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길성 (노동운동가)
등록일 : 2024.02.16

민주연합-2(복사).jpg

 


1. 들어가며

 

진보당이 민주당 주도의 비례정당 건설 참여를 결정했다. 2월 13일 연합정치시민회의,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새진보연합은 1차 회동을 갖고 사실상 ‘비례위성정당’ 추진을 위한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약칭 ‘민주연합’) 결성에 합의했다. 4자는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국정운영으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는 민주, 민생, 평화의 총체적 퇴행을 저지하고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는 정치개혁과 정치의 다양성 확보라는 희망을 만들기” 위해 민주연합을 결성한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이들 4자가 발표한 합의문을 보면 겉으로는 현재 비등하고 있는 대중적인 ‘반윤 심판’ 분위기에 부응하기 위해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본질은 오로지 ‘의석’만을 탐하는 의회주의의 적나라한 표현에 다름 아니다. 진보당은 민주당이 그간 보여준 배신적 행위에 대해  줄곧 비판해 왔음에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들의 죄과를 덮어주고 마는 고질병이 이번에도 도진 것이다. 


2. 민주당은 결코 진정한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들 4자는 “민주, 민생, 평화의 총체적 퇴행을 저지”하기 위해, 그리고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는 정치개혁과 정치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민주연합’을 결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같은 강령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세력은 민주당이 아닌 진보세력이다. 그런데도 진보정당 간의 총선연대를 파탄 내면서까지 진보당은 불철저한 민주당을 우선적인 파트너로 삼았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위의 참여 취지가 명분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단지 민주당 주도 하의 ‘비례위성정당’에의 참여를 통해 몇 석의 의석을 보장받고 싶은 속내를 감추고 싶을 따름이다. 


진보당이  참여를 결정한 민주연대 결성 취지의 허구성에 대해 하나씩 들추어보자.


먼저,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서는 민주·민생·평화의 목표를 결코 이룰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그동안의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첫째, 민주주의를 놓고 보자.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을 ‘검찰독재’로 규정하지만, 검찰개혁을 불철저하게 했던 것은 민주당 스스로다. 오직 ‘공수처’만 만들면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할 것처럼 대중을 호도하면서, 문재인 정권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 거의 만사를 제쳐두고 검찰개혁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지금 보듯이 정작 검찰권력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펄펄 살아서 더욱 날뛰고 있다. 이는 단지 민주당의 검찰개혁에 있어 전술상의 실수일까?* 

 

* 노무현 정권 역시 검찰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부딪쳐 추진하던 개혁이 실패한 후에 ‘검찰개혁’ 상의 실수를 운운했다. 그 정치적 계승자인 문재인과 참모들은 와신상담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전략을 짰다. 그것이 공수처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방안이다.  문재인·김인해 공저로 출간된 <검찰을 생각한다>(2011년)에 그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실패를 놓고 단지 전술상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공수처.jpg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에 실패한 것은 단지 방법론이나 전술상의 실수가 아닌 그 계급적 한계에 기인한다. ‘검찰개혁’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한 후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찰은 기소 유지에만 전념하면 된다. 실제 호주와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처럼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민주당 정부 스스로 검찰개혁을 불철저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 과정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원래 2018년 6월 ‘정부 수사권 조정합의안’이 이루어질 무렵 검찰은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실효적 자치경찰제와 사법경찰 ‧ 행정경찰 분리, 정보경찰 개혁 등을 요구”했다.(한겨레신문, 2019년5월2일) 즉 철저한 경찰개혁이 함께 수반된다면, 비록 내심 불만이 있을지라도 자신들도 일정 수사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성장을 경계해야 하는 민주당 정권으로선,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코 ‘정보경찰’ 제도를 폐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경찰개혁의 또 다른 한 축인 ‘자치경찰제’는 중앙 경찰청이 여전히 인사‧예산 등 실질 권한을 쥐는 앙상한 ‘형식’으로 전락하였다.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불철저한 경찰개혁이 검찰에게 반격할 명분을 주었다. 자신들도 6대 범죄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에 대한 수사권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에 실패하게 된 사건의 전말이다. 만약 당시 문재인 정부가 시민사회의 바람대로 정보경찰 폐지· 실질적 자치경찰제 등 철저한 경찰개혁을 함께 수행하였다면, 검찰은 결코 반발할 명분을 갖지 못했다. 설령 그들이 반발한다고 하더라도, 압도적인 전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그 같은 소수집단의 반발은 충분히 억누를 수 있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민주당 정권)의 계급적 한계가 이 같은 철저한 경찰개혁과 검찰개혁의 추진, 즉 폭압적 계급국가의 총체적 민주적 개조를 가로막은 원흉이다.


