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장 노동운동 이대로 좋은가
  • ㅡ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과 대공장 투쟁을 적극 결합하자 ! (2)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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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지난 7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선제적 투쟁과 법 제도화 요구를 결의했다.

 

5.  ‘관건적 원청’을 산별교섭에 불러내는 문제에 대해 

 

현재 금속노조가 현대차, 기아차, 현대중공업,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등 전략적 사업장을 대거 포함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금속노조를 움직인다면 전체 금속산업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도 원-하청 문제를 쟁점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형식상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올해의 경우 10차례 중앙교섭을 가질 때까지 사용자 측인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는 금속노조가 제시한 임금인상안, 고용 의제, 타임오프 문제와 같은 핵심 요구안에 대해 자신들의 안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 참여 사업장들은 대부분 중소하청부품사로서 대표성이나 실제적 역량이 미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따라서 금속노조 산별교섭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관건은 사용자 측 대표 중에서도 반드시 영향력 있는 중요한 ‘원청’ 즉 ‘관건적 원청’이 참여토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현대-기아 계열사의 원청인 현대차그룹의 대표이사를 참여토록 만드는 일이 핵심이다. 완성차와 계열사 등 현대차그룹과 관련된 회사들은 전체 금속노조 18만여 명 조합원 중 11만여 명으로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아래 <표1> 참조)

 

<표1>  금속노조 조합원 분류 현황 (2020.12.30. 현재)

금속노조 가입 현황.png.jpg
자료: 김남수, 2021년, “금속노조 진단과 개혁 방향(2)”

 

 그렇다면 금속노조는 이러한 ‘관건적 원청’을 어떻게 불러낼 수 있을까? 그들이 완강하게 산별 교섭을 거부할 경우 법적으로 강제할 수단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 해결의 열쇠는 그들 원청(재벌 총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가지고 있다. 원청 지부, 다시 말해서 대공장 정규직노조가 산별교섭에 참가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즉 현대차 지부, 기아차 지부, 현대중공업 지부 등 금속노조에 소속된 대기업 지부들이 산별 중앙교섭에 참여하는 것이 해결의 관건이다. 


 전략사업장 기업지부가 산별 중앙교섭에 참여할 경우 그 사용자인 ‘원청’ 역시 참여하지 않고서는 배겨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금속노조가 합법적인 노조로서 노동 3권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약 금속노조의 교섭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3호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와의 단체협약 체결 기타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경우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의 대상이 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벌칙(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가해진다.


따라서 대기업 지부가 산별 중앙교섭에 참여하면서 교섭권을 금속노조에 위임할 경우, 원청은 단체교섭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다른 한편 이렇듯 원청과 하청 사업장이 함께 참여하는 산별교섭은 금속노조로 하여금 다양하고 강력한 투쟁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끔 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미국의 ‘빅3’(GM, 포드, 스텔란티스)를 굴복시킨 사례를 소개하도록 하자.


2023년 전미자동차노조(UAW, United Auto Workers)는 완성차 빅3를 상대로 9월 14일부터 10월 25일까지 40여 일간의 파업 투쟁을 벌인 결과 완승을 거두었다. 4년간 임금을 25% 단계적으로 인상키로 하였으며, 물가 상승에 따라 임금을 추가로 올리는 ‘인플레 연동 생활비 조정제도’(COLA)도 복원하기로 함으로써 임금은 사실상 33% 인상되었다. 그 밖에도 빅3는 협약 비준 즉시 최소 90일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누구도 3개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로 남지 않도록 하였으며, 포드사의 경우 그간 논란이 되온 신입사원에게 경력사원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이중임금제'를 2개 공장서 철폐하고 초임을 대폭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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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자동차노조(UAW)는 3개 업체의 노조원 약 14만 6,000명을 대표하는 산별노조이다. UAW가 이렇듯 막강한 빅3를 상대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부품사와 완성차 노동자들의 단결된 위력과 치밀한 투쟁 전술 때문이다. 이번에 UAW가 사용한 전술은 무작위로 파업 공장을 늘려가며 사측이 대비할 수 없게 만드는 소위 ‘스탠딩(Standing) 파업’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업체당 1개 사업장에서 1만 3,000명의 조합원이 파업을 시작했지만, 한 달 후에는 22개 주의 8개 공장과 38개 부품업체에서 총 5만 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파업으로 발전하였다. 


