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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20대 대선에서  노동당의 사회주의 후보 이백윤이 거리 유세를 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보면 구 전노운협 계열보다는 구 변혁당계열 쪽이 더 큰 편이다. 왜냐하면 구 전노운협 계열의 경우 정치노선에 있어 별로 정립된 것이 없으며, 그들이 제기하는 ‘헬(Hell)조선’ 슬로건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따라서 그 영향력은 공공운수노조 주변에만 국한되어 있어 사회운동 전반에 미치는 해악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하지만 구 변혁당 계열은 다르다. 분명한 자신의 정치노선을 가지고 있고, 또 노동당과 합당한 후 지난 대선에서는 노동당의 사회주의 후보로 자파 인사를 내세우는데 성공했다. 비록 1% 미만의 미미한 득표율에 그치긴 하였지만, 그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당 대표까지 차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노동당의 ‘당권파’가 되었다.

 

합당 시 수적으로 200여명 정도의 소수파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노동당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 되었다. 하지만 노동당은 전체적으로 강력하고 통일적인 당 조직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고, 당의 노선 또한 아직은 모호하다. 그리고 각 지구당별로 자기 특색을 지닌 채 각개 약진하는 상태이기에, 노동당 전체로 볼 때 이들 구 변혁당 계열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구 변혁당 노선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자. 변혁당의 전신은 민주노총의 ‘3대 정파’ 중에서 현장파라 일컫어지는 ‘노동자의 힘’이다. 이 노동자의 힘은 사회주의 독자정당을 추진하기 위해 2009년 초에 조직을 해산하고 다수가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모임’(이하 사노준)에 참여하게 된다. 사노준은 1년 후인 2010년 다시 ‘사회주의노동자당 추진위원회’(이하 사노위)로 바뀐다. 그 후 2013년 사노위의 다수는 또 다시 조직을 해산하고 사회주의정당 건설에서 한 발 후퇴하여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위’로 전환하였다. 이 조직이  사회변혁노동자당(약칭 변혁당)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노선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과거 변혁당 시절에 내세운 주장들을 되돌아보면 된다. 그들의 노선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이며, 조직노선에 있어선 ‘사회주의 독자정당 건설’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에 있어선 그 대안으로 ‘민주적 계획경제’와 ‘자치 사회주의’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하지만  어휘의 화려함에 비해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서 공허하기만 하다. 이들은 과거 사노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십수 년이 지났건만, 이처럼 추상적이고 앙상한 강령적 수준에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민주적 계획경제’나 ‘자치 사회주의’ 내용을  그들은 더 이상 구체화 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독자정당 건설’과 관련해서는, 이들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새롭게 ‘사회주의 대중정당론’을 제기했다. 지난 4.15 총선 직후인 2020년 4월 26일 전국위원회에서 그해 11월까지 사회주의 대중정당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2022년까지 “체제 대안으로서의 한국사회 구조변혁안, 현실정치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등의 내용을 담은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구체적인 정치일정으로 “2020. 사회주의 대중정당 추진위원회 구성→ 2021.5 창당준비위 발기인대회→2021.8 중앙당 창준위 건설 및 대선 예비후보 등록→ 2022.2 사회주의 대중정당 창당 및 등록”*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결국 자신들이 세운 계획을 포기하고 노동당과 합당하는 길을  택했다.

 

* 이상 이승철, 2020년2월23일, “한국사회 구조변혁을 위한 사회주의 대중화”, [“한국사회 전망과 노동운동의 과제”―현실사회주의 비교와 한국사회 미래 전망 시리즈3] 토론회 자료집.

 
이처럼 과학성과 현실성의 결여로 인해 현장대중과 결합할 수 없는 구 변혁당 노선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들은 시간이 흘러도  소수의 지식인 출신 활동가들의 써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지난 대선 시기를 전후하여 노동당과 합류한 후, 자신의 잘못된 이론과 노선을 다시 끔 노동당 내에 확산시키는 중이다. 


