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현대차  현장신문 <노동자함성 1호> 2020. 7.20
등록일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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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술(1902.4.26.-1950.7.3.) 일제강점기감시대상인물 신상카드, 1933년, 서대문형무소

 

부유한 지역 명문가문 출신으로 동경유학 그리고 귀국 후 민족교육을 앞장섰던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던 그는 왜 항일투쟁에 앞장선 노동혁명가로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었을까.
이관술(李觀述 1902~1950)은 일제강점기 후반 대표적인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였다. 해방 직후 첫 번째 정치여론조사에서도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힐 만큼 신망을 가득 받았다. 하지만 남과 북으로 나뉜 이념전쟁에서 남한 사회주의를 이끌던 이관술은 미군정이 조작한 사건으로 체포, 수감됐다. 결국 70년 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규모 학살의 첫 과녁이 되어 운명했다. 비운의 혁명가로 잊혔다 다시 주목하게 된 이관술. 그의 치열했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약소 민족의 청년, 민족교육가를 꿈꿨으나...

 

이관술이 근대 교육을 받은 것은 1923년 22살 때 서울 중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다. 지역 명문가문에 재산도 넉넉했던 집안의 기대를 안고 늦은 나이에 들어간 고보에서 수재로 꼽히면서 당시 최고 인재만 지원했다는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 합격한다. 어쩌면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현실과 거리를 두고 동경 유학생 신분의 엘리트로 꽃길을 걸을 것만 같았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유학생들은 1920년 대 초 점점 영향력이 커져간 사회주의 사상아래 조선공산당이나 고려청년회에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조선인노동조합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이관술은 유학시절 내내 사회주의를 알았지만 자신을 이상적인 민족주의자로 한정 지었다. 약소민족 청년으로 민족에 도움이 되겠다는 소극적인 태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1929년 유학을 마친 뒤 고국에 돌아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첫 해 부터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동덕여고보에서 사회주의를 선택하다 


이관술은 1932년까지 만 4년 동안 길지 않은 교사 생활을 했다. 역사와 지리 과목을 가르쳤는데, 유학생 출신이라지만 학생들이 ‘물장수’란 별명을 붙일 만큼 친근한 선생님이었다. 늘 겸손한 품성과 진지한 교육열로 이후 학생 독립운동에 나섰던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제자들이 이효정, 박진홍, 임순득, 김재선, 이종희 등으로 졸업 후에도 독립운동에 나섰던 동량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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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고보 교사 시절의 이관술(왼쪽에서 세번째) 

 


그들 모두를 변화시킨 사건은 부임 첫해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이었다. 광주에서 시작해 서울로 번져, 학생들이 궐기와 시위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동안 민족계몽을 앞세워 학교를 운영해왔던 인사들이 일제의 압박에 굴복해 받고 휴교를 하고 조기방학에 들어갔다. 이 때 이관술은 일제와 타협하는 민족주의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일제에 맞설 방식을 고민하면서 사회주의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이다. 유학시절 역사 연구의 한 방법론으로 여겼던 유물사관을 상기했고 교사 신분을 넘어 사회주의 계열 실천 활동에 나서게 됐다. 먼저 학교 안에선 학생독서회를 지도했고, 밖으로는 “경성반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 반제동맹은 1931년 9월부터 시작된 일제의 만주침공에 반대하는 명분을 걸고 만든 비밀조직이었다.
 
운명의 동지 이재유와 함께 한 ‘경성트로이카’


이관술은 경성반제동맹 결성부터 깊게 개입했고, 재학생과 졸업생을 모아 비밀독서회를 연달아 만들었다. 그러나 1933년 초 일본경찰에 활동이 발각됐고 연행자 중 43명이 정식으로 법원에 송국됐다. 이때 이관술도 첫 체포와 구속을 겪게 됐다. 주모자로 분류된 이관술은 혹독한 고문을 겪어 병보석으로 가석방된다. 하지만 출소할 때 기쁨은 잠시였고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4월에 출소할 때 ‘경성트로이카’와 이재유라는 인물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동생 이순금 역시 이재유 그룹에 속해 활동했다 옥고를 겪었다. 
이재유는 일제강점기 중후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관술은 이재유보다 3살이 더 많지만 사상과 실천면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1934년 9월 운명처럼 만난 뒤 경성트로이카 내에서 가장 중요한 동지가 된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배문석  (울산노동역사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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