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장 노동운동 이대로 좋은가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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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례>
1. 민주당에 기대선 안 된다    
2. 본질은 변형된 형태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   
3. 대공장 정규직을 투쟁에 동참시켜야 한다    
4. ‘산별교섭’을 매개로 삼자   
5.  ‘관건적 원청’을 산별교섭에 불러내는 문제에 대해   
6. 민주노총 차원의 ‘제도개혁’ 투쟁으로 승화    
7. 남은 과제ㅡ 대공장 노동운동의 혁신과 진보정당의 역할    
8. 맺으며 ㅡ 행동강령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 8월 16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된 노조법 2, 3조에 대해 다시 한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벌써 두 번째의 입법 투쟁 실패다. 이제 결과가 뻔한 이런 방식의 투쟁을 전환할 때가 됐다.


1. 민주당에 기대선 안 된다

 

범야권이 지난 4.10 총선에서 대승하면서 22대 국회에서 최대 190석을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은 더욱 국회에 의존하는 형태로 변해가는 것 같다. 비록 더불어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때인 2023년 11월 9일 이 법안을 한 차례 통과시킨 적이 있긴 하지만, 당시에도 저의가 매우 의심스러웠다. 자신들이 국회와 행정부 권력을 모두 장악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이 법안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가 굳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시기를 골라서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원래 노란봉투법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이자, 더불어민주당의 대선과 총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차지한 21대 국회 들어서도 통과시키지 않았으며,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회 환노위에서 노란봉투법을 논의한 건 딱 한 차례뿐이었다. 그 당시 속기록을 보면 정부 측인 노동부 차관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법률 원칙을 흔드는 조항이 많다"면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노란봉투법은 21대 국회 들어 모두 11건이 발의됐는데, 그중 문재인 정권 때 발의된 건 더불어민주당 2건과 정의당 1건을 합쳐 단 3건뿐이었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불과 넉 달 사이에 8건이 일제히 발의되었지만, 모두 21대 국회 법사위에서 계류되었다가 폐기되고 말았다. 


이처럼 더불어민주당의 노조법 2, 3조 개정에 대한 태도는 누가 봐도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윤석열 정권의 거부권 행사를 겨냥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통과시킬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혹시라도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권하에서나마 두 차례 법안을 일단 통과시켰기 때문에, 차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품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더불어민주당은 그때 가서 또 발뺌을 할 수 있는 핑계거리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7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이 확정한 안을 보면 자당의 김주영 의원이 발의한 특수고용노동자를 배제하는 노조법 2, 3조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노동기본권 강화를 위한 원청책임/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 3조 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2조 1항 개정을 핵심 내용으로 제출했건만 더불어민주당은 이 부분을 빼버린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특고노동자는 220만 명에 이른다.

 

이렇듯 민주당에 의존할 경우 노조법 2, 3조 개정은 애초 취지를 벗어나고 만다. 지난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최저임금제 개정 논의 때와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알맹이를 다 빼버린 누더기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집권한 후에는 야당인 국민의힘을 핑계 대며 ‘여야 합의’라는 미명하에 개정된 노조법 2, 3조를 있으나마나한 법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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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고노동자 의노조할 권리를요구하는 노동자들

 
2. 본질은 변형된 형태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

 

노조법 2, 3조 개정을 지금처럼 더불어민주당에 기대어 추진해서는 안 되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노조법 2, 3조 개정이 성격상 변형된 형태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란 사실 때문이다.


노조법 2, 3조 개정의 핵심 내용은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노사관계에 있어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쟁점은 현재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한국 노사관계의 가장 보편적이면서 심각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중소기업과 대기업 관계에서 원-하청 관계가 매우 보편적이라는 사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간접적 하청 관계까지 합하면 60%가 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둘째,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보편적인 원-하청 관계가 매우 수탈적인 성격을 가지며, 원청은 주로 저임금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같은 수탈적 원-하청 관계를 의식적으로 널리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 두 가지 사실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는 본질상 한국경제의 구조적 성격과 관련된 것임을 말해준다.


