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찬욱의 총반격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등록일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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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출처 : 뉴스버스(Newsverse)

 

' 4·10'  제22대 총선이 불과 16일 남았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침몰하는 중이다. 그러나 에어포켓(Air Pocket)에는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은 상당수의 사람이 살아 있다. 대한민국호의 골든타임(Golden-time)을 놓쳐, 희망의 끈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들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 

 

골든타임은 4·10 22대 총선이다.

민중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를 절대 잊지 않고 있다. 

무능한 선장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골든타임 지체, ‘가만히 있으라’라는 비상식적인 안내 방송으로 304명이라는 아까운 학생과 청춘들이 참사를 당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과 판박이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다. 나라가 망하고 있다.

민중은 과거 이명박근혜 시대 9년과 윤석열 2년을 사는 대가로 너무나도 많은 고통과 희생 그리고 나라가 무너져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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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백만의 촛불행진, 이명박 정부는 이미 심판 받았다.   출처: 참여연대 2008.6.11.  

 

촛불시위가 거칠 날이 없었던 이명박 정권

 

이명박은 당선인 시절부터 홍역을 치렀다. 

2008년 2월 10일 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탔다.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방송돼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5월 27일 숭례문 주변 광장을 개방하고, 이듬해 2층 누각을 제외한 숭례문을 완전히 열었다. 이명박은 문화재청이 반대하는데 억지로 밀어붙여 숭례문을 개방한 장본인으로, 숭례문 화재의 책임이 있다.

 

숭례문 화재는 민중의 수난을 예고하는 전조(前兆)였다.

이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촛불시위가 거칠 날이 없었다.

 

2008년 4월 18일, 민심을 거스르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이명박은 합의한다. '30개월 미만의 뼈가 붙은 쇠고기를 즉시 수입하고, 미국 측이 광우병 예방 노력을 할 경우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명박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날로, 밀실 협상이었다.

 

2008년 4월 29일 MBC에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했고, 이를 계기로 2008년 5월부터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렸다. 이명박은 두 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고, 협상은 '내장을 제외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도록 수정됐다.

 

이후 국정원의 정치 개입·민간인 사찰과 댓글 공작, 한미FTA 시행, 금강산 관광 폐지, 미군의 고엽제 무단 매립 등 환경 범죄, 제주 강정마을 미군 해군기지 건설, 4대강 운하 사업 강행, 천안함 침몰 사기극, 연평도 포격 사건, 자원 외교 수십조 원대 국고 손실, 소·돼지 350여만 마리 생매장 구제역 파동, 한일 군사협력, 반값 등록금 공약 불이행, 한진중공업·유성기업·쌍용자동차 등 비정규직 문제, 친일 반민족·분단 원흉·독재자 이승만 미화와 교과서 개악,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평택 쌍용자동차 강제 진압 등 이명박의 폭정은 끝이 없었다.

 

또한, ‘남북관계 파탄’, ‘민주주의와 인권 후퇴’, ‘정권의 언론 장악’, ‘생명파괴 4대강 사업’으로 상징되는 역사의 암흑기를 만들었다. 사기꾼, 위장전입자, 탈세자, 군 미필자가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이 된 ‘범법자 천국’인 나라였다.

 

이명박은 사기를 치고 오로지 돈밖에 모르며 국정을 파괴하는 후안무치한 자였다. 그리고 뼛속까지 친미‧친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민중은 이명박 시대를 사는 대가로, 전직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억울하고 분한 서거를 보면서 분노와 눈물의 강을 건너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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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가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국민촛불 승리! 우리가 해냈습니다”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천지일보. 2017.3.10.  

 

국정 문란, 헌법 파괴를 넘어 국가가 파괴된 박근혜 정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중은 박근혜 4(四)년. 그야말로 출범과 동시에 또 4(死)년 동안 수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탑승자 476명 가운데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250명의 단원고 고등학생들을 비롯한 304명의 탑승자가 탄 세월호가 수장되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민중은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 후 14일 만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과 발언을 했지만, 진정성 없는 사과로 34일 만에 다시 사과했다. 