희극적인 것은, ‘자치 사회주의’와 ‘민주적 계획경제’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가장 인간성과 자율성을 존중할 것 같은 그들이지만, 이번에 양규서-함계남 사건에서 보여주듯 노동당에 합류한 후 그들이 '당명개정건', 사무총장 사퇴권고 경질건, 신천지 부대표 후보건 등을 통해서 당권을 장악해 가는 모습은 대단히 분파적이며 음모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마치 그들 스스로 혐오하고 비판했던 ‘스탈린주의’ 의 가장 부정적인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아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번 양규서-함계남 사건을 통해 진작 파산을 선고했어야 할 노선을 추종하는 변혁세력이, 자신의 생명력이 다했음에도 이를 인정치 않고 억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변질되어 가는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구 변혁당 계열은 자신들의 모태인 ‘노동자의 힘’이래 잘못된 그들의 사회주의 전망과 당 건설 이론으로 인해 수차례 실패를 맛보았다. 그 후 자신들의 잘못된 노선에 대한 반성 없이 그것을 고집하면서 지금은 노동당을 접수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이론과 실천의 괴리, 그 필연적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다름 아닌 분파주의와 음모성이며, 그들이 비판해 마지않는 패권주의에 대한 답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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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0일 향린교회에서 열린 사노위 출범식
 

한마디 덧붙이자면, 현실 정치영역 내지는 산별·민주노총 등 상층 대중조직을 주요 활동무대로 삼고 있는 구 변혁당과 같은 정파 세력과, 대공장 내의 신노사협조주의·기회주의 세력은 서로 조응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상호 공생관계를 이루면서 현재  함께 한국 노동운동과 변혁운동의 진로를 가로막는 양대 산맥을 형성한다.*

 

* 김정호,  "금속노조 진단과 개혁방향"  ,  http://m.an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5 참조.


이 같은 분파주의는 분명 투쟁의 발전에 해악을 끼친다. 방영환 열사가 분신한 후 일부 세력은 분신한 방영환 동지에게 ‘열사’ 칭호를 붙이기를 주저하였다. 열사가 남긴 유언에 대해서도 선별적으로 발표하려는 등 가급적 투쟁을 축소시키기 위해  급급하는 모습을 보였다.


3.  ‘변혁 정신’의 회복이 올바른 처방전이다

 

이번 사건처럼, 최근 대중조직에서 나타나고 있는 관료주의와 분파주의에 대한 해답은 퇴색해가는 변혁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일부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상근자 노조’를 건설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관료주의나 분파주의 문제는 모두 조직노선 혹은 조직 작풍과 관련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치노선은 조직노선을 규정하는 관계로, 먼저 잘못된 정치노선을 극복하여야만 진정한 변혁 정신의 회복이 가능하다. 레닌은 일찍이 조직(당)이란 변혁적 사상을 물질적 형식을 통해 공고화한 것이라고 양자 관계를 설파한 적이 있다. 


따라서 우선 사회주의 전망 찾기에 있어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구 변혁당 계열처럼 현실사회주의를 부정하고서는 제대로 된 사회주의 선전 선동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 현존하는 사회주의국가들은 모두 나름의 일정한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 따라서 이들(쿠바, 북한, 베트남, 중국 등)이 갖고 있는 나름의 긍정성을 최대한 발견토록 노력해야 하며, 그것을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알리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필자는 그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강력한 사회주의 선전 선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변혁당 계열을 비롯하여 노사과연, 노동자연대,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등 소위 맑스레닌주의와 사회주의를 신봉한다는 세력들 스스로가 앞장서서 현실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국가자본주의론’을 내세우며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이 마치 위장된 자본주의 국가인 양 간주한다. 이처럼 해괴망측한 이론을 겨냥해 그동안 수많은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핵심적인 쟁점도 이미 형성되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짐짓 딴전을 피우면서 ‘의도적으로’ 논쟁을 회피하려 한다. 이는 진리 앞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기회주의자들이 취하는 전형적 태도이다.


