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등록일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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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 나의 모나리자 그런 표정은 싫어”

노래방 애창곡 조용필의 ‘모나리자’라는 대중가요 한 소절이다.

 

노래 등 예술작품을 접하면 특정 장소나 경험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무엇이 연상되시는지? 노래방? 좋아하던 TV 예능 프로? 혹시 이 노래에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 혹은 거리 시위장면이 떠오른다면 어떠신지?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아직은 많을 거다.

 

그러나 실제로 민주노총의 집회, 가두시위 현장에서 대중가요들이 종종 울려 퍼진다. 얼마 전 윤석열 퇴진을 위한 민주노총의 가두시위 현장에서도 선두방송차에 한 무리의 밴드가 등장해 이 노래를 불렀다. 같이 걷던 한 동지는 “뭐야? 지금 윤석열이 우리 사랑을 안 받아준다고 항의 시위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집회 현장에 울려퍼지는 대중가요, 문화는 즐거우면 되는 건가요?
노동운동 견인한 노동자문화, 문화는 즐거우면 되는 건가요? 
문화를 잃은 계급은 지배당해, 민주노총은 무엇을 할 것인가 

 

집회나 투쟁 현장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전반에 있어서 문화는 그다지 중요한 의제나 고민거리가 되지 못한다. 수많은 민주노조에서 문화국이 사라진 상황이 단적인 증거이다. 집회공간에서의 대중가요, 혹은 대중문화 패러디에 대한 문제의식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기보다 보다는 그저 찬반양론, 혹은 ‘그러거나 말거나’ 식의 인식이 대부분이다. 이런 와중에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제기가 있었는데, 지난 11월 수도권 합동유세 과정에서 오고 간 질문과 대답을 요약·정리해 봤다.

 

‘노동자 계급의식을 대변하는 노동자 문화가 많이 퇴색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대중성 확보, 즐거운 집회 문화 등의 이유를 대지만, 투쟁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대중가요가 행진할 때 방송차서 흘러나오면 내가 왜 이 집회에 참여했는지 자괴감이 든다. 즐겁기만 하면 의미도 없는 자본의 문화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지? 노동자 계급의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동자 문화를 지켜내고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이 있는지?’

 

이에 대해 현 당선인인 당시 기호 1번 쪽 후보는 이렇게 답변했다.

‘투쟁가만 틀고 딱딱하게 집회하는 게 힘들다는 조합원도 있고, 대중가요를 틀면 비판하는 조합원도 있고 해서 어렵다. 형식이 가볍다고 해서 내용마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대중가요는 자본의 문화이고 노동가요는 노동의 문화라고 이분법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는 아침이슬이 저항가요로 불려 졌고 최근에는 이런 것이 없다 보니까 점점 더 투쟁가요 민중가요 이런 것만 집중해서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직접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정신이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면 방법은 (대중가요 등도)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고충이 느껴지기도 하고 공감이 되는 동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문화활동을 하는 나로서는 매우 유감스럽다. 우선 본인이 자본의 문화와 노동의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 말자고 하면서 스스로는 형식과 내용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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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 가볍다고 내용마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노래, 몸짓, 연극 등 다양한 문화를 창작하는 내 입장에선 위원장 발언이라고 느끼기엔 새털처럼 가볍다. 형식과 내용은 형이상학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음악에 왜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가 있는지는 아시는지? 톤 앤 매너라는 게 왜 중요한지는 아시는지? 수많은 창작자가 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위해 숱한 고민을 하는지 따위는 ‘내 알바임?’이라는 말씀인지? 그래서 투쟁하기 위해 엄청난 조합비를 쓰며 새벽밥 먹고 달려온 조합원들에게 울려 퍼진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라는 노랫말 어디에 내용의 가볍지 않음이 있다는 건지? 또한 당선인의 이 대답은 마치 조합원들을 앞세우고 그 뒤에 숨는 것처럼 느껴진다.


120만이 넘는 조합원들의 취향과 생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지도부로서 역할을 할 이들의 철학을 묻는 것인데, 그에 대해 ‘이런 조합원도 있고 저런 조합원도 있어서 어렵다’라고 말씀하셔야 했는지? 심지어 이 말조차도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다. 유연함이라는 말로 둘러 표현했지만, 결국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대중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로 대답을 마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와 민중문화 전반에 관해 이야기해야겠으나, 지면이 허락지 않으니 한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노동자도 이 사회의 대중이다. 하기에 대중문화는 노동자들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민주노총이 뭘 하지 않아도 이미 집회를 끝내고 갈 뒤풀이 노래방에서, 귀갓길 라디오에서, 집에 도착하면 TV에서, 숱하게 접하고 알아서 잘 향유한다. 그러니 민주노총이 뭘 할지를 고민하시길. 문화를 잃은 계급은 지배당할 수밖에 없으니.


출처 : <노동자신문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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