당시 재벌개혁을 포기한 문재인 정부(집권 기간 거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로서는, 재벌체제로부터 필연적으로 파생되고 악화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문제와 빈부격차 심화 때문에, 또 그로부터 격화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억압적 국가권력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찰개혁은, 그 속을 뜯어 보면 그동안 보수반동세력이 독식했던 억압적인 공권력을 자파 성향의 법관과 검사들을 요직에 앉힘으로써 자신들도 함께 나누어 갖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 보자. 2월 14일 청주 공안탄압 피고인 박응용, 윤태영, 손종표 3인은 UN인권고등판무관실에 제3국 정치망명을 요청하였다. 이들 피고인들은 NGO(노동조합, 청년회, 협동조합, 평화통일, 정치활동 등) 활동을 이유로 30여년간 한국정부로부터 감시, 도청, 미행, 협박, 간첩 조작 등 심각한 인권 및 기본권침해를 받아왔다. 국정원과 국가수사본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압수수색을 하고, 지난해 8월 2일 이들을 구속했다. 검찰은 조작된 증거로 재판을 진행한 후, 2024.1.29. 박응용, 윤태영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 손종표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하였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와 심각한 인권침해로 인해 세계 인권기구인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엠네스티의 개정 내지 폐지 권고를 받아 왔다. 2004년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를 한 바 있다.


정치활동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철통같이 억압하는 한국의 국가보안법 때문에 위 피고인들은 자신의 조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UN 국제기구에 정식 망명을 신청했다. 이 땅의 진정한 민주화와 인권, 평화를 바랬던 활동가들이 오죽하면 자기 조국을 떠나 낯선 외국 땅에서 여생을 보내야 하는 망명길을 원했겠는가? 과연 이 같은 사태에 대해 민주당 정권은 책임이 없는가? 


일제하 치안유지법에 기원을 둔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민주당은 노무현과 문재인 정권 시절 행정과 입법 권력을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폐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국 폐지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우유부단함과 최근 보수반동세력의 능수능란한 권력 활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윤석열은 겨우 0.7% 차이로 정권을 잡고, 1/3 남짓밖에 안 되는 국민의힘 의석에 의존해 하위 법인 행정명령을 통해 교묘하게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종이쪽지로 만들고, 국회를 통과한 법률조차도 거부권 행사를 통해서 무력화 시켰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모범 사례’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한다면 민주당 정권은 두 번씩이나 입법과 행정권력을 동시에 민중으로부터 부여받았으면서도, 구시대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조차 폐기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폐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이 과연 철저한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세력인가?

 

국보법 폐지.jpg

 

둘째, 민생 파탄의 책임 역시 민주당은 벗어날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은 초기 소위 ‘소주성’(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내세워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와 일반 서민의 소득을 향상시켜서 부의 불평등을 일정 해소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재벌과 보수언론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자 곧 이 정책을 포기하고 ‘자산 거품’에 편승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마침 주식시장이 호황을 보이자, 이미 ‘버블’이 상당 정도 끼었음에도 젊은이들에게 주식투자를 권장하여 20·30대 젊은이들이 ‘영끌’ 투자를 하도록 부추겼다. 문재인 정권은 결국 부동산 집값 폭등을 막지 못하고 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한 죄과로 지난 선거에서 윤석열에게 패배했던 것이 아닌가?


그 후 이재명 후보가 ‘기본소득’이라는 포퓰리즘 정책을 가지고 대선에 나왔지만, 그의 대표적 공약이라 할 수 있는 이 ‘기본소득’ 공약은 초반 집중 공격을 받아 용도 폐기되었다. 본격적 공방에 들어갈수록 이 공약의 비과학성과 공상성이 드러나 ‘좌파 포퓰리즘’으로 매도되었고, 결국 그는 자신이 언제 그런 주장을 했느냐는 듯 손쉽게 ‘기본소득’ 공약을 내던졌다. 과연 이런 인기나 쫓아다니는 정치세력이 민중과 노동자들의 민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셋째, 평화에 대해서 말해보자. 민주당은 일견 지난 김대중 정부 이래 ‘햇빛정책’을 신봉하면서 남북관계를 안정화하고 통일을 촉진할 수 있는 세력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 약발도 이제 효용이 거의 다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핵을 둘러싼 북미회담 과정에서, 한미동맹 신화에 매달리는 민주당 정권을 통해서는 결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가 그런 뜻을 명백히 내비쳤음에도 마지막 순간에 ‘하노이 회담’을 파탄 나게 함으로써, 그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이단자’ 트럼프조차도 네오콘이 거미줄처럼 쳐 논 장벽을 끝내 넘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결코 북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바라지 않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이 같은 미국에 의지해서 단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으며, 또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남북관계의 화해를 방해하는 세력이 미국이었음에도, 이처럼 한미동맹의 신화를 깨트릴 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민주당은 진정 평화와 통일세력일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하지 않았을 뿐, 끝내 폐기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노이 회담.jpg