현재 노사관계의 쟁점인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는 대부분 2차 이하의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경우 하청 업체는 별도의 공장부지나 설비, 전문 기술 없이 원청 대기업이 이런 것들을 대부분 대여해주고, 하청회사는 단순히 노무 인력 제공소의 역할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원청인 재벌 대기업은 과거 자신이 직접 고용했던 노동자들을 일부 공정을 외주화하거나 형식적으로 분사·독립경영을 시키는 방식으로 변형된 새로운 원-하청 관계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원청은 사실상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노동자들을 지시 혹은 지휘·감독하고 생산과정에 동원하고 있음에도, 이 과정에서 응당 져야 할 사용주로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다. 그 궁극적 목표는 오직 하나 즉 저임금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맞서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여 저항하는 것에 대해선 하청 업체를 교체하거나 직장 폐쇄, 혹은 재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현행 노조법의 모호한 ‘사용자’ 규정을 악용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 있다.   

 

민주노총 대구경북지역본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jpg
민주노총 대구경북지역본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같은 수탈적 원-하청 관계가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을 따져보면 그것은 다름 아닌 재벌체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외 종속적인 수출에 의존해서 이윤을 축적해야 하는 한국의 주력 기업들이 제조업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 부족에 따른 '출혈수출'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로, 재벌기업은 국내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피라미드식' 수탈체계를 구축하였다. 이 점은 오늘날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원-하청 문제를 발생케 하는 기본 배경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볼 때 한국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의 기원은 재벌체제에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의 본질은 재벌의 초과 착취에 대한 투쟁이며, 노동자계급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변형된 철폐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법 2, 3조 개정 문제가 사실상 현 재벌체제의 본질적 이해와 직결되고, 변형된 형태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자 반재벌 투쟁의 성격을 갖기에 국회 입법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노조법 2조와 관련하여 ‘원청의 사용자성’이 만약 인정될 경우, 이는 재벌들에게는 결국 불법파견이나 위장 자회사 설립을 어렵게 만들며, 또한 특고노동자들에게는 노동조합으로 단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여기에다 노조법 3조와 관련한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엄격하게 제한시킬 경우 자본은 하청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를 잃게 되어 이들 노동자 투쟁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노조법 2, 3조 개정 문제는 결국 한국 재벌체제의 기본적인 이윤 축적방식과 관련되어 있기에, 국회를 중심으로 한 단순 입법 개정 투쟁만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특히 민주노총이 대리인 역할을  사실상 떠맡긴 더불어민주당의 계급적 한계 및 그간의 행적을 볼 때, 그들이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심각한 의문 부호가 붙는다.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본질은 ‘재벌의 왼팔당’에 불과하다(이는 국민의힘이 ‘재벌의 오른팔당’인 것에 비견함)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현재의 재벌체제에 정면 도전할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이 전혀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지금처럼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조를 기대하고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을 벌이는 것은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윤석열 정권이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그 역시 더불어민주당이 진심으로 통과시킬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고, ‘사활을 건’ 투쟁을 그들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지금이라도 쉬운 길을 찾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주체적 역량에 의거해 문제를 풀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힘이 좀 더 들더라도 밑으로부터 투쟁을 조직하는 방식이 정도이며, 이처럼 대중투쟁을 중심에 놓고 국회 입법을 보조로 하는 투쟁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 사실은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3. 대공장 정규직을 투쟁에 동참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밑으로부터 투쟁을 조직하여 노동자들을 주체로 나서도록 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과 ‘정년연장’ 투쟁을 결합함으로써 대공장 정규직들을 투쟁에 동참시켜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의 큰 약점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투쟁 주체는 직접 관련 당사자인 하청부품사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만 한정되어 있다.  대공장 정규직들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물론 하청 노동자와 비정규직들이 현행 노조법 2. 3조의 주된 피해자들이고, 또 전체적으로 숫자가 많기에 이들이 주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종사하는 업종 혹은 사회적 파급력에 비추어 볼 때 그들만의 투쟁으로는 위력을 떨치기가 어렵다. 지난 96~97 노동법 개정 투쟁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대공장 노동자, 철도·지하철 등 기간산업 노동자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영삼 정권은 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대와 사회의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야음을 틈타 노동 악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 같은 날치기 통과에 맞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명동성당에서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적으로 전국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당시 지도부의 고민은 날치기에 대한 즉각적인 총파업을 위한 첫 테이프를 누가 끊어줄 것인가였는데, 이는 이후 총파업 성공의 결정적인 관건이었다. 총연맹지도부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바로 대공장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총파업 참여였다. 지도부의 고민 전화에 기아자동차노조가 즉각 총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결의를 밝혔다. 그들은 바로 새벽 7시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하였으며, 지도부가 농성하는 명동성당으로 수천 명의 조합원들을 집결시켰다. 이를 이어받아 “현대자동차가 오후 1시 전면파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 총파업의 성패에 결정적이었다. 한국의 대규모 전략사업장으로서 완성 자동차노조가 우선 파업에 돌입하면서 나머지 노조들에게 결정적 선도부대의 노릇을 하였으며, 지역 가두투쟁과 행진을 선도하였으며 이것이 다음 해 1월 말까지 이르는 긴 총파업 투쟁의 핵심적 승리의 열쇠”*로 작용하였다.

