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현대차  현장신문 <노동자함성 17호> 2022. 1.25
등록일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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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열사(위).  노동조합장으로 치러진 신승훈열사 장례행렬.

 

 

“신승훈 동지여, 신승훈 열사여
이 무슨 황망한 일입니까?
21세기 백주 대낮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씀입니까?
억울해서 어떻게 떠나시렵니까?” (2012.2.7. 장례식 추도사 중에서)

신승훈 동지가 2012.1.15 세상을 떠났다. 1월 8일 회사의 부당한 노동통제에 항거하여 분신한 지 일주일 만이며, 입사한 후 21년 째였다. 그는 1968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1991년 현대자동차 소형엔진부에 입사한 그는 2003년  공작 8,9공장 소위원 의장, 2009년 엔진5부 현장조직위원회 의장을 역임 하는 등 줄곧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1.  현장탄압에 항거한 분신

 

이명박 정권의 비호 하에서 당시 현대차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탄압을 자행했다. 생산라인의 경우 생산제일주의를 부르짖는 현장통제가 더욱 극심해져 조합원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었다. 동지가 일하던 엔진5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승훈 동지는 노사 간 맨아워 협상을 통해  엔진테스트 중에 불량엔진이 발생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공정개선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감사실에 픔질 확보를 위한 공정개선 필요성을 제보하였다. 하지만 부서장과 관리자들은 현장탄압으로 신승훈 동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분신 전날(1월 7일) 오전에는 엔진테스트 공정 앞 휴게석에서 열사가 쉬고 있는 것을 본 부서장은 '작업시간에 공정이탈'하지 말라고 협박하였다. 신 동지가 이에 항의하자, 징계운운 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장관리자들에게 1층 가공라인과 2층 조립공정에서 일하는 조합원이 정위치에 없는 경우 무단이탈로 보고한 후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신승훈 동지는 이 같은 사측 관리자들의 현장탄압에 강력히 항의하고, 노동조합에 이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한 후 강력한 대응조치를 요구했다. 노동조합의 침묵과 고립감 속에, 결국 동지는 휴일특근이 있던 1월 8일 점심시간, 자신이 일하던 작업공정에서 분신으로 항거했다. 사측의 현장통제와 노동탄압에 맞서서 분신으로 항거한 것이다.

 

“현대차재벌, 처음엔 통상적 노무관리라며 책임 회피 시도하다, 
열사가 노트북에 남긴 현장탄압 기록 발견되자 비로소 사과” 

 

2. 기만적인 사측의 태도

 

현대차 자본은 분신 초기 통상적인 노무관리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열사가 직접 자신의 노트북에 남긴 현장탄압 실상과 사측 관리자에 대한 항의문서가 발견되자, 비로소 사태 수습에 나섰다. 
현대차지부는 1월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고 신승훈 현장위원을 '노동해방열사'로 공식 추서하였다. "이명박 정권과 재벌에 의해 자행되는 노동자, 농민, 서민들에 대한 착취와 탄압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끝내는 신승훈 열사를 분신에 이르게 했다"고 규탄했다.
노사는 협상을 통해 신승훈 동지의 치료 일체와 생계비에 관한 산재 처우 기준 지원, 공장혁신팀 해체, 관련 책임자 처벌과 대표 사과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중적 태도를 멈추지 않았다. 합의가 이뤄진 직후 아직 열사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있었음에도, 문용문 지부장과 김홍규 수석부지부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 하였다. 각 공장 식당에 부착된 사장 명의의 사과 대자보는 부착과 동시에 거의 다 없어졌으며, 현장혁신팀의 아류격인 공장별 품질생산부서가 계속해서 존속했다.

 

3. 노동해방 투쟁을 지키는 솥발산 영령이 되다 .

 

회사와 유가족간 별도 보상절차 합의과정은 지난했다. 이 때문에 동지가 분신한 지 한 달, 생을 마감한 지 23일 째인 2월 7일이 되어서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영정을 실은 운구 차량은 그가 마지막까지 일했던 매암동 현대차 엔진5부 공장으로 향했다. 작업장 곳곳에는 “손끝에서 맺은 정성, 일등품질 고객만족”, “내가 보낸 티끌 하나, 태산 되어 돌아온다”는 등의 표어가 눈에 띄었다. 
신승훈 동지의 유해는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들을 뒤로한 채, 울산 동구 방어진 화장터에서 화장된 후 경남 양산시 솥발산 열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우리 노동자는 돈을 벌어주는 기계이고 고장 나면 버리는 부품이고, 자기들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협박하여 굴종하게 만들어버리는 노예입니다. … 분노하겠습니다. 저항하겠습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추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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