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상은(陳祥殷)
등록일 : 2024.03.08

 

노동자논평-두개의국가 (1).jpg

 

새해 벽두에 북에서 전해온 소식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이 “반도에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병존하고 있”으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규정했다는 소식,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ㆍ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 삭제되어야” 하며,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하겠다고 했다는 소식, 그리고 그 후속 조치로 ‘6ㆍ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등등 ‘통일을 위한’ 그 간의 민간교류단체들을 정리하기로 했고, 정리하고 있다는 소식 등에 상당수 사람들이,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 운운하며, 크게 놀라고 있는 것 같다.

 

무리도 아니다. 적어도 외교적 혹은 수사적으로는 “자주ㆍ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추구해 왔던 근래 수십 년과는 사뭇 다른 방침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남북관계 혹은 북남관계에는 아무런 근본적 변화도 없다. 사실상 누구나 내심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정치적ㆍ외교적 필요에서든, 그 ‘분위기’에 뇌동하거나 억눌려서든,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던, 수십 년간의 현실이, 적어도 북측에 의해서는, 돌연 사실로서 공인된 것일 뿐이다. 사실, 계급적 성격이 전혀 다른, 아니 전적으로 적대적인 두 사회체제가, ‘연방제’든, ‘국가연합’이든, 소위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한 국가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부터 환상일 뿐이 아니던가?


그건 그렇고, 그러면 북은 왜 지금 저런 선언을 하고 나선 것일까?

 

이런저런 여러 의견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부쩍 격화된 대북(對北) 적대, 특히 미국의 핵잠수함ㆍ핵항공모함ㆍ핵 항공기 등도 모자라 일본군까지 끌어들여 거듭거듭 펼쳐왔고 펼칠 계획인 대북 전쟁연습이 그 결정적ㆍ직접적 계기ㆍ원인이었을 것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북 적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윤석열 정권이나 대한민국 정부는 결코 아니다.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 정확히는, 미제국주의다. 예컨대, 그 이력만 보아도 남북관계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누구 못지않게 훤히 알 것임에 분명한 전 통일부 장관 김연철도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 “지금까지 이루어진 다섯 번의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예외 없이 북-미 관계가 풀려서 남ㆍ북ㆍ미 삼각관계가 선순환할 때 가능했다. 남북 양자 관계만으로 현안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김연철 칼럼] 민족주의의 종언”, ≪한겨레≫, 2023. 02. 05.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7231.html>).

 

“하나의 예외 없이 북-미 관계가 풀려서”(!), “남북 양자 관계만으로 현안을 풀 수 없기 때문”(!) ― 분명, 남북관계를 결정해온 것은 “북”과 “미”이지, 대한민국은 아니라는 뜻, 대한민국은 그럴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편, 지금 인용한 말에 바로 이어서, “‘우리 민족끼리’는 관성에 의한 구호일 뿐, 정책 현실은 아니었다.”라고 쓰고 있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적대적인) 두 국가”가 현실임을 사실상 확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남북이 합의 하에 유엔에 동시가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적대적인 두 국가” 사이의 평화ㆍ전쟁의 문제는 어떤가?

 

북의 선언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에 이어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뒷 규정은 ‘종전협정’에 이르지 못하고 ‘휴전 상태’에 있는 상황, 그러한, 말하자면, (국제)법적 상황을 가리키고는 있지며, 실제 전쟁 중이 아님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대로다. 그렇다면, 비록 “적대적”이지만 “두 국가”라는 규정, 특히 헌법에서 “북반부”라는 규정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은, 당연히 허다한 불안 요인들을 안고는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그리고 의도와 무관하게, 평화를 향한 일보전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조선”ㆍ“남조선” 하며, 실제로는 국경선인 ‘휴전선’ 이남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영토시(視)했던 태도를 바꾸어, 그 이북만이 조선이고, 그 이남은 대한민국(한국)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북을 ‘북한’, 이남을 ‘남한’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이북을 ‘북조선’ 혹은 ‘북반부’, 이남을 ‘남조선’ 혹은 ‘남반부’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을 있는 대로 반영하는, 말하자면, 정명(正名)이 아닐뿐더러, 지양해야 할 대결적 언어 아니던가!

 

그리고, 소득이라면 소득이랄까? 이 기회에 망외로 확인된 사실이 있다. 이 반도에서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혹은 전쟁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것은 북쪽의 조선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북측 자신도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 않을 것”(김영란 기자, “김정은 위원장 ‘동족 의식 거세된 대한민국 족속과 통일의 길 함께 갈 수 없어’”, ≪자주시보≫, 2023. 01. 16.)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온갖 자유를 한없이 보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도 있고 하니, 누가 보나 가장 극우적인, 따라서 가장 친(親)국가보안법적이고, 가장 친미적이며, 가장 반북적인 ≪조선일보≫에 근거하자면,

 

“北韓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 외교ㆍ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 기사 제목이다. 한반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properly assess the crisis situation) 못하고 경각심 흐트러뜨리는 무책임한 진단(irresponsible diagnosis)으로 들린다. 그런데 그런 단언을 하는 나름의 이유와 논리(rationale and logic for daring to make such an assertion)가 있다.

 

“김정은이 한국ㆍ미국ㆍ일본을 계속 불안하게 하고 있다(continue to put the wind up them). 핵 위협과 잇단 미사일 발사는 화해 희망을 어둡게 하면서(douse dim hopes for reconciliation) 한반도의 영구적 긴장을 고착화하는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추측과는 반대로(despite speculation to the contrary) 김정은의 최근 행보는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 전쟁을 일으킬(launch a war) 준비라기보다는 되레 전쟁 억제 시도로 설명이 가능하다(be explainable as attempted deterrence). 재래식 무기 전력(conventional military power)의 상대적 약점을 감추려는 기만 행위(deception aimed at concealing the relative weakness)다. 한ㆍ미 동맹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통한 북한 공격 무력화, 김정은 참수(decapitation) 작전 등에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지원으로 군사력을 배양하며, 중국ㆍ이란을 아울러 반미(反美)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in the near future) 자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개연성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러시아에 미사일ㆍ탄약 등을 실어 보낸다는 건 도리어 거꾸로(on the contrary) 그 정반대를 의미한다(suggest the opposite). ...”(“전문가칼럼 [윤희영의 News English] ‘北韓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2023. 02. 08.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2/08/HWIKATXW7FGBBPYK7ZQWRM5P7U/>.


명확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전쟁을 원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의 얘기를 극히 간단히만 해보자면, 이렇게 남북관계 혹은 북남관계의 진실과 상황을 대략 확인한 남쪽의 우리 노동자ㆍ인민은, 특히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리민족끼리’니, ‘남북은 하나’니 하는 환상을 철저히 청산하고, 현대사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동자ㆍ인민대중이 극우의, 그리고 극우적 허위 선전ㆍ선동과 ‘언론’에 놀아나지 않고 우리 현대사와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기 위한 선진노동자들의 노력과 역할, 즉 선진노동자 자신들의 진지한 역사ㆍ사회과학 학습과 대중선전 활동이 필요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자 대중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계급으로서의 그 역사적 사명을 인식하고, 그 사명의 수행에 떨쳐나설 수 있도록 추동하는 선진노동자들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고 절실하게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 사회의 계급적 분열ㆍ분단이기 때문이다.

 

출처 : <노동자신문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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