 

박근혜 정부의 수사는 모두 거짓말로 일관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수사 정보기관인 검찰, 경찰, 기무사, 국정원과 정부 산하 수사 관련 조사연구기관인 해양안전심판원, 선박플랜트연구소가 ‘공조’하여 내린 수사 결론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이들의 ‘거짓 공조’는 참사의 ‘원인 규명’을 차단하고 은폐하고 왜곡하는 데로 총 집중됐다. 

 

이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소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메르스 사태, 성주 사드 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강행, 개성공단 폐쇄, 대북 전쟁 불사 정책,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부자 감세와 친재벌 정책, 노동개악, 전교조 탄압, 공공부문 성과 퇴출제 강행, 묻지 마 쌀개방,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살인 진압, 부동산 거품 부양, 노점 및 빈민 탄압, 묻지 마 원전 강행,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 국정 문란, 헌법 파괴가 아니라 국가가 파괴되었다.

 

특히 2015년은 해방 70주년이어서 큰 기대를 했으나, ’광복 70돌 민족공동행사’는커녕 전쟁 위기로 남북 대결은 더 격화됐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9년, 민중은 절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고 투쟁으로 맞서나갔다. 그들은 태어나서는 안 될 사대·친미·친일·반민족·반통일·반민중 정권이었고, 반드시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시기마다 이명박·박근혜에 대해 사과·규탄·심판으로 나뉘어, 통일 단결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권에 대한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전선이 분열된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마침내 촛불 항쟁으로 박근혜를 탄핵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정신을 망각하고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다, 윤석열 검찰 집단에 정권을 빼앗기게 된다. 

 

거부권 남발로 민생은 외면하고, 대북 전쟁 책동에 몰두하는 윤석열 

 

윤석열은 역대 대선 중 가장 박빙인 0.7%P 차이로 겨우 당선된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보다 더한 역주행이 지난 2년 동안에 끊임없이 진행됐다.

 

윤석열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용산 집무실 리모델링 수의계약·청와대 개방 및 관리 수의계약 업체 논란과·한남동 관저 이전 논란 등 염불보다 잿밥에 대통령실은 관심이 있었다. 또한 집무실 이전에 따른 영빈관 신축 그리고 출퇴근을 위한 관저 진입로 공사 비용 등이 추가되었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이전 비용은 모두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었다. 애초 옮기지 않았으면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이었다. 

 

세계적인 도시라 하는 서울에서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그러나 나라는 없었다. 대통령은, 정부는, 서울시는, 용산구는,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두 다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원인 규명과 책임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서로를 필사적으로 돕고 구조했던 시민들, 지역주민들, 상인들이 도리어 마녀사냥과 2차·3차 가해로 씻을 수 없는 심리적 상처를 입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보호와 피해구제 조치는 없었다. 

 

윤석열은 2022년 5월 10일 취임 이후 작년까지 16번을 해외에 다녀왔다. 주로 미국 추종 나라답게 미국을 5번, 일본·영국·프랑스를 각각 2번 순방했다. 그러나 부산엑스포 유치는 참패했다. 그리고 정작 우리 경제에 절대적 이해 국가인 중국은 가질 않았다.

 

윤석열은 생계 위기에 대한 민중의 목소리가 커지자 국가보안법 공안탄압의 칼날을 휘두르며 탄압했다.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자 ‘북한지령’으로 투쟁을 매도했다. 그리고 거부권을 무려 9번이나 거부했다. 또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등 흉상 철거에 나서며 ‘이념전쟁’으로 국민을 편 갈랐다. 

 

어렵게 맺은 남북, 북미합의가 파탄 나고, 모든 대화는 멈췄다. 

군에도 가지 않은 자가! 

‘전쟁 불사’를 외치며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한다. 어떻게 총알이 나가고 대포의 위력이 어떻고, 원자탄과 수소폭탄이 폭발하면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기는 한지 심히 걱정된다. 

 

윤석열은 오로지 미국을 나라를 지켜주는 신으로 받들고 있다. 

미국은 이 땅의 분단과 전쟁을 이용하여, 무기 장사로 이익을 실현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악의 무리다.

경제는 미국에 퍼주기만 하고, 일본과의 역사 전쟁은 굴욕만 당하고 있다.