 현재 형성된 핵심 쟁점을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국가를 다스리는 관료 집단이 자본가계급이라고 한다면, 이는 맑스주의 ‘국가론’과 관련된 고전적 명제를 수정하게 된다. 예컨대 사적유물론의 범주상으로 볼 때 '관료집단'은 분명 상부구조에 속하며, 자본가계급은 생산관계와 관련되므로 하부토대에 속한다. 그런데 관료집단 스스로가 자본가계급이 되면 이 같은 상부구조와 하부토대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되고, 양자는 직접적으로 통일된다.  그럴 경우 국가는 계급간의 적대가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산물이라는 사적유물론의 기본 명제에 어긋나는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겉으로나마 적대하는 계급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하는 자기 모습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사회 위에 초월적인 존재로 군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관료집단 스스로가 자본가계급이 될 경우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 밖에, 자본주의 국가라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과잉생산 모순에 부딪치게 되고, 이 때문에 '주기적 공황'을 피할 수 없다고 <자본론>은 가르친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을 필두로 한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법칙에서 이탈했다. 수십년간의 고도성장을 주기적 공황 없이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좀 더 근본적으로 사적유물론의 방법론과 관련해서 보자면, 한 사회에 대한 성격 규정은 생산관계(소유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지만 다양한 우클라이드(생산양식)가 병존하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그중 어떠한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판단할지에 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지배적’인 생산관계에 의해 그 사회의 성격은 결정되며, 또한 그것은 양적 규정성이 아닌 질적 규정성에 따른다는 명제는 지난 1980년대의 치열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거치면서 이미 광범위한 동의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이 같은 논쟁 성과를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하루빨리 한국의 분열된 변혁진영이 통일을 이루고 노동자계급의 단일한 대오를 형성키 위해서는, 잘못된 이론은 제때에 수정되거나 폐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 변혁당 계열을 비롯한 ‘국가자본주의론’을 신봉하는 세력들은 앞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해야 하며, 솔직하게 자신들 노선상의 과오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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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2월 15일 민주노총 13층 회의실에서 ‘현실 사회주의’를 주제한 토론회가 열렸다
 

당 건설 노선의 경우, 구 변혁당 계열이 기존에 추진했던 방식처럼 현장 밖에서 하는 ‘캠페인식’ 운동만 가지고서는 결코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현재 한국 노동자계급의 가장 절박한 문제이자 한국사회 전체의 주요모순이라 할 수 있는 광범위한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키위한 구체적 방안이 고민되어야만 한다. 그 같은 내용을 담은 당 건설이라야 현장 대중의 환영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당 건설은 주요모순의 해결 과정”이라는 명제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해볼 것을 권고한다. 

 

다음으로, 양규서-함계남 사건에서 나타난 대중조직 내부의 ‘관료주의’ 문제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의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많은 산별노조(총연맹인 민주노총 포함)가 안고 있는 관료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상근자 노조’와 같이 대중조직 내에서 또 다른 활동가들의 권익단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또한 변혁정신을 회복하는 데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상근자 노조’에 대해선 이글 서두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여기선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도록 한다. 이에 대해 지지하는 태도를 보인 대책위의 김장민씨는 “이데올로기 조직에 노동조합이 가능할까?”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교회, 정당, 노동조합이 관료들을 임노동 형태로 고용하더라도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닌 동지적 관계가 형성될 때 노동조합은 필요 없다. 조직의 목적에 따라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되기 때문에 채용 관료들이 굳이 노동법상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 조직이 채용 관료에게 자본가적 행동을 할 때 채용 관료는 거기에 대응하여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당원인 상근자를 대량 해고하려고 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과거 공공운수노조에서도 집행부가 자본가처럼 행동하니 상근자들이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채용된 관료들은 노동조합 집행부가 자본가처럼 활동할 때 노동조합을 만들어 대응한다. 이번 공공운수노조 사태의 시발점인 의료연대 사태도 집행부가 채용 관료를 동지적 관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기계처럼 소모품으로 다룬다.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가 정규직 전환 투쟁 등 과중한 업무로 부상당한 함계남 국장을 소모품처럼 폐기하려고 했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이상 김장민, “공공운수노조 상근자 노동조합 출범을 축하하며”, 2023.09.22.) (인용문 중 굵은 글씨체 강조는 인용자에 의한 것임)

 

위 글을 보면 김장민씨가 이번 공공운수노조 사태의 원인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집행부가 채용 관료(상근자)를 동지적 관계로 인정하지 않고 “자본가적 행동”을 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 견해에 대해 완전히 동의한다. 원래 함께 노동해방을 지향해야 할 집행 간부와 상근자의 관계가 언제부터인지 사용주(채용주)와 피고용자(임노동)의 관계로 변질되었으며, 이런 관행이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광범위한 대중조직에 퍼져있다. 이는 자본가계급의 세계관이 위험 수준으로  노동자계급 대중조직 내로 침투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잘못된 관점이야말로 이번 공공운수노조 사태를 빚게 된 인식론적(철학적, 사상적) 토대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이 애초 동지적 관계를 통해서 풀 수 있었던 비적대적 모순을 적대적 모순으로 발전하게끔 하였으며, '조직의 사유화'나 ‘분파주의’와 같은 불순물이 자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근자 노조’ 결성은 올바른 해결책일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스스로 사용주(채용주)와 피고용자(임노동) 관계를 인정하게 될뿐더러, 애초 자신들을 ‘활동가’로 대우해주길 바랐던 초심에도 어긋난다. 사용주- 피고용자 관계에선 동지적이고 운동적인 비판과 노선투쟁은 자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가장 손쉽게 자본가계급의 현행법에 기대어 자신의 권리를 지키겠다는 권리 의식만 남게 된다. 따라서 이런 식의 해결책은 비록 상근자들이 ‘약자’의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서로를 타락시킬 뿐이다. 