 

끝으로, 합의문의 후반부에 대해서도 언급하도록 하자. 여기에서 민주당과의 ‘민주연대’ 결성이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는 정치개혁과 정치의 다양성 확보”라고 천명했는데, 이 합의문을 보면 마치 민주당이 정치 다원화를 바라는 세력인 양 비춰진다. 하지만 민주당은 결코 진보정당이 성장함으로써 지금의 보수 양당 구도가 깨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 단적인 예로 이재명 대표는 자신이 ‘위성정당 금지’를 지난 대선에서 분명 공약으로 내걸었으면서도, 최근까지도 ‘멋진 패배 무용론’을 운운하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려 시도했다. 막판에 여론에 밀려 기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마지못해 유지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수많은 민주당의 ‘자매정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민주당이 과연 진보정당이 커가는 것을 용납하고, ‘정치 다원화’를 함께 추진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주도하는 ‘민주연대’에 진보당이 참여를 결정한 것은 선거용 비례정당을 통해서 알량한 한 석이라도 챙겨보겠다는 의회주의의 노골적 표현에 다를 바 없다. 동시에 이는 다른 진보세력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진보당은 자신의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어제의 동지를 내팽개칠 수 있는 실용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세력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진보당은 또한 과거나 지금이나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패권주의’로 돌아갈 수 있으며,  자신이 한국 진보운동 발전의 심각한 걸림돌임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지금 시기 민주당과의 관계에 있어 진보진영이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헤게모니 문제’이다. 즉 불철저한 민주당으로부터 반정부 투쟁의 주도권을 진보세력과 노동자계급이 탈취할 수 있느냐가 모든 관건이다. 그럴 때만 비로소 한국의 정치운동이 한단계 발전할 수 있으며, 한국의 진정한 민주·민생·평화가 가능해진다. 이를 가로막는 민주당은 결코 진보진영의 동맹세력이 아닌, 진보진영과 노동자계급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일각에선 윤석열 검찰 파시즘이 구체화하고 있는 지금의 긴박한 상황을 들어 진보진영과 민주당의 대단결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있다. 폭압적인 적에 맞서 단결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이 결집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단결·통합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단결이며, 누가(어떤 계급이) 주도하는지 즉 ‘헤게모니 문제’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만약 단결과 통합이 지난 ‘촛불항쟁’과 마찬가지로 진보진영과 노동자계급이 아닌 결국 자유주의세력의 승리로 끝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운동 발전에 장애가 될 뿐임을 우리는 그간 수도 없이 경험했다. 이러한 승리는 눈앞의 잠시의 감격만 맛보게 할 뿐, 결국 다시 5년 뒤에는 윤석열과 같은 반동 보수정권을 반드시 불러들이게 된다. 


특히 이번 총선 후 한국경제의 위기 폭발과 함께 ‘보수대연합’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11월 30일 여야가 만장일치로 상임위를 통과시킨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이하 ‘특별법’) 입법 시도가 그 전조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손잡고 마치 도둑처럼 통과시킨 ‘특별법’은 그간의 노동운동의 성과를 대부분 무로 돌릴 수 있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이처럼 ‘노동지옥법’이라 일컬어지는 ‘특별법’을 여야가 몰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사실은 앞으로 민주당이 우리의 직접적인 투쟁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더욱 진보진영의 독자적 행보가 필요하고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


* '특별법' 통과를 반드시 저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총책임을 맡게 될 민주노총으로서는 진보당이 민주당과 총선연대에 합의함으로써 내심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본래 이 법안 통과 저지를 총선투쟁과 결합시킴으로써 양 투쟁을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이는 또한 민주당의 불철저성을 폭로하고, 윤석열 심판투쟁의 주도권을 진보 변혁진영으로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진보당이 민주당과의 총선연대에 합의함으로써 민주당의 이 같은 배신행위를 덮어주고,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의 앞으로의 투쟁계획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게끔 만들고 있다. 