 

4월혁명공간의 7·29민참의원 선거

 

1960년 4월혁명 공간에서 혁신 세력은 조직과 자금 면에서 보수정당에 극히 불리하였기 때문에, 주로 선전 홍보에 주력하였다.

대표적으로 사회대중당은 ‘이것저것 다 썩었다. 혁신밖에 살길 없다.’, ‘보수하다 이 꼴 됐다. 혁신해서 바로 잡자’ 등의 선거 구호로 과반수 의석을 목표하였다.

특히 ‘미군정 당시의 한국민주당 시대부터 4·19혁명 직전까지의 광범위한 구악을 들추어내겠다’라고 한국민주당의 후신인 민주당에 전면 선전포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혁신계 중 민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4석, 한국사회당과 혁신동지총연맹이 각각 1개의 의석을 차지하고, 참의원 선거는 사회대중당만 1석을 차지하였다. 오히려 민주당이 민의원 233석, 참의원 58석을 뽑는 선거에서 민의원 175명, 참의원 31명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물론 이유는 많았다.

 

이승만 하야 이후 선거까지 약 3개월이란 시간으로 조직을 만들어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또한 선거 자금의 부족과 혁신계 연합전선 형성 실패, 내부분열 그리고 용공 시비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도 특기할 만한 것은 ‘반혁명분자 출마저지투쟁’이었다.

 

자유당 부정선거 원흉으로 지목된 입후보자와 부정 축재자 인사들이 입후보한 해당 선거구를 중심으로 사퇴 투쟁이 전개됐다. 3·15부정선거 규탄의 중심지였던 마산에는 ‘3·15청년동지회’를 중심으로 출마규탄성토대회까지 개최되었다.

 

‘반혁명분자 출마저지투쟁’은 선거 직후 개표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부정이 발각되자 ‘부정선거를 다시 하라’며 투표함을 소각 파괴하였다.

이는 이승만 정권 시절 선거 부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당한 항거였다. 또한 반혁명세력에 대한 단죄이자 부정선거 원흉, 부정 축재자 등 인적 청산에 대한 실력행사였다.

 

혁신계 대표적 정당 중 하나인 사회대중당은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적 파행과 범죄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책임 추궁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금 4·10선거에 필요한 선거 투쟁이 이미 64년 전에 시행된 것이다.


 노동자여! 윤석열과 국힘을 포위하라!

 

윤석열의 대통령 수준은 너무 낮고 무식(無識)하고 무지(無知)하여 독재라 칭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그나마 민중의 눈치를 보고 민중을 두려워하며 독재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눈 아래에 민중은 없고 검찰 졸개와 태극기 부대만 있다. 민심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무례하고 방자하게 민중을 업신여긴다. 

 

윤석열은 2년 동안 외교·국방·경제와 반노동·반농민 정책 등 국정을 총체적 위기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언론·표현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까지도 짓밟았다. 입만 벌리면  윤석열은 재벌과 기득권을 옹호하는 말 만 골라서 하고, 민중에게는 오로지 굴종만을 요구했다. 외국에 나가면 실언과 의전 실수 연발이고, 망언으로 외교 참사만 일으킨다. 

 

하기야 사법고시를 여덟 번 떨어지고 아홉 번 만에 붙어, 오로지 검찰 생활만 한 정치 초년생이기에 예견했지만, 그래도 철학이 너무 빈곤하다. 

‘안하무인(眼下無人)’, ‘천방지축(天方地軸)’이 딱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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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동울산시장 방문 항의 하는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치실천단 피케팅. 2024.3.26  울산 동구 

 

인류가 원시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발전하는 힘의 근원은 인간의 노동에 있다. 노동의 주체는 노동자다. 노동자가 노동운동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 발전 법칙이다. 

 

노동조합은 누가 일방적 지시로 만든 것이 아니고, 민주적 방법으로 모든 노동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공론화하여 만든 것이다. 어떤 정치세력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유치한 생각으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용서받지 못하는 범죄행위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용납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의 폭주가 치닫고 있지만 이제 끝이 보인다. 

 

故 양회동 3지대장이 마지막 남긴 말이다.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놈 꼭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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