 

* 김태현(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특집] 96-97 노개투 총파업을 되돌아 본다(4)”, 울산함성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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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7 노개투 때 지도부의 명동성동  농성투쟁 장면


이어서 사업장별로 오전 출근 직후 파업출정식, 권역별 규탄 집회, 총파업이 어려운 사업장은 비상총회 개최, 전교조 단식수업, 화물노련 구간별 안전운행(시속 70Km) 등의 투쟁이 이어졌다. 이렇게 8일간의 온 세상을 멈추게 한 총파업이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따라서 노조법 2, 3조 개정을 노동자들의 힘으로 완수하려면 반드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동참을 유도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원청 대기업 노동자들을 투쟁에 동참시킬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민주노총이 그들의 절실한 요구를 반영해주면 된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대공장 노동자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정년연장’이며 임금피크제 철폐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이 요구는 현대차와 기아차 노사 간 단체교섭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예컨대 현대차 지부가 2024년 임투를 앞둔 시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24년 단체교섭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3가지 선택)”라는 질문에 ‘기본급 인상’ 1위(23%)에 이어 ‘정년연장’이 2위(17%)를 차지했다 (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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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지부신문(2024.5.2)
 

그것은 심지어는 ‘상여금 900%인상’(16%) 등 기타 임금성 요구를 모두 앞질렀다. 원래 2024년은 임금협상만 이루어지는 해였지만, 조합원들은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별도 요구안’ 형식으로 정년연장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포함시켰다. 제도·규약 등 단체협약 관련 사항은 2025년에 다루기로 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정년연장’ 요구가 다른 요구를 제치고 2위에 오른 것은 의외였으며, 이 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정년연장 요구는 자동차업종뿐만 아니라 조선업 등 다른 업종으로도 확산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지난 7월 13일 현대중공업지부(울산), 경남지부 대우조선지회(거제) 등 8개 노동단체가 참여하는 ‘조선업종노조연대’는 2024년 대(對)자본 공동요구안으로 ‘임금피크제 폐기 및 정년연장’을 포함시켰다. 또한 현대차와 기아차 양사에 각각 ‘정년연장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이 쟁점을 매개로 단사의 울타리를 넘어선 연대 움직임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현대차 정연추-기아 정연투 공동 기자회견 모습 (2024.07.10 민주노총 사무실).jpg
현대차 정연추-기아 정연투 공동 기자회견 모습 (2024.07.10 민주노총 사무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처럼 정년연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결코 ‘노동귀족’으로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퇴직 후에 편안한 노년을 누리지 못하고, 대부분 숙련 재고용이니 시니어 촉탁이니 하는 수모를 감수하면서 재고용되고 있는 사실은 이 점을 확인시켜 준다. 현대차 지부의 경우 94%의 조합원이 퇴직 후 ‘숙련재고용’에 임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즉 이들은 퇴직하는 다음 날부터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반값 임금’을 받고, 갑자기 정규직 노동자에서 비조합원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후배들 눈치를 보며 ‘굴욕스럽게’ 일을 해야 한다. “10년 아들뻘 되는 후배들한테 홀대받으며 보내는 시니어 1년 생활이 고통스럽다. 시니어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울산함성, <특별 인터뷰ㅡ 정년퇴직 선배들의 퇴직 후 체험을 듣는다“, 2023.2.14.)