김장민씨가 민주노동당 내에서 상근자 노조를 만들어 대량 해고를 막았던 사례를 들었지만, 이 사례 역시 적절한 것은 아니다. 만약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 내에 과도한 상근역량이 존재할 경우, 이는 원래 투쟁사업에 쓰여져야 할 귀중한 재정 역량이 인건비 등 조직 유지를 위해서 소모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과연 민주노동당에 대한 민중의 기대에 보답하는 길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운동조직의 경우에는 ‘변혁성의 회복’밖에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그리고 이는 상근자이든 조직이든 모두에게 요구되는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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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환 열사 딸 방희원 씨가  지난 11월 11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먼저, 상근자 측면에서 살펴보자. 채용된 상근 활동가는 단순히 일반 기업처럼 ‘임금’을 목적으로 고용된 것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동지적 관계’로 대우받길 원했듯이 그리고 애초 김장민씨가 이런 조직들을 ‘이데올로기 조직’이라고 규정했듯이, 이들에게 있어선 '활동가 관계’가 기본이고 ‘고용관계’는 부차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공공운수노조와 같은 상급단체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순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즉 노조 상급단체가 일상에선 상근자를 ‘고용된 자’로 대우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상근자가 ‘활동가’로서 변혁적 정신을 가지고 헌신적 자세를 보여주길 원한다.  반대로, 상근자의 경우는 스스로 변혁활동가로서 자긍심과 존엄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자신에게 변혁성이 무디어지고 단순히 실무형 노조 간부로 전락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컨대 선출직 집행 간부 ‘눈밖에’ 나는 일은 굳이 하지 않으려 하고, 익숙하고 관성화된 일에만 안주할 뿐 운동의 근본 문제를 고민하거나 원칙적인 입장을 내세우길 꺼려한다. 


결국 이런 유의 모순이 누적되면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우리가 일차적으로 주목할 것은, 공공운수노조의 사무처 분회처럼 관료주의가 성행하는데 일조하는 상근 활동가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적으로 변혁활동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정파조직(노동전선, 전국회의, 평등의 길 등)과 어떤 형식으로든 관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변혁당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들의 타락은 결국 그들이 속한 조직들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반영한다. 따라서 지금의 공공운수노조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은 한국 노동운동과 변혁운동의 축소판이자, 그 자화상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이번 사태를 보는 한 활동가의 지적을 들어보자.

 

“00산별노조의 관료주의 문제는 두 개의 측면이 함께 겹쳐 있다. 하나는 노조를 만들고 거기서 영향력을 키운 현장 활동가(선출직 집행간부-주)와, 다른 하나는 그들의 일이 너무 많아서 실무적으로 보조하는, 즉 문건을 작성하거나 교육과 조직사업을 담당하는 상근 활동가의 문제이다. 후자의 경우 아직 노조 자체 내에서 이 같은 전문 역량을 키울 수 없으므로 외부 정파 활동가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다. 많은 이들이 대중운동을 직접 안 해봤으면서도, 00국장이니 00실장이니 하는 감투를 쓰고 바로 핵심 측근으로 행세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매우 권위적이며 고압적이다.”

 

“이런 대중노직 내부의 권위주의는 원래 노조(전임자)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외부에서 영입된 활동가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옛날에는 상근 활동가들이 위원장이나 현장 출신 선출직 집행 간부들의 관료주의를 견제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이런 경향을 선도한다. 다른 상근자를 안 두면 안 두었지, 자기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제거하겠다는 식이다.”
 (이상, 양규서-한계남 대책위에 참여한 한 활동가의 증언)

 

이처럼 이번 사건은 표면상 관료화된 거대 조직에 맞서서 개별 상근 활동가의 권리를 지키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관료주의 즉 변질된 변혁주의와 진정한 변혁주의 간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해결책 역시 변혁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야 한다. 김장민씨가 앞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닌 동지적 관계가 형성될 때 노동조합은 필요 없다”라고 언급했듯이, 근본적인 해결 방향은 이처럼 ‘동지적 관계의 회복’, 다시 말해서 진정한 변혁정신을 되찾는 것이어야 하며 굳이 ‘상근자 노조’처럼 후퇴적 발상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양 당사자 모두에게 ‘변혁적 정신’을 회복할 것이 요구된다. 