3. ‘민주연합’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위성정당’을 핵심으로 하는 선거연합은 진보진영에게는 치명적인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비례대표 의석을 둘러싼 지리한 상층 내부의 싸움으로 선거투쟁의 중심이 이전할 수밖에 없다. 현장대중을 상대로 한 선전선동, 조직화의 과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으며, 지저분한 정치적 거래와 야합, 자리싸움이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 언론보도에 따르면 시민사회는 “야권 연합신당의 구성을 놓고 굵직한 틀을 만들어둔 상태”라고 한다. 각 정당에서 1명씩 운영위원을 추천하고 시민사회에서 같은 수의 인원을 추천해 연합신당 추진체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며, 아울러 “각 정당이 비례대표 추천권을 갖지만 후보들의 순번은 국민참여배심원단 투표로 정해 ‘정당 간 지분 싸움’이라는 비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한겨레신문, 2024.02.07). 하지만 이 같은 배심원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부터 지리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 뻔하다.

 

둘째, 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비례대표 의석에 있어 다소간의 양보를 하더라도, 그 대신 전국적으로 지역구를 석권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분명 이를 미끼로 참여하는 진보정당에 지역구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본다면 진보정치에 있어 파멸적 결과를 낳는다. 비례대표는 한번 하고 나면 끝이지만, 지역구 기반은 상실하면 다시 구축하기가 힘들다. 특히 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자신들이 취약한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의 기반 확보이다. 부울경 지역이 그러하며 이 지역의 지역구에 대한 양보 압력이 분명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이 그것을 한번 양보하는 순간 민주당에 의한 급속한 침식은 불가피하다. 


그 사례가 있다.  민주당은 그간 불모지대였던 울산에서 지난 2017년 이후 대약진을 하였다.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 다름아닌 촛불항쟁의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과 맺은 연대연합이었다. 민주당 후보를 진보진영과 노동진영이 당선시켜주자, 그 다음에는 민주당이 점차 노동조합과 진보정치의 지역 기반을 잠식해 들어와 어느덧 노동자후보와 진보후보는 설 자리가 좁혀졌다. 이번에도 만약 ‘반윤 연대’를 핑계로 비례대표 몇 석을 약속받는 대신 핵심 지역구를 포기한 다면,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 이익을 손상하는 우를 절대 범하지 말아야 한다. 


4. 노동당에 대한 당부

 

이제 남은 것은 정의당과 노동당이다.  그중 정의당(현재 ‘녹색정의당’으로 잠시 당명 변경)은 그 뿌리 깊은 사민주의적 경향을 감안할 때, 민주당이 제시한 ‘비례위성정당’의 유혹을 끝까지 뿌리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의당 주류인 이정미 계열이 참여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환’과 같은 일부 당내 소수파의 반대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정의당 역시 진보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진보정당 중에서는 사실상 노동당만 남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노동당이 확고하게 ‘독자 대응’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동당의 당 지도부는 현실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아직까지 이번 총선에 대한 당의 명확한 방침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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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에서 출마를 선언한 노동당 이장우 후보

 

 노동당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총선방침을 제시하고, 전체 당원들에게 총동원령을 하달해야 한다.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자금을 전 당적으로 모집하는 등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미 선거전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여전히 ‘방영환 열사’ 사건에 당력의 태반을 쏟고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조직으로서 정치일정에 둔감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금 진보 변혁진영의 상황은 우리 운동의 구도를 전면 쇄신해야 할 과제의 시급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지금처럼 민주당의 기세가 오르고 있는 것은 지난해 민주노총 7월 총파업 및 그것과 연계된 총선전략과 정치세력화 논의가 실패한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장은 침체하고, 진보당은 진보당대로 민주당의 기세에 눌려 윤석열 심판투쟁의 주도권 탈취 노력을 포기한 채,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그 밑으로 들어가는 ‘백기투항’의 길을 택했다. 


민주당으로부터 주도권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내부의 구도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문제는 엔엘이냐 피디냐의 문제가 아닌, 개량주의(의회주의)냐 진정한 변혁주의냐의 문제이다. 엔엘이든 피디든 진정한 진보 변혁세력은 ‘반제, 반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전선’ 구축을 위해 새롭게 결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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