UAW는 수익성을 기준으로 우선 3개 공장을 선택해 9월 15일부터 "제한적이고 표적화된" 공격을 시작했다. 디트로이트 3개 사(Detroit Three)는 처음에는 전기자동차로 전환하는데   많은 이윤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오히려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며 노조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교섭이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않자 UAW는 다른 공장의 조합원들도 파업에 돌입하도록 하였다. 10월 11일 포드의 켄터키주 공장 노조원 약 8,700명이 추가로 파업에 동참하자 빅3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켄터키 공장은 포드사 연간 매출의 16%(약 250억 달러)를 책임지는 최대 생산기지이다. 이렇듯 가장 잘 팔리는 차종을 생산하는 공장까지 파업이 확대되자 디트로이트는 대혼란에 빠졌다.


결국 막대한 손실 앞에서 ‘빅3’ 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파업 돌입 41일째인 10월 25일 포드가 제일 먼저 백기를 들었으며, 44일째인 10월 28일 스텔란티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46일째인 10월 30일 GM이 차례로 잠정 합의에 서명했다. 컨설팅업체 앤더슨 이코노믹에 따르면 이번 파업으로 빅3는 약 34억 5,000만 달러의 매출 손실을 입었으며, 미국 자동차산업 전체로는 75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UAW 파업-2.jpg


이상의 전미자동차노조(UAW)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완성차 노조가 주도하고 부품사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총파업의 위력은 막강하다.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에서 원청 노동자의 참여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특히 완성차와 같이 산업 사슬의 정점에 있는 전략사업장의 정규직의 파업은 자본에 대한 타격력을 극대화한다. 돈이 ‘지상 언어’인 자본가들에게 하루 수천억 원씩 손실이 발생하면 이것만큼 큰 타격은 없다. 위에서도 막강한 빅3를 굴복시킨 것은 결국 천문학적으로 늘어가는 경제적 손실이었다. 


한국도 산별교섭을 매개로 원청과 부품사 노동자가 함께 투쟁에 참여하면 원청은 버틸 재간이 없다. 현대차·기아그룹은 한국 자동차시장의 80%를 독점하는데, 그 두 완성차와 계열사·부품사 노동자들 대부분이 금속노조에 가입한 상태다. 따라서 완성차인 현대차와 기아차의 지부가 산별교섭에 참여하면 다른 계열사나 부품사들 또한 산별교섭에 참여하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리하여 두 완성차 주도하에 금속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한국 자동차산업 전반은 총파업을 시작하는 셈이며, 여기에 조선업종 등 다른 업종까지 참여할 경우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만약 현대차그룹 노동자가 파업에 들어가면 원청이 입는 손실은 어느 정도나 될까? 증권가의 추정에 따르면 현대차는 2016년과 2017년 각각 24일간의 파업으로 14만 2,000대와 8만 9,000대의 생산 손실을 봤다. 금액으로 따지면 각각 1조 4,208억원과 1조 8,900만원이었다. 20여 일간의 파업으로 현대차는 1조 원 이상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만약 원-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무기한 총파업을 진행했다면, 한국 자동차산업이 입는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이 같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원청은 교섭에 적극 참여해서 스스로 ‘운전대’를 잡아야만 한다. 결국 전략사업장의 지부가 산별 중앙교섭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 모든 문제는 풀린다. 그 상대인 ‘원청’은 산별교섭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6. 민주노총 차원의 ‘제도개혁’ 투쟁으로의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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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를 비롯한 산하 산별·업종 조직의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힘을 바탕으로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에 관한 본격적인 임무는 ‘민주노총’이 떠맡아야 한다. 민주노총은 이들 가맹조직의 요구를 충분히 법·제도 개혁 차원의 의제로 상승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은 노조법 2, 3조 개정 요구와 ‘정년연장’ 요구를 함께 제출하는 것이다. 지금 시기 이 두 가지 요구는 상호 긴밀히 의존하며, 이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그리고 원-하청 노동자가 전략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 


