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북악산에서 역사와 권력을 떠올려 보다
허영구(노년알바노조(준) 위원장,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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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북악산으로 향했다. 청와대에 들러 구경부터 하고 산에 오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문에 도착하니 65세 이상은 입장 가능한데 그 이하 연령대는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65세 안 된 일행과 함께여서 결국 청와대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작년 초 개방될 때는 관광객이 많아서 인원을 제한하는 이유로 그렇게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아 찾아와서 그런가 보다. 

 

도시 시골 사람 청와대 뜰 구경 한 번 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린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초기 사회단체 초청 청와대 칼국수 만찬이 있었는데 그 때 한 번 들어 간 적이 있었으니 벌써 30년 전이다. 그 이후 여섯 명의 대통령이 이 곳을 거쳐 갔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에 없는데 수석비서관실에 공문 전달하러 들어간 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본관 근처에는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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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혁명 당시  최초 발포 현장에  설치된 인권 표지동판

 

삼엄했던 청와대 앞이나 기자회견, 1인 시위가 상시적으로 열리던 분수대 앞은 검은 안경을 낀 경찰과 대통령실 경호요원들로 히뜩번뜩 하던 곳인데 조용하다 못해 한가롭다. 이 자리가 바로 63년 전인 1960년 4월 19일 오늘 이승만 독재정권의 발포로 중·고등학생을 포함해 200여명이 목숨을 잃은 현장이다. 지금도 분수대 앞 보도블럭에는 ‘발포현장’ 표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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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무궁화공원을 지나 창의문 쪽으로 향한다. 오른편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담벼락 너머로 기와지붕이 보이고 잘 가꾸어진 수려한 나무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미군정사령부 관저에서 시작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문재인 정부까지 1세기가 넘는 영욕의 세월을 거쳐 간 최고 권력의 거처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간 지금 조용하기 그지없다. 

 

백악정, 청와대 전망대, 대통문을 거쳐 북악산에 오르려 했는데 오후 4시가 넘었다는 이유로 칠궁안내소에서부터 출입금지다. 말은 청와대 개방인데 ‘완전개방’은 아니다. 할 수 없이 경복고등학교 담벼락 길을 따라 창의문 쪽으로 향했다. 윤동주문학관에서 길을 건너 북악산 등산로입구에 당도한다. 거기서도 출입이 금지되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후 6시가 되지 않아  등산로는 열려있고 평일이라 조용하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삿갓봉우리처럼 솟아있어 가파르다. 산성을 따라 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여전히 예전이나 최근까지 있었던 삼엄했던 분위기가 남아 있다. 북악산을 오르다보면 남쪽으로 서울 도심과 함께 남산, 서쪽으로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의 인왕산, 북쪽으로 북한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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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을 오르다보면 남쪽으로 서울 도심과 함께 남산이 한 눈에 보인다.

 

북악산 정상 백악마루에 올라선다. 얼마 전 고향에서 미술관장으로 재직 중인 초등학교 친구가 인왕산이 불탔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석양의 햇볕을 머금은 인왕산을 바라본다. 이곳도 1968년 김신조 사태 이후 2000년 초에 시민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우뚝 바위 위에 올라 사진을 찍고 있는 데 나비 세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다가 나와 함께 영상에 잡혔다. 

 

다시 하산한다. 오늘은 숙정문을 통해 와룡공원을 거쳐 혜화동 방향이 아니라 곡장에서 북악스카이웨이를 거쳐 혜화동 방향으러 하산할 계획이었다. 김신조 사태 때 교전 중 총탄 자국이 남은 ‘1.21소나무’, 청운대, 청운대전망대를 지나자 삼청 쉼터로 내려가는 등산로 표시가 보인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고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열린 곳이다. 법흥사 터를 지나 내려오니 물 고인 웅덩이에 올챙이가 바글바글하다. 내려올수록 계곡이 제법이고 사방댐도 만들어져 있다. 

