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허영구(전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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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문장대

 

폭염이 한 달째 지속되고 있어 한낮에는 야외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무더울 뿐만 아니라 밤에도 열대야로 고통을 받는다고 아우성이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이 더운 날씨지만 산에 오르기로 했다. 작년에 이어 2박 3일 모임 수련회 중 하루 속리산에 올랐다. 원점회귀를 해야 하기에 최단코스인 화북분소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근처 마트에 들러 점심을 먹을 빵과 이온음료를 사서 일행과 함께 출발했다. 가끔 천둥과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져 비가 많이 내린 줄 알았는데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보니 생각과는 다르다. 화북분소(404m)에서 문장대까지는 3.2km로 짧은 거리지만 높이가 1,054m에 달하니 제법 가파른 등산로를 걸어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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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안 되어 출발했는데 벌써 하산하는 등산객도 보인다. 올여름 이런저런 일로 산을 자주 찾지 않아 발걸음이 무거운 탓도 있지만 바람도 별로 없는 더운 날씨라 더더욱 힘이 든다. 출발한 지 조금 지났는데도 땀이 쏟아진다. 띄엄띄엄 만나는 등산객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걸 보니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정상은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가끔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어 주면 땀에 젖은 몸도 시원해진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멋있는 화강암 바위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큰 바위를 뒤덮은 이끼와 지의류는 서로 자리하면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산 매미도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 아쉬운 듯 부지런히 울어댄다. 

 

정상 근처 산죽은 작년에 이어 시커멓게 말라 죽었다. 주변에 나무가 자라 햇빛을 가리면서 생긴 천이(遷移) 현상으로 보인다. 마지막 능선을 올라 설 무렵 빗방울이 떨어진다. 요즘같이 더운 날은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국지성 소나기가 쏟아지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약간 뿌리고 지나가는 비다. 

 

능선에 올라서자 멋있는 바위들이 여기저기 서 있고 멀리 산맥은 끝없이 이어져 첩첩산중이다. 다시 마지막 힘을 내 문장대에 오른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금강, 설악, 오대산을 거쳐 소백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만난 비조령 - 갈령삼거리 -형제봉 - 천왕봉 - 문장대 - 밤티재 - 늘재 - 청화산 - 조항산 - 밀재 - 대야산 - 불란치재 - 버리미기재 - 장성봉 – 악휘봉삼거리까지의 속리산 종주구간은 멋있는 화강암 바위의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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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등산객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바위 위에 새카맣게 흩어져 있던 날개 달린 개미들이 사람들 몸에 달라붙어 난리가 아니다. 다름 아닌 결혼비행을 끝낸 수캐미들의 마지막 모습인데 바람 불지 않는 화창한 날 높은 산 정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개체를 보존하려는 생명체들의 모습이다. 

 

오래 머물 수 없어 서둘러 내려와 옛 휴게소 자리 쉼터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산에서 만나는 등산객들은 모두 여유롭다. 그들도 삶의 현실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잠시 속세를 떠나 산에 들면 그렇게 자연이 된다. 웃는 얼굴로 과자 하나라도 나눠 먹고 친한 사람처럼 인사하고 헤어진다. 언제 만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추억이 되고 인연이 된다. 

 

이제 하산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올라갈 때는 천근만근이던 몸도 내려올 때는 가볍다. 산을 다 내려 온 지점 계곡에 발 담그고 세수하고 나니 폭염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그저 시원하다. 주차장 주변 단풍나무 잎 아주 옅게 가을 색깔이 묻어난다. 더위에 지쳐 보이지 않을 뿐 가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올랐던 속리산을 내려와 다시 바라본다. 오르기 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인생의 뒤안길 같은 느낌이랄까. 산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경북 상주와 충북 괴산을 잇는 지방도 사이로 백두대간이 가로지른다. 높은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고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보듬어 준다.  

(520회, 속리산, 2024.8.1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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