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지창영 (시인)
등록일 : 2024.07.24
상사화.png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

 

시에 사상과 정서를 함축하여 담기 위해 여러 가지 기법이 동원될 수 있는데 그중에서 비유는 매우 중요하다. 비유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해 줄 아바타를 찾아서 그를 내세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작가를 대신하여 메시지를 전하려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과 닮은 것을 찾아야 한다.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 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윤동주, 「위로」)

 

위 시에는 거미와 나비가 등장한다. ‘거미란 놈’은 ‘흉한 심보로’ ‘그물을 쳐’ 놓고 거기에 걸려든 ‘나비의 온몸을 감아’ 버린다. 나비는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는 신세가 되었고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는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본으로, 나비는 국권을 상실한 한반도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시인은 거미와 일본의 닮은 점, 나비와 우리 민족의 닮은 점을 각각 찾아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인은 자신이 처한 시대의 비극적 상황을 짧은 시 한 편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개미는 허리를 졸라맨다
개미는 몸통도 졸라맨다
개미는 심지어 모가지도 졸라맨다


나는 네가 네 몸뚱이보다 세 배나 큰 먹이를
끌고 나르는 것을 여름언덕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네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
저녁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것을 본 적 없다.
너의 어두컴컴한 굴속에는 누가 사나?
햇볕도 안 쬐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가 사나?

 

(김명수, 「개미」)

 

김명수 시인.png
김명수 시인

 

이 시에서는 개미를 앞세워 소외된 노동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여기에 제시된 개미와 노동자의 닮은 점은 ‘허리를 졸라’매고 ‘몸통도 졸라’매며, ‘심지어 모가지도 졸라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몸뚱이보다 세 배나 큰 먹이를/ 끌고 나르’지만 ‘식구들과 한가롭게 둘러앉아/ 저녁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 반면, 독재 권력과 결탁한 자본가는 ‘햇볕도 안 쬐 허옇게 살이 찐’ 여왕개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시는 1991년에 발행된  <침엽수 지대>에 수록된 작품으로서 당시 극심했던 노동 착취의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당시와 양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노동이 소외되는 현실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위험한 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의 설움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뒤숭숭한 꿈자리 털고 일어나
고운 아내가 챙겨준 새벽밥을 먹고 일 나왔던 비계공 최씨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온몸으로 꽃 피워놓고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나뉜 사랑
세상에 또 상사화로 핍니다.

 

(김해화, 「이렇게 나뉜 사랑-상사화」)

 

김해화 시인.png
김해화 시인

 

이 시에서는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여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없는 노동자의 비극이 담겨 있는데 ‘이렇게 나뉜 사랑’을 ‘세상에’ 피는 ‘상사화’로 묘사했다. 상사화는 꽃이 먼저 피었다가 지고 난 후에 잎이 돋아난다. 대부분의 꽃들은 잎과 함께 따뜻한 햇볕도 받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상사화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가장이 있는 다른 가정은 가족이 어울려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면서 살아 가지만, 사고로 가장을 잃은 가정은 응당 함께해야 할 가족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상사화를 닮은 것이다.

 

아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
행복해
하는 거나

 

내가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
불행해
하는 거나

 

(정소슬, 「데칼코마니」)

 

데칼코마니는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눌러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반으로 접힌 부분을 중심으로 서로 대칭되는 무늬가 생긴다. 정소슬 시인의 「데칼코마니」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대칭을 이루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대칭을 이루며, 행복과 불행이 대칭을 이룬다. 모르는 것이 많아도 행복한 아이와 아는 것이 많아도 불행한 어른의 대칭적인 모습이 데칼코마니를 닮았음을 포착하여 시로 표현한 것이다.

 

데칼코마니.png
데칼코마니

 

닮은 점을 찾을 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나비를 옭아매는 거미처럼 그 행태에서 닮은 점을 찾을 수도 있고, 허리가 유난히 잘록한 개미처럼 그 모양에서 닮은 점을 찾을 수도 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처럼 그 상징성에서 닮을 점을 찾을 수도 있고, 같은 무늬지만 서로 대칭을 이루는 데칼코마니처럼 특정 용어의 의미에서 닮은 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자연의 섭리, 우주의 법칙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점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닮은 점을 찾으려면 시적 대상을 중심에 두고 여러 가지 사물과 현상을 연관시켜 보아야 한다.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속성까지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닮은 점들을 찾을 수 있다. 닮은 점 찾기가 습관이 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재료를 그만큼 많이 모을 수 있게 된다.

 

지창영 시인.jpg
지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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