 

조금 더 아래에 “계곡을 활용한 수영장 터”라는 표시판이 있는데 이곳은 여름철에 장병들이 휴식을 취하도록 계곡을 막아 수영장으로 활용한 곳이다. 수영장 규모는 가로 7m, 세로 2.5m,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2.7m이다.’ 민간에 개방된 후로는 물 막은 둑을 허물어 수영장 터전만 남아 있다. 이렇게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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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 쉼터를 지나니 삼청 안내소다. ‘2022.4.6. 북악산 국민개방’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반쯤 열려진 두 겹의 문을 나오니 삼청동에서 혜화동 쪽으로 넘어가는 구불구불 2차선 자동차도로다. 그 유명한 한식당인 삼청각으로 가는 길이다. 오래전 몇 차례 자동차를 운전해 넘어간 기억이 있는데 등산로가 개방되어 이 길을 걸을 지는 상상도 못했다. 조금 내려오니 감사원에서 넘어오는 길과 만나는 삼청동 음식점 거리가 나타난다. 

 

길가 오래된 건물에 ‘김구’ 얼굴과 함께 1930년 이동녕, 안창호, 김구 등 26명이  상해에서 결성한 당인 ‘한국독립당 전시실’이 보인다. 2층을 올려다보니 현수막에 “광개토대왕비를 광화문광장에 드높이 새우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미국이 선택한 이승만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나는 가끔 광화문 광장에 임꺽정이나 전봉준 장군은 왜 동상으로 서지 못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둘 다 조선왕실 입장에서는 역적일 뿐이다.  

 

권력을 잡은 이승만은 청와대에서 권력을 누리다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고, 그의 라이벌 김구는 경고장에서 총탄에 쓰러졌고, 이승만 정부 초대 농림부장관 조봉암은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과 대결해 30%를 얻었고, 1957년 진보당을 창당했으나 1959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내몰려 사형(2011년 1월 재심, 대법원 무죄판결)당했다. 권력을 둘러싼 쟁투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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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이라 ‘온마을두부집’에 들러 ‘젓국두부전골’의 짭짤한 국물로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어둠이 깔린 삼청동 거리를 따라 내려간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로 사용되던 금융연수원, 국무총리공관을 지나면서 맛깔난 음식점, 깔끔한 전시 공간 등 가로수를 따라 고풍과 세련미가 물씬 풍기고 있다. 고단한 서민들의 삶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거리다. 

 

광화문과 청와대로 나눠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횡단보도를 건너 경복궁 성벽을 따라 걷는다. 높은 돌담 너머로 ‘국립민속박물관’ 탑 상층부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50년도 지난 시간인데 중학교 2학년 때 서울 첫 나들이이자 수학여행 차 처음 관광으로 들른 경복궁 민속박물관 입구이다. 종로 2가 YMCA 허름한 여관방에서 자고 일어나 건너편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은 ‘31빌딩’을 경이롭게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시골에는 읍내 2층집이 최고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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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이곳 국립민속박물관 역시 1924년 일제가 경복궁을 훼손하기 위해 만든 조선민족미술관이 시작인데 2030년까지는 철거하기로 되어 있다. 일제가 도로를 내면서 종묘를 잘라낸 뒤 창경궁 안에 동·식물원을 만들고 조선인들에게 벚꽃놀이를 하게 했고 이는 1983년 초까지 이어졌다.  

 

경복궁 앞 큰 도로 동남쪽 모서리에 서 있는 동십자각(누정. 망루, 누각)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걸러 광화문을 지나 다시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네모 안에 경복궁과 청와대를 두고 경복궁역-창의문-청운대쉼터-동십자각을 걸었다. 서울에 와서 산 지 반세기가 가까워지지만 초기 10여 년을 권력과 역사와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와 광화문 주변에서 재야인사로 살고 있다. 

202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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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구  노년알바노조(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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