 이들이 은퇴 후 편안한 노후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이처럼 재고용에 임하는 것은 이들 역시 아직 넉넉한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을 앞둔 조합원들에게는 국민연금 수령 때까지 공백을 채우는 문제는 여전히 '생존권' 차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근래 들어 제2차 베이비붐 세대인 60년생들이 매년 2천여 명씩 대거 정년을 맞이하기 시작했으며, 이 같은 현상은 2030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따라서 대공장 정규직들이 정년연장 문제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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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연도별 정년퇴직 예정자 수

 

그런데 노사교섭 과정에서 현대차 사용자 측은 ‘아직 법이 정비 되지 않아 자기들로선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렇듯 현대차 자본은 정년연장 문제를 사업장 차원을 넘어선 전체 사회적 문제로 돌리면서, 이 요구안에 대한 진지한 교섭을 사실상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 지부 또한 이 문제를 혼자 감당하기는 벅차며, 단위 사업장 차원에서는 사실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형편이다.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 지부가 비록 개별 사업장 역량이 크기는 하지만, 이처럼 전체 법 개정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기업 정규직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최소한 전 산업적인 요구로 가져갈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럴 때라야 대기업 이기주의 내지는 ‘노동귀족’이라는 여론의 몰매를 피하면서 스스로도 명분이 생기고, 당당하게 교섭이든 투쟁이든 사용자 측을 압박할 수가 있다. 금속노조는 산별 차원에서 ‘정년연장’ 문제를 정식의제로 삼아 충분히 산별 전체의 문제로 다룰 수 있고,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본격적으로 가맹조직의 이 같은 요구들을 법·제도적 개혁 의제로 상승시킬 수 있다.


특히 앞으로 전기차 시대가 본격 도래하고 자동차 회사들이 이를 위한 생산체계로 전면 전환하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이에 따른 구조조정과 ‘고용 문제’가 전면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개별 사업장 차원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산별노조나 민주노총 차원에서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 산별노조가 발달한 독일의 경우 사용자 측과 산별교섭을 통해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지부가 노조법 2, 3조 개정과 같은 원-하청 문제에 대해 적극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후 본격적인 싸움에 대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명분을 내세워 대공장 노조(지부)의 집행부가 조합원들을 설득한다면, 조합원들이 굳이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이러한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들의 염원과 바램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며, 정년 연장 요구와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을 적극 결합시켜야 한다.
 

4. ‘산별교섭’을 매개로 삼자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산별교섭’을 매개로 할 필요가 있다. 왜 민주노총을 통해서 직접 그들을 동원하지 않고 중간에 ‘산별교섭’을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하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1) ‘정치파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하다

 

만약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을 내걸고 민주노총이 직접 총파업에 돌입할 경우, 정부는 정치적 의제를 가지고 정치파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 노동법 규정을 들어 ‘불법파업’으로 낙인을 찍을 수 있다. 그 경우 자칫 투쟁에 나선 조합원들이나 노조 간부들이 위축될 것이 우려된다.


