데 F-4 비자 소지자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단순노무직 종에는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또 단순노무 중에서 호텔과 식당 등은 인력난에 시달리니 허용한다는 조치를 발표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요 아무튼 우수인력 유치라는 자본의 갈라치기를 동포 우대정책이라는 허울이 좋은 포장으로 덧씌워 또 벽을 만들었습니다.

 

우수인력 유치라는 허울이 좋은 차별 정책이 비자 진입장벽을 만들고 자격증을 취득한 우수인력인 F-4 비자 소지자는 우수인력이기 때문에 단순노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우수인력들이 단순노무를 하다가 아리셀 참사현장에서 쓰러졌습니다. 이게 아리셀 참사현장이 말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비자 중에서도 가장 부러워하는 F-4 비자를 소지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분통합니다. 억울합니다.


그러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기막히고 억울한 죽음 앞에 오열하는 유족들을 향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은 ‘합리적’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들이댑니다. 참사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인데 그 비극 앞에서 오열하는 유족들 앞에서 자본은 또 천연덕스럽게 ‘합리적 후속 처리’를 들이댑니다.

 

그런데 이 자본가들이 들이대는 ‘합리적 후속 처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참사 희생자 중에 많은 이들이 F-4 비자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단순노무 업종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할 수 없는 업종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은 규정을 어긴 사람들이고 강제퇴거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그 악랄한 만행을 숨기기 위해 ‘단순노무 업종종사’를 ‘합리적 후속 처리’의 근거로 들이대고 있는 겁니다. 배상금을 줄이기 위한 악랄한 계산법입니다.


이가 갈립니다. 그러나 이만 갈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잔인한 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라도 더 버터 보겠다고 F-4 비자를 선택하고 또 다른 벼랑 끝에 몰린 이주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 치떨리는 현실 앞에, 오로지 이윤만을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주판알을 튕기는 저 자본가들에게 우리는 또 무엇을 어떻게 돌려주어야 합니까?

 

위험의 이주화, 죽음의 이주화

 

3D업종이 보통명사가 되고 나니 자본은 ‘뿌리산업’이라는 또 희한한 명사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뿌리산업이라고 포장하는 ‘3D업종’은 ‘4D 업종’으로 이미 변했습니다. 더럽고 Dirty, 힘들고 Difficult, 위험한 Dangerous 뿌리산업은 이제 죽음의 Death 업종이 되어서 ‘ 4D 업종’이 되었습니다. 아리셀참사 이후 많은 전문가가 ‘위험의 이주화’를 말합니다. 아닙니다. 위험의 이주화가 아니라 ‘죽음의 이주화’입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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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타파   화면 캡쳐 . (2024.7.30) 


이주노동자들과 현장에서 부딪치는 많은 활동가가 수년 전부터 ‘죽음의 이주화’를 부르짖어 왔습니다. ‘죽음의 이주화’를 막지 못한 이 책임을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윤에 눈이 먼 자본의 ‘뿌리산업’이 ‘죽음의 이주화’로 흘러가는 이 흐름을 막지 못한 이 책임을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아니 피가 맺히는데 거기서 또 죽으라니요? 헐한 목숨값 몇 푼 쥐여주고 자본의 철옹성을 쌓는 현장으로 내모는 이 현실을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가 말했습니다. 또 하나의 계급을 어쩔 거냐고….

 

수많은 언론에서 중국을 언급합니다. 그러다가 또 양념처럼 라오스를, 베트남을 언급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리셀 참사현장에는 또 하나의 계급으로 살다가 비극을 당한 노동자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쌓인 담장이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는 사이에도 우리는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이 담을 허물어 왔습니다.

 

그러나 자본은 너무나 강고하여 우리의 처절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허물어진 담장보다 새로 쌓아 올린 담장이 더 많은 잔인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9년의 투쟁 끝에 작은 승리를 쟁취한 아사히 동지들이 그렇고, GM 비정규직 동지들이 그렇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동지들의 눈물이 나는 복직 투쟁이 그러합니다.

 

여기에 담장을 허물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있습니다. 아니 그 담 너머에서 또 다른 계급으로 살기를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혹은 불법으로 내몰리고, 외국인으로 내몰리고 그래서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이 아닙니다. 미등록입니다. 외국인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입니다. 노동자입니다.

 

감히 말합니다. 또 하나의 담장을 먼저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계급을 없애야 합니다. 어쩌면 이 담장을 허무는 일이 우리가 모두 싸워왔던 비정규직 철폐의 전선에서 함께 싸울 동지를 확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싸우다 싸우다 지쳐 쓰러지는 무모한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계급 이주노동자를 없애고, 다시 비정규직을 없애고 그래서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저 노동해방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이 처절한 아리셀 참사현장에서 이를 악물고 다짐합니다. 투쟁!
 

출처 : <노동자신문>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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