때마침 전 사회적으로 국민연금 개정과 관련한 논의가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이 위 양자의 요구를 결합한 투쟁을 전개하는데 있어 호기로 작용한다. 정부가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기존 60세에서 앞으로 65세까지 계속해서 늦추고 있기에 노동자들의 ‘정년연장’ 요구는 충분히 명분이 서며, 전 세계적으로 볼 때도 ‘국민연금 수령과 연계한 정년연장’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OECD 국가 중 한국은 노인 빈곤율 1위인데, 만약 법적으로 정년연장 없이 국민연금 수령 시기만 늦출 경우 더욱 많은 빈곤 노인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60세에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다른 생계 거리가 없기에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여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고, 전체 노동시장 조건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처럼 국민연금 개혁이 사회적 쟁점이 되는 시기를 잘 이용해서 민주노총이 지금까지 추진하던 국회를 통한 입법 투쟁과 가맹 산별 조직의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결합하면,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은 새로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정리하면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투쟁 주체를 최대한 확대하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왔지만, 실제 노조법 2, 3조 개정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해 당사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는 자회사, 학급 영양사, 청소노동자, 대기업 사내 비정규직 등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이 때문에 노조법 2, 3조 관련한 당사자들은 생각보다도 훨씬 광범위하다. 공공의료원의 요양관리원 등 정부가 져야 할 사회서비스를 개인에게 위탁시킨 경우도, 임금통제나 운영형태에 있어 정부가 직간접적인 관여를 하기에 정부가 사실상의 원청이다. 이후 투쟁이 발전하면 이런 분야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급속히 늘어난 ‘플랫폼노동자’를 포함하여 특수고용노동자가 문제이다. 통계에 따르면 이 분야의 종사자는 현재 약 220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잘 조직하면 큰 힘을 보탤 수 있지만 그 대신 약점도 적지 않다. 그 분산성으로 인해 조직이 어려우며, 사회적 파장 정도에 비춰볼 때 대기업 제조업 노동자에 비해 타격력이 약하다. 하지만 금속노조와 같은 제조업 노동자들과 함께 싸운다면 그 힘은 배가 될 수 있다. 수적인 다수가 갖는 강점은 선거 시기에 ‘표심’으로 표출될 수도 있기에 이후 진보정당 운동과도 관련된다. 민주노총은 총연맹으로서 이들 제 분야의 분산된 역량을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으로 모아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비스연맹 소속 배달플랫폼노조가 배달의민족 라이더 배달료 삭감에 맞서 B마트 멈춤의 날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2024.8.27).jpg
서비스연맹 소속 배달플랫폼노조가 배달의민족 라이더 배달료 삭감에 맞서 B마트 멈춤의 날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4.8.27)


둘째, 민주노총은 정치적으로 진보정당,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손잡고 국회 투쟁을 병행하는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 이 경우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바탕으로 하기에 기존과는 다른 양상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이들 제도권 정당과의 관계에 있어 좀 더 단호한 협상력을 유지해야 하며, 원래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의 밀실 야합으로 누더기로 변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물론 민주노총은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다. 현장 투쟁과 정치투쟁을 병행할 경우, 그 힘을 바탕으로 진보정치 운동의 재도약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과정에서 보여준 불철저한 태도를 폭로하면서, 민주노총은 진보 정치로의 결집을 호소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현재의 최저임금 투쟁의 문제점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의 최저임금 투쟁의 진행방식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과가 나온 후에 금속노조 등 산하 산별·업종이 이를 뒤따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순서상 잘못되었다. 이 같은 패턴으로는 업종과 산별 조직의 연합체인 민주노총은 위로부터의 교섭에만 의존하는 셈이 되며, 최임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당연히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압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산별교섭을 최임위 교섭 앞에 배치하여야 한다. 즉 “산별교섭→ 최임위 심의”로 그 전술을 전환해야 한다. 


산별교섭을 앞세운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협상 전략은 교섭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지금처럼 사실상 5월 하순~6월 말경 민주노총이 최임위에서 내년도 인상안을 결정하고 다른 가맹조직들이 이를 따르는 형식이 아니라, 금속노조처럼 가장 강력한 산별노조를 앞세워 상대적으로 높은 ‘산별 임금인상의 성과’를 도출한 뒤, 이를 기준으로 최임위 내에서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과 사용자 측 대표를 압박함으로써 최저임금이 최대한 높게 책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대로 산별교섭을 진행할 경우, 자연스럽게 5, 6월이 되면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최저임금 교섭과 산별 투쟁이 서로 맞닿게 된다. 이리하여 민주노총은 이 같은 밑으로부터의 투쟁력을 바탕으로 최임위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최저임금 투쟁을 개선하는 문제도 그 관건은 산별교섭 강화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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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심의위원회


7. 남은 과제ㅡ 대공장 노동운동의 혁신과 진보정당의 역할

 