특히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욱 클 수 있다. 왜냐하면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을 내걸고 총파업을 할 경우 원청 대기업에 속한 자신들이 덩치도 크고 힘도 세기에 맨 앞장에 서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혹시라도 공권력과 충돌하여 구속자나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차 노조는 지난 ‘91-92 성과분배 투쟁’ 때 현대재벌과 공권력의 탄압에 맞서 ‘장외지도부’를 구성하고 약 5개월간 전투를 치룬 경험이 있다. 당시 수배 중인 지도부는 울산대학교 앞 신축 건물 지하에 세를 내 <결사항전>이란 소식지를 발행하며 싸웠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16명이 수배되고 구속자가 40명이 넘게 발생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노조는 조직이 심각하게 파괴되었으며 그 피해를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웬만한 고참 노동자라면 이런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현대중공업 또한 잘 알려졌다시피 골리앗 투쟁을 포함해 여러 차례 공권력과 직접 물리적으로 충돌한 경험이 있고, 그때마다 수많은 해고자와 구속자가 생겼다. 이처럼 공권력과의 정면충돌에 대한 기억은 대공장 노동자들한테는 일종의 깊은 ‘피해 의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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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우리나라 노동역사상 최초의 고공농성으로 기록된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  장면 (사진=경상일보)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에서 대공장 노동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선 우선 이들의 정치파업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오랫동안 별반 싸움다운 싸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신참 조합원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이 점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이다.


이 경우 산별교섭 형식을 빌리면 이런 걱정은 간단히 해소된다. 예컨대 전략사업장들이 많이 가입한 금속노조의 경우 이미 합법 노조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에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 3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사용자가 금속노조의 교섭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이는 합법적인 쟁의 사유에 해당된다. 따라서 10~15일의 조정 기간 경과 후에는 금속노조는 조합원 총회에서 찬반 투표를 거쳐 재석 과반수의 동의를 얻으면 파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는 금속노조는 어느 때든 적당한 시기를 골라서 총파업을 감행할 수 있다.


이러한 금속노조의 총파업은 형식상으로는 임금인상 요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파업이지만, 노조법 2, 3조 개정과 관련한 요구를 포함할 경우 일정 정도 ‘정치파업’의 성격을 갖게 된다. 하지만 내용상의 정치파업일지라도 산별교섭의 형식을 띠고 있기에, 그리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진행하는 파업이기에 ‘정치파업은 불법’이라는 현행 노동 악법의 덫을 피해 갈 수 있다. 

 

2) 현장 대중을 심도 있게 동원하기 위한 절차이다 

 

노조법 2, 3조 개정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 핵심인데, 이 문제는 여러 산업과 업종에 걸친 보편적인 문제이며 한국 재벌체제의 모순과 관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원-하청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은 금속산업이기에 우선 금속산업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키로 하자.


 이 분야에는 한국 재벌의 주력 대기업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청 대기업을 최정점으로 그 밑에는 수많은 하청부품사가 피라미드식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밑으로부터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이해 당사자가 가장 밀집한 분야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수이다.


마침 현재 금속노조는 매년 산별교섭을 진행한다. 하지만 지금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현재 60여개 사업장에 1만 4,000여명 정도만 참여하고 있다. 이는 금속노조 전체 600여개 사업장과 18만 6천여 명의 조합원 수에 비추어 볼 때 모두 10%도 안 되는 작은 비중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정작 중요한 원청 사업장(대공장 전략사업장)이 전혀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지금까지 산업 전체 노동자들에게 별반 영향을 주지 못한 채 형식화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이것을 활성화하는 경우 원-하청 문제를 교섭 의제로 올려놓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노조법 2, 3조 투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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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중앙교섭 장면


