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경북북부 이주노동자센터)
등록일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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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들이 독일에 도착했을 때 독일 노동부장관이 했다는 이 유명한 말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막상 온 것은 사람이었다.’

 

켄 로치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들고 우리 곁으로 왔다. 이름하여 ‘나의 올드 오크’. 원작은 ‘The OLD OAK’인데,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제목은 ‘나의 올드 오크’이다. 올드 오크가 영국의 어느 탄광 마을에 있는 유일한 펍(선술집)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내가 가고 싶은 우리 동네 펍이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을, 영화가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 ‘나의 올드 오크’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건설노동자들이,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불법고용 근절을 주장할 때,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함께 투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구호가 불법이주노동자 퇴출이란 구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탄압에다가 건설경기의 악화로 생존이 위협당하는 건설노동자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이럴 수는 없다.

 

약한 고리를 붙들고 투쟁하는 것은 유의미하고 적절한 투쟁이기는 하나, 적의 약한 고리를 물고 늘어지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2023년 연초부터 우리는 건설노조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탄압을 받으면서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긴 터라, 우리는 건설노조 동지들을 구석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건설노조 동지들을 만나서 읍소하면 동지들의 상황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공격이 멈춰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민주노조가 외치는 당당한 외침, ‘국경과 인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외침이, 건설노조 동지들의 외침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만남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급기야 파업현장에 참여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함께 타고 이동하는 버스에 ‘불법이주노동자 퇴출하자!’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우리가 1월부터 4월까지 단속추방을 저지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비정규직 이제그만’ 동지들, 민주노총 동지들, 장애인 동지들을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 동지들, 그리고 하루 파업을 결심하고 혹은 야간을 마치고 달려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출입국 앞에서 목이 쉬도록 외쳤던 ‘불법 사람은 없다!’라는 외침은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흩어지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건설노조 동지(?)들이 출입국 앞에서 ‘불법이주노동자 추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파업하는 현장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세우고 등록ㆍ미등록을 확인한다고 신분증을 검사하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배격하고 추방하기 위해 공권력의 동원을 호소하는 건설노조(?)의 전술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자본은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통해 건설노조를 무력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소모품으로 동원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소모품이 될 수밖에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자본과 한통속이 되어서 그 소모품을 치우기에만 급급한 건설노조 동지들은 한 때 건설노동자가 아니라 노가다 막장으로 살면서 소모품의 삶을 강요당하던 시절을 잊지 말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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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소모품이 되지 않는 방법은, 등록노동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자본가의 법인 ‘고용허가제’와 출입국 관련 모든 법은 미등록노동자들이 등록노동자로 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자본가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악법 ‘고용허가제’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라는 우리 운동의 대의를 실천할 수밖에 없다. 사업장을 옮기지 말라는 악법을 엿 먹이며,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동지이다. 체류 기한을 넘기지 말라는 악법에 맞서 ‘엿 먹어라!’로 응수하며 미등록노동자가 되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동지이다. 그들은 고향의 가족들을 위해, 혹은 당당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기꺼이 미등록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있다. 강제 추방 단속에 혈안이 된 법무부와 그 하수인들은 자본가의 앞잡이가 되어 이들을 소모품으로 만들고 체포 연행하여 강제 구금 후 추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절규하는 것이다. 우리는 쓰고 버리는 종이컵이 아니다. 우리는 쓰다 버리는 걸레 쪼가리가 아니다.

 

미등록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이 자본가의 책동에 놀아나는 자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결국 자본가의 앞잡이이다. 너희는 외래종이라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감히 말한다. ‘너희들은 건설노조의 가면을 쓴 자본가의 앞잡이들이다.’

 

자, 이제 우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미등록노동자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힘이 없어서 자본가의 법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노동조합이라는 무기가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감히 우산을 그 로고로 쓰지 않는가? 이 우산 아래 들어오면 그 어떤 노동자라 하더라도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그게 거짓 선동일 리 없지 않은가?

 

다시 들어보자.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막상 온 것은 사람이었다.’ 결국 노동력으로 소모되지 않고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이미 와 있는 사람으로 함께 사는 방법은 우리에게 있다.

 

켄 로치가 우리에게 말했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함께 고민해 보자고……. 다만 그 소주를 우리끼리 마시지 말고, 문 걸고 우리끼리 마시지 말고, 함께 둘러앉아 마시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자고…….

 

출처 : <노동자신문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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