 이제 내부 주체의 결심에 대해 언급할 차례다. 필자가 지금까지 제시한 방안에 대해 설령 대다수가 수긍할지라도, 막상 당사자인 대기업 지부 간부와 활동가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방안은 실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초점은 다시 대공장으로 맞춰진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대공장 노동운동 실태에 비추어 보면 그들은 십중팔구 ‘조합원 정서’ 탓을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그들의 정체를 가감 없이 폭로하는 길밖에 없다. 노동계와 진보 정치를 통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을 힘있게 전개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즉 현재 대공장 노동운동에서 만연하고 있는 신노사협조주의, 개량주의가 그것이다. 이 문제는 지금 대단히 심각하다. 올해 현대차 임투 과정에서도 조합원 대중들이 총파업과 같이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절실한 요구인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철폐’를 관철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이러한 열망을 좌절시킨 것은 조합 간부들이었다.


 예컨대, 사측과의 본격 교섭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대차 지부가 실시한 확대 간부 설문조사를 보도록 하자. 요구 사항의 관철을 위한 투쟁 전술과 관련한 설문 항목에서 몇 가지가 제시되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투쟁 방식을 선호하는 결과가 나왔다. 즉 “파업투쟁을 해서라도 반드시 노동조합 요구안을 쟁취해야 한다”처럼 강경 투쟁을 요구하는 답변이 압도적(65%)으로 높았던 것이다(아래 사진) 이는 일정하게 현장 조합원 대중들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현대차지부 확대 간부 기초 설문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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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지부신문  (2024.5.2.)

         

그런데도 문용문 집행부는 이 같은 현장 조합원의 절실한 바램을 외면한 채, 지난해 안현호 집행부 때와 마찬가지로 파업 한번 해보지도 않고 조합원들의 핵심 요구안의 관철을 포기했다. 문용문 지부장은 지난해에 있었던 임원선거 때 자신은 ‘구속을 각오하고서라도’ 이들 요구의 관철을 위한 돌파구를 내겠다고 큰 소리쳤던 사람이다. 

 

이처럼 소위 민주파라 불리는 현장 활동가들의 신노사협조주의 경향은 단지 현 ‘민주현장’ 집행부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 직전 ‘금속연대’(정의당 계열) 집행부 역시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실례로 당시 안현호 집행부는 5월 임단투를 앞둔 시점에서 사측 관리자들과 10여 일간의 해외 동반 연수를 다녀왔다. 그리고 2022년 7월 거통고 하청노동자 파업이 절정일 무렵에는, 금속노조 본조의 총파업 지시를 무시하고 사측과 임단협을 타결짓는 바람에 전체 투쟁 전선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다.


이렇듯 지금 대공장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되찾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중임을 떠맡아야 할 대공장 내 변혁적 노동운동 세력은 아직  역량이 미약한 형편이다. 수십 년 동안 사측과 결탁하여 구축한 기득권 세력들의 벽이 워낙 두텁기 때문이다. 물론 몇 년 전 현대차 내 현장 비판언론으로 등장한 <노동자함성>의 날카로운 논조와 이에 대한 조합원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 그리고 지난해 현대차 10대 지부장 선거에 출마하여 바람을 일으킨 강봉진 후보와 같은 참신한 인물은 앞으로 대공장운동에 대해 희망을 갖게끔 하는 요소들이다. 후자는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4,500여의 득표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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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문 집행부의 잠정합의안 부결을  호소하는 현장 대자보

 

이들은 아직 미약할지라도 한국의 전략사업장에서 변혁적 노동운동 세력이 힘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그 과정을 좀 더 앞당기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현대차, 기아차, 현대중공업 등 대공장 노동운동 동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들 전략사업장은 누가 뭐라 해도 한국 노동운동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노동계와 진보 진영 내의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 변혁적 노동운동세력이 무럭무럭 커나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는 한편, 신노사협조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비판으로 고립시켜야 한다.

