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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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조합원들이 사측과의 잠정 합의서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ㅡ  들어가며

 

현대차지부 2024년 임투가 지난 7월12일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58.93%(투표자 대비)로 통과되었다. 이로써 현대차지부의 올해 임투는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6년째 무쟁의 기록을 세워나간 것이다.


현대차지부의 금년도 주요 임투 요구안은 크게 ▲159,800원의 기본급 정액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 당기순이익 30%의 성과급 지급 등의 임금성 요구와 함께, 이와는  별도로 ▲국민연금 수령과 연계한 정년연장 실시 ▲임금피크제 철폐 ▲ 특별채용자에 대한 대법판결 준용 등의 제도성 요구안이 있다.


이번 현대차지부의 임투의 경우 임금성 요구안만 가지고서 본다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기본급 112,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에다 성과급 등을 합치면 대략 평균 5,012만원의 인상 효과가 있다. 물론 이는 세금 징수 전의 명목상 금액이다. 그중 87%(4,367만원)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성과급의 경우 거의 40% 가까이가 세금으로 원천 징수되기 때문에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이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어쨌거나 일반 중소 하청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정도 금액이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데도 왜 현대차 조합원들은 41%의 사람들이 이 잠정합의안에 반대했을까? 그리고 왜 대부분의 현장조직이 그처럼 강력하게 부결 메시지를 조합원들에게 전달했을까? 외부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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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합의안 부결을  호소하는 현장 대자보

 

1.  조합원들의 실제 바램

 

현대차지부에 있어 사실 올해 임투의 초점은 임금인상 몇 푼 올리는 것보다 앞서 ‘별도요구안’으로 제시된 부분에 있었다.  요즘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는 현대차에 있어 일정한 임금인상과 성과급 지급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주들에겐 이미 지난해 대비 61.5% 인상된 주당 11,400원, 배당총액 2조 9,900원이 지급됐다. 여기에 3년간 매년 주식 1%를 소각하기로 해서 매년 4천억 원이 주주 혜택으로 돌아간다. 정의선 회장과 사장단 등 임원급들도 두둑히 챙겼다. 대표이사 급여 인상률을 보면 정의선 회장 14.6%, 장재훈 사장 32%, 이동석 사장 53%로 현대차 조합원의 기본급 대비 인상률 3.47%에 비해 훨씬 높다. 

 

물론 대주주인 정의선 회장의 경우 위의 급여 인상분과는 별도로 1,500억원(현대차 638억원, 기아차 395억원, 현대글로비스 472억원, 현대모비스 13억원) 이상의 주식배당금이 별도로 주어진다. 


임금성 요구를 제외하면, 이번 임투에서 현대차 조합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정년연장이었다. 근래 들어 매년 2000여명씩 베이비붐 세대들이 정년퇴직을 하면서 전체 조합원 수가 눈에 띠게 줄어들고 있고, 현대차는 이들의 빈자리를 모두 촉탁이나 한시 공정(알바)으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 조합원들이 명목상 ‘억대 연봉’을 수령 한다고 해서 모두 풍족한 노동귀족이라고 간주해선 안 된다.  정년을 앞둔 조합원들에게는 국민연금 수령 때까지 공백을 채우는 문제는 여전히 '생존권'의 문제로 다가온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94%의 조합원이 퇴직 후 ‘숙련재고용’에 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이들은 퇴직하는 다음 날부터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반값 임금’을 받게 되고, 갑자기 정규직 노동자에서 비조합원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여 후배들 눈치를 보며 ‘굴욕스럽게’ 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은퇴 후 편안한 노후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재고용에 임하는 것은 이들 역시 아직 넉넉한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실제 자녀들의 교육 문제, 결혼 문제 등 아직 들어가야 할 돈이 많은 상황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셈이다. 물론 그들 부부의 양로 대책 또한 불충분하다.


따라서 그들이 받는 연봉이 겉으로 보기에 많아 보이는 것은 한국의 중소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그만큼 열악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다음으로, 별도 요구안 중 임금피크제 철폐는 정년연장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2016년 1월 1일부로 법정 정년이 60세(기존 55세, 현대차는 2011년부터 정년 59세+촉탁1년을 시행하고  있었음)로 연장되었지만, 사측은 여전히 59세에 임금을 동결하고 퇴직하는 연도인 60세에는 기본급 10%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를 2016년부터 올해로 9년째 이어오고 있다. 사측이 여기서 남기는 이윤만 하더라도 매년 수천억 원에 이른다. 최근 사법부에서도 이런 방식의 임금피크제는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기에, 조합원들은 지부가 좀 더 강력한 투쟁을 통해 이 같은 불합리한 제도를 철폐시켜 주기를 바랬다. 


