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기획연재] 한국노동운동사⑭
<노동자함성>
등록일 :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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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곧은뉴스 바른언론  직썰 

 

                  
1. 1분간 ‘140 걸음’ 테일러주의

 

동일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5대 방적업체 중 하나였던 동양방적 인천공장을 적산 불하 받아, 1955년 인천 동구 만석동에 세워진 방직 공장이다.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데, 1분간 140 걸음을 걸어야 하는 테일러주의 노무 관리로 그야말로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저는 동일방직 와인다 3반에 근무하는 안순욱입니다. 저는 5년 동안 동일방직에 근무한 여자 근로자로서 …… 5년간 동일방직에 근무하면서 하기휴가가 한 번도 없던 중에 금년 여름에 하기휴가를 준다는 소식에 저의 마음은 …… 한없이 부풀어 있었습니다. …… 휴가는 15일부터 19일까지였습니다. 그러나 저희 3반은 14일 밤일을 하느라 15일 새벽 6시에 퇴근하고 집에 갈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중 퇴근 2시간 전에 와인다 대장 김춘옥양이 작업장에 들어와서 우리 와인다 3반은 6시에 퇴근할 수 없고, 두 시간 연장하여 8시에 퇴근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 안순욱의 진정서)


2. 한국노총 산하 지부 중 ‘첫 여성’ 지부장 탄생

 

이렇듯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1972년 당시 1천 383명 조합원 중 여성이 1천 204명이었는데, 노동조합은 남성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으며 노동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이에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여 1972년 5월 10일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최초로 여성 노동자인 주길자를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이처럼 여성 지부장이 선출된 것은 한국노총 산하 448개 지부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3. 나체시위 사건

 

사측은 지부장을 남성으로 교체하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갖가지 방해 공작을 벌였다. 이에 맞서 1975년 5월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하는 200명의 여성 노동자에 대해, 경찰이 농성장을 포위하고 강제 연행을 시도하자 조합원들은 옷을 벗고 알몸으로 저항했다.

“방석복과 곤봉으로 무장한 전투경찰대가 시퍼런 경찰버스를 앞세워 회사 안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겁에 질린 일부 여성들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누군가 다급히 외쳤다. ‘벗고 있는 여자 몸엔 경찰 아니라 그 누구도 손 못 댄대!’ ”(<똥을 먹고 살 순 없다>)

경찰은 처음엔 당황하여 주동자만 내놓으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농성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나서 “내가 주동자”라고 하자, 회사 간부의 손가락질에 따라 노조 간부를 색출하여 곤봉으로 때리고 알몸인 채로 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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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똥물로 얼룩진 작업복

 

1978년 2월 21일 새 지부장 선출을 위한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는 경찰과 회사 간부, 그리고 회사 측 남성 조합원들이 에워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다시 여성 노동자를 지부장으로 선출할 기미가 보이자, 남성 조합원 여럿이 선거함을 부수고 선거를 중단시켰다. 마침 퇴근자들이 막 작업을 마치고 투표를 위해 줄지어 나오고 있을 때, 갑자기 화장실에 숨어 있던 남자 조합원 5∼6명이 방화수에 똥을 담아 달려들었다. 


이들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똥을 묻혀 닥치는 대로 조합원들의 얼굴과 온몸에 바르고 뿌리고 먹였다. 달아나는 여자 조합원들을 쫓아가 가슴에 똥을 집어넣고 통째로 뒤집어씌우기 조차하였으며, 심지어는 탈의실과 기숙사까지 쫓아와 똥을 뿌려댔다. 이때 노조에서 요청한 정·사복 경찰관과 본조에서 파견된 간부들은 현장을 멀뚱히 지켜만 봤다. 


결국 대의원 선거를 치르지 못하게 되자, 이 틈을 타 섬유노조는 지부장을 비롯한 간부 4명을 제명하고 동일방직 지부를 사고지부로 규정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해고자 총 126명이 발생했다. 그런데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섬유노조는 이들 해고자 명단을 기록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각 기업체에 돌려주며 취업을 가로막았다.

 

5. 교훈 - 시대 마다 노동자는 해야할 역할이 있다

 

동일방직 사건은 1970년대 초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경공업 분야 여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 시대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후 87년 대파업을 계기로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축은 중공업 분야에서 일하는 대규모 남성 사업장으로 옮겨진다. 
시대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박정희 군부독재 하에서 가녀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 후배들은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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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자 동일방직 복직투쟁위 위원장이 2019년 투쟁 중인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에게 후원금과 후원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출처 : 현대차 현장신문 <노동자함성>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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