 

진보정당 또한 대공장 노동운동에 대해서 함께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공장의 현장 조직들이 ‘정파’라고 불리는 것은 모두 각각의 정치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공장의 현장 조직들은 대부분 진보정당과 복잡하고도 긴밀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현 문용문 지부장을 배출한 ‘민주현장’ 조직은 진보당 계열이며, 그 직전의 안현호 집행부는 정의당 계열이다. 따라서 진보당이나 정의당이 만약 올바른 정치 방침을 갖고서 민주현장이나 금속연대를 지도하였더라면 지금의 신노사협조주의 같은 문제는 생겨날 리 만무하다. 이런 문제의 출현은 변명할 여지 없이 이들 진보정당의 정치 방침과 지도력의 결함을 반영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의 근원이 진보정당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한 실례로, 얼마 전 4.10 총선에서 보았듯이 진보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위성정당에 참여하고 진보진영의 독자성과 대단결 원칙을 훼손시켰다. 울산지역에서는 북구에 출마한 자당 후보 윤종오 씨의 당선을 위해 이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사퇴를 약속받는 대신, 그 대가로 동구에서 민주노총이 공식 지지한 노동당 후보 이장우 씨에 대한 사실상의 낙선운동을 벌이면서까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밀어주는 식으로 무원칙한 정치적 거래를 서슴지 않았다.


 이렇듯 진보진영 대단결의 원칙을 훼손해 가며 얻은 3개 국회 의석으로 지금 진보당은 무엇을 하고 있나? 청문회 개최 문제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대 보수정당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식물국회에서, 노조법 2, 3조 개정을 포함한 산적한 민생 현안을 돌아볼 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처럼 스스로 의회주의에 매몰된 길을 걷고 있는 진보당이기에 현대차 지부처럼 중요한 전략사업장에서 자파 조직원들이 ‘신노사협조주의’에 빠져 한국 노동운동을 망치고 있는 데도 그런 사실을 애써 모른 체 한다. 이 같은 잘못된 정치노선 속에서 올바른 정치 지도력이 나올 리가 없다. 


이러한 문제는 정의당 계열의 금속연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노동 현장이든 진보정당이든 뼈를 깎는 쇄신이 없이는 한국 변혁운동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울산 동구에서 민주당 김태선 후보 지지 유세 를 하고 있는 진보당 윤희숙 대표.jpg
울산 동구에서   민주당  김태선 후보 지지 유세 를 하고 있는 진보당  윤희숙 대표


4. 맺으며 ㅡ 행동강령 

 

이글의 본 주제인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해 보는 것으로 이글을 마치도록 한다.


첫째, 진보당과 정의당은 진보정치의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을 주목해야 한다. 이 투쟁은 결코 일회적인 투쟁으로 끝날 수 없으며, 앞으로도 한국의 재벌체제 하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원-하청 문제가 존재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현장 투쟁이 활성화되어야만 진보정치 또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누차 확인된 바 있다. 그것은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그 숫자나 사회적 파급력에 있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주력군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심전력 복무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정당 운동이 발전하는 길이며, 바로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나갈 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자신과 긴밀한 조직적 관계에 있는 대공장 현장조직을 올바른 정치적 방향으로 인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지금 시기에 대공장 지부가 산별교섭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장 투쟁과 산별교섭 투쟁, 그리고 이러한 투쟁들이 민주노총 차원에서 제도개선 투쟁으로 승화하는 방식으로 투쟁이 활성화될 경우, 이는 당연히 이후 정치 일정을 통해 진보정당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대연합당’ 논의를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으며, 자칫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는 한국 진보정당 운동이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다시금 분명히 하면서, 독자적 생존력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현재 민주노총의 집행부는 양경수 위원장을 대표로 하는 진보당 계열이며, 금속노조 집행부는 장창렬 위원장을 대표로 하는 정의당 계열이다. 그리고 현대차 지부의 문용문 집행부가 진보당 계열임을 감안할 때, 이들이 함께 ‘결심’을 하면 현재 부딪치고 있는 제반의 문제는 모두 해결될 수 있다. 이들이 최소한 변혁적 양심을 갖고서 현 투쟁의 관건인 산별교섭 강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현대차 지부가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에 내년부터라도 당장 참여키로 결정한다면 모든 문제는 순조롭게 풀릴 수 있다. 


둘째, 이와는 별도로 이들 조직에 속하지 않는 활동가들에게 호소한다. 내년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등 산별노조 대의원대회에 맞추어 ▲노조법 2,3조 개정과 정년연장 투쟁의 결합 ▲전략적 기업지부의 산별교섭 참여 이상 두 가지 안건이 정식의제로 채택될 수 있도록 목적의식적인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다. 특히 내년에 임원선거가 있는 대공장 전략사업장의 경우, 현장 제조직과 양심적 활동가들이 이 같은 선거강령을 중심으로 ‘선거연합’을 결성하여 조합원 대중들에게 널리 그 필요성을 알려 나가도록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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