마지막 '대법판결 준용'한 차별철폐 요구는 사측의 신의와 관련된 문제이다. 현대차는 회사 소식지인 <함께가는 길> 등을 통해 수차례 대법 최종 판결이 나올 경우 불법파견 관련자들에 대해서 호봉을 정상적으로 조정해 주기로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2022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에 대한 집단소송 최종 판결이 나와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약속한 바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 특별채용 형식으로 입사했던 불법파견 세대 노동자들은 호봉에 있어 지금까지도 9~11호봉씩 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며, 이와 관련된 조합원 수는 9,30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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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문 지부장은 지난해 11월 있었던 10대 임원선거에 후보로 나설 때, 자신의 공약집과 현장 유세를 통해 조합원들의 이 같은 요구를 “해고를 각오한 정면돌파”로 관철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임투 과정에서 이 같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은 역대 집행부 때와 마찬가지로  "또 속았다”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도덕성과 신의를 생명처럼 중시해야 할 현장조직 활동가가 마치 제도권 정치판에서 보는 것처럼 '공약 따로 집행 따로',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식의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 이 같은 작태는 노조와 활동가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스스로를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심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2.  현대차 단위 사업장  문제로만 치부할 순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래도 단위 사업장 내부 문제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차가 한국 최대의 조합원을 가진 금속노조의 핵심 사업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많은 문제가 현대차 같은 대공장 노조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첫째, 대공장의 불참으로 인해 금속노조가 진행하고 있는 산별교섭이 형식화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지금까지 10차례 중앙교섭을 가졌지만, 사용자 측(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은 금속노조가 제시한 임금인상안, 고용 의제, 타임오프 문제와 같은 핵심 요구안에 대해 자신들의 안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참여하는 사업장이 68개에 불과한데다, 대부분 중소하청부품사로  중앙교섭에 임하는 인원은 1만 4000명 정도이며, 전체 금속노조 조합원수 18만 6천여 명의 7%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용자 측 대표가 별반 대표성이나 역량을 가질 수 없음에도, 금속노조는 매년 중요한 행사로 간주하고 중앙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명색이 산별교섭임에도 위력을 잃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현대차지부 같은 전략 사업장이 불참한 것이 결정적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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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중앙교섭 장면


둘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총파업 또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지난 96-97노개투 총파업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현대차나 기아차, 지하철노조 등 대공장 전략 사업장들이 적극적으로 싸워 주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금속노조는 올해 중앙교섭이 별반 진전이 없자 7월 10일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말이 총파업이지 중소 사업장 중심으로 6만 명(주최 측 추산) 정도가 참여하는 2~4시간 정도의 부분파업을 벌였다. 당연히 이 정도 파업으로는 사용주나 정부로서는 코웃음을 칠뿐이다. 이렇듯 총파업이 위력이  없었던 것은 전략 사업장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현대차지부는, 일부 간부들을 제외하고 일반 조합원들의 경우 금속노조가 이날 총파업을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용문 집행부 또한 금속노조 일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측과의 임금교섭에만 매몰되어, 이미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본조인 금속노조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셋째, 현대차와 같은 ‘원청 중의 원청’인 사업장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한, 한국의 부품사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가 대단히 어렵다. 한국와이퍼, 한국옵티컬 문제 등은 모두 원청 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풀어야만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그 밖에 현재 민주노총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조법 2,3조 개정 역시도 결국 대공장 노동자들이 적극 참여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한국 노동운동의 대공장 문제를  우리는 더 이상 손 놓고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3.  대공장 노동운동 이대로 좋은가?

 

이번 임투를 통해서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은, 현대차지부를 비롯한 대공장 문제의 주 원인은 결코 조합원 대중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들 특히 현장조직이라 불리는 ‘정파조직’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조합원들은 93.7%의 압도적인 비율로 쟁의행위에 대한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또 본격 교섭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부가 실시한 확대간부 설문조사에서도, 요구 사항의 관철을 위한 투쟁전술로 “전 조합원 울산 집결투쟁을 해서 큰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파업투쟁을 해서라도 반드시 노동조합 요구안을 쟁취해야 한다”와 같이  강경 수단을 사용하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높았다(<현대차지부신문>,2024.5.2.참조). 그럼에도 문용문 집행부는 지난 안현호 집행부 때와 마찬가지로 파업 한번 해보지 않고 조합원들의 핵심 요구안의 관철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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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지부신문  24-02-8(2024.5.2)
                                         


이번 임투는 조합원들의 절실한 경제적 요구와 현재 전체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전략적 과제 내지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쟁점을 연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명색이 민주파 활동가집단이라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이점을 고심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현장의 이 같은 분위기를 활용해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에 현대차지부가 앞장설 것을 조합원 대중들에게 충분히 호소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측은 조합원들이 깊은 관심을 보인 ‘정년연장’에 대해 ‘아직 법이 정비 되지 않아 자기들로선 할 수 없다’는 식의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집행부 입장에서 보면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에  현대차 지부와 조합원들이 적극 동참해야하는 명분을  제공한다. 


다른 한편, 지금 정년연장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현대차와 기아차 활동가들이 ‘정년연장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연대하기 시작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개 사업장이 합칠 경우 조합원 수는 거의 8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일시에 연대파업에 돌입할 경우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는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통해 현대-기아 두 지부 간의 연대투쟁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고, 지금 마련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현 문용문 집행부의 맥 빠진 교섭과 조기 타결 덕택에 이 모든 가능성이 사라졌으며, 내년을 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내년에는 아마도 올해보다 조건이 더 안 좋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임기 2년 차가 되면 집행부가 힘이 빠지고, 현장조직들은 차기 임원선거에 정신이 팔리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문용문 지부장은 개인적으로 내년이 바로 자신의 정년퇴임 해이기에, 그가 과연 ‘모험’을 감행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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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정연추-기아 정연투 공동 기자회견  모습  (2024.07.10  민주노총 사무실)

 

 

끝으로, 지금의 문용문 집행부와 전기(前期) 안현호 집행부가 모두 ‘변혁조직’ 계열에 속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안현호 집행부가 금속연대라는 정의당 계열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문용문 집행부는 ‘민주현장’이라는 진보당 계열이다. 이처럼 소위 한국 사회의 근본 개혁을 추구한다는 현장조직들이 왜 하나같이 (신)노사협조주의의 태도로 일관하는지 우리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잘못되었을까? 지금 문제는 현장에 있는가 아니면 정치조직(진보정당)에 있는가, 아니면 둘 다 인가?  그 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이들 대공장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한국 변혁운동 전체가 미궁 속에 빠져서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지금은  한국 대공장운동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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