물론 금속노조가 대기업 지부와 원청의 참여하에 본격적인 산별교섭을 벌인다고 가정할지라도, 처음부터 ‘노조법 2, 3조 개정’을 핵심 요구안으로 내걸고 사용자 측 대표와 정면충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산별교섭이 진행되면 여기서는 산업 내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중소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주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노조법 2, 3조 개정은 하나의 요구안으로 상정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금속노조처럼 산별 차원에서의 주요한 요구가 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만약 금속노조가 처음부터 노조법 2, 3조 개정에 동의하라고 사용자 측을 압박한다면, 이는 자칫 무리한 정치적 요구로 트집이 잡힐 수가 있다. 따라서 이 요구는 아직은 엄연히 ‘선전적’ 차원이고, 금속노조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임금 교섭이나 실질적인 원-하청 불공정 관계의 시정에 방점이 두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더라도, 금속노조 차원에서 노조법 2, 3조 개정을 처음부터 중심적인 요구안으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 임금인상, 근로 시간 단축, 하청부품사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한 원-하청 불공정 거래 관행의 개선과 적정 납품단가 인상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내걸더라도, 만약 ‘관건적 원청’ㅡ 산업 사슬의 정점에 있는 전략사업장 원청을 앞으로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ㅡ 이 일단 산별교섭에 참여하기만 하면, 그리고 노조법 2, 3조 개정이 산별교섭의 요구안으로 제시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애초 목적으로 설정한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의 대중적 기반의 확장은 달성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조법 2, 3조 개정은 제도개혁 투쟁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어차피 민주노총 차원에서 전면에 받아 안아야만 하는 싸움인데, 금속노조가 어쨌거나 ‘선전적’ 차원에서나마 산별교섭의 정식 요구안으로 상정함으로써 광범위한 산별 조합원들에게 그 내용을 알릴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금속노조가 산별교섭 과정에서 임금 문제로 총파업을 벌이면서 사용자 측을 압박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 요구안에 노조법 2, 3조 개정이 들어 있기에 이 또한 그 투쟁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이 마침내 이 투쟁을 본격적으로 책임질 시점에선 산별노조는 이미 조합원들에 대한 사전 교육을 어느 정도 마친 셈이 된다. (산별노조는 당연히 이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노조법 2, 3조 개정에 대한 조합원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그것이 당면 노동운동의 최대 중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원청의 사용자성’에 대한 내용적 관철의 측면에서 볼 때도 그러하다. 지금처럼 하청 사업주 또한 원청에 의한 극심한 수탈을 당하는 상황에선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나 복지향상 요구가 좀처럼 실현되기 어렵다. 그 때문에 하청부품사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원-하청 불공정 거래 관행의 개선과 적정 납품단가 인상은, 곧 하청부품사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조건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금속노조 본조는 먼저 산별 중앙교섭을 통해 원청에 대한 압박을 가함으로써 원-하청 관계의 불공정 거래를 시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양보를 얻어 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즉 넓은 의미에서는) 노조법 2, 3조 개정 투쟁의 일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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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산별교섭을 통해서 일정 정도의 요구안을 관철할 경우, 이는 원청이 하청의 노사관계에서 여러 형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 된다. 또한 이렇듯 실질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압박을 통해 점차 원-하청 불공정 거래가 조금씩 시정되어 간다면, 하청부품사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대공장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가 축소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원청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굳이 불법파견이나 위장 도급거래 형식으로 ‘원청의 사용자성’ 문제를 야기하면서까지 하청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할 동기가 약해진다.  


이처럼 산별교섭을 통해서 원청을 압박하여 불공정한 하도급 관계를 개선토록 하고, 이를 통해 하청 중소기업이 임금지불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투쟁은, 근본적으로 보자면 사실상 밑으로부터 한국 재벌체제의 이윤 축적방식의 전환을 강제함으로써 지금까지 노사관계 관행을 뜯어고치는 효과가 있다. 그에 따라 재벌은 지금처럼 원-하청과 정규직-비정규직의 분리를 통해 초과이윤을 달성코자 하는 동기가 약화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도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간과한 채 지나치게 국회에서의 법 개정을 위주로 하는  투쟁은 문제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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