우선, 상근 활동가의 경우 애초 운동에 입문했던 젊은 날의 ‘변혁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사실 대중조직의 상근자이든 정당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혹은 ‘전임’으로 표현되는 현장활동가이든 간에 그 뿌리는 하나다. 그들은 서구와는 달리 한국적 노동운동 상황에선 1987년 이후 배출된 변혁적 활동가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들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제도화된 '노동조합의 서기’로 안주해선 안 되며,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초심을 끝까지 간직해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무장한 활동가는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조직에 대한 헌신성 또한 높다. 


다음으로, 대중조직의 경우에는 진정한 민주집중제의 실천을 통해서 상근 활동가들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고용된’ 실무자로 취급받는 그들에게 활동가(운동가)로서의 무한한 책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충고와 당위적 논리가 수용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분파주의’와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는 상태라면, 본문의 주장은 분파주의의 실질적 이해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산별노조의 재정이 충분하지 못할지라도 최대한 상근자들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해 주어야 하고, 특히 예기치 못한 산재를 당한 경우에는 특별 배려가 주어져야 한다. 그럴 때라야 상근자와 조직 간의 따뜻한 동지애가 싹틀 수 있고, 활동가의 자발성과 헌신성을 끌어 올릴 수 있다. 이런 조치가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플러스 효과를 미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는 마치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잘 처리하는 문제와 같다. 그들을 단지 부담으로만 생각해서 함부로 방치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하겠는가? 최선을 다해 그들을 치료하는 것은, 설령 팔다리를 잃어 다시 전투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이런 조치만으로도 다른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자신들이 용감하게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지라도 국가가 나서 자기 가족들의 앞날을 보장해줄 것이며, 자신은 역사에 명예롭게 기록될 것이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휴머니즘’만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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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의사당에 적기를 꽂는 소련 홍군

        

( ※  울산함성은 노동자 독립언론으로서 비판  언론,  소통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함을 통해 노동운동 내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본지의 게재 내용에 이견이 있다면 반론을 적극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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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TV

활동가 존중을 운운하면서 상근활동가들에게 '건방지다'라는 표현까지 쓰는데.

현장활동가라고 주장하는 분께서 상근활동가들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들만의 '존중' 존중합니다^^

2023.11.15 10:59:18 답글
헛소리

자기 서울 발령 안내준다고,  자기 배우자 노조에서 채용하라고 옥상 올라간 사건에 뭔 이런 헛소리를 갖다 붙이는지. 

당신이 얘기하는 가장 관료적이고 비계급적인 노조 상근자 두명이 바로 양규서, 함계남이요! 그 둘이 어떻게 일하는지 한버 보고 얘기하시지.

2023.11.16 09:15:21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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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6

'일대일로'와 신국제질서의 형성(제4회)ㅡ전방위적인 상호연결 ⓷

2023.12.01

'일대일로'와 신국제질서의 형성(제3회)ㅡ전방위적인 상호연결 ⓶

2023.11.29

'일대일로'와 신국제질서의 형성(제2회)ㅡ전방위적인 상호연결 ⓵

2023.11.27

'일대일로'와 신국제질서의 형성 (1회)ㅡ 유래와 취지

2023.11.24

양규서-함계남 사건의 교훈(2)ㅡ 관료주의 배후에 변질된 노선이 있다

2023.11.15

2

양규서-함계남 사건의 교훈 (1)ㅡ 관료주의 배후에는 변질된 노선이 있다 !

2023.11.14

양규서-함계남 사건의 전말(마지막회) ㅡ 합의와 재발 

2023.11.09

1

현대 제국주의 논쟁

무엇이 채만수 소장을 경제주의적 제국주의론의 옹호자로 되게 했는가?

제국주의에서 침략성·지배성을 제거하는 노사과연의 경제주의적 제국주의론(2)

2023.11.08

양규서-함계남 사건의 전말 (제2회) ㅡ 주요 쟁점

2023.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