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아석
등록일 : 2024.07.26

 

이육사.jpg
이육사(1904-1944)

 

이육사(1904~1944)는 서정시를 쓰는 독립운동가로 알려졌지만, 그는 맑스주의자였다. 육사는 1932년 아나키즘에서 맑스주의로 전화해 가던 의열단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에서 7개월간 수학하고, 졸업식에서 공연한 연극 <지하실>의 대본을 썼는데, 이 연극은 다음과 같이 공공연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그린다.

 

경성의 모 공장 지하실의 어두운 방에서 노동자 일동이 일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으로 ‘모월 모일 우리 조선혁명이 성공하다’라는 보도가 있고, 계속하여 용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평양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부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하는 방송을 해 오고, 마침내 공산제도가 실현되어 토지는 국유로 되어서 농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식당, 일터, 주거 등이 노동자 등에게 각각 지정되어 완전한 노동자,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가 실현되었으므로 농민, 노동자는 크게 기뻐하여, ‘조선혁명성공만세’를 고창하고 폐막하였다. -「김공신 신문조서」(제2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독립운동사자료 31, 1997, pp. 149~150.


1934년 4월 『대중』 지에는 「자연과학과 유물변증법」이란 글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소개하였다. 1936년에는 「노신추도문」을 써서 노신의 리얼리즘 문학이 사회주의 혁명을 고취시켰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1936년 12월에 『풍림』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발표한다.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주 친하고 그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지구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할 오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 안에 핏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 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의 행상대(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百姓)들도 옥야천리(沃野千里)를 차지하자

 

다 같이 제멋에 알맞는 풍양(豊穰)한 지구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地球)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생산(生産)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보자

앵속(罌粟)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餐宴)엔

예의에 끄림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 보자

 

염리厭離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神)이란 항상 거룩합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들의 그 틈엔 안 끼여 갈 테니

새로운 지구엔 단죄(罪) 없는 노래를 진주(眞珠)처럼 흩이자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十二星座) 모든 별을 노래하자

[이육사(2004), 『이육사 전집』, pp. 63-63, 깊은 샘]


*군수야업(軍需夜業). 군수공장의 야간작업. 한국인들은 군수공장에 징용되어 야간에도 작업을 했다. *행상대(行商隊).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행상. *옥야천리(沃野千里). 옥토가 끝없이 넓은 들판. *풍양(豊穰). 곡식이 잘 익어 풍성한 모양. *앵속罌粟. 양귀비를 뜻한다. 원문에 嬰粟으로 되어 있는데 이 앵속의 오식으로 모두 보고 있다. *찬연(餐宴) 눈부시게 밝다. 영광스럽고 훌륭하다. *염리厭離. 육사가 한문을 쓰지 않았기에, 불교에서 사바세계의 더러움을 싫어하며 떠나는 것으로 추정.


사회주의 혁명가 이육사는 3연의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인 식민지 조국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하기 원한다. 이 새로운 지구는 2연에서 노래한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의 큰 별’이다. 새로운 지구를 건설할 이들은 4연의 군수야업의 젊은 동무들”, “행상대”, “화전에 돌을 줍는 백성”, 노동대중으로, 이들이 5연의 “지구의 주재자로/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지”고 “옥야천리를 차지”한다. 이들은 6연의 “모든 생산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본다. 이 혁명 과정에서 7연의 과거의 사상을 대변하는 “신(神)”은 새로운 별로 가는 노동대중 “이민”에 낄 이유가 없다. 혁명은 8연의 “한 개의 별”에서 시작하지만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과 모든 별”로 가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육사가 맑스주의자라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육사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육사의 시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통해 보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신좌파’적 해석들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육사는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1934년 7월 안동경찰서의 육사에 관한 기록에도 “배일사상, 민족자결, 항상 조선의 독립을 몽상하고 암암리에 주의의 선전을 할 염려가 있었음.

 

또 그 무렵은 민족공산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본인의 성질로 보아서 개전의 정을 인정하기 어려움”으로 나와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독립운동사자료 30, 1997, p. 178.)

 

육사는 사회주의 조직활동을 이어가다가 43년 7월 체포된 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2024년에 이육사의 1936년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를 읽는 것은 학창 시절 독립운동가로만 알던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혁명시를 소개해 보았다.

 

출처 : <노동자신문>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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