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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영구의 '산길 순례'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3.06.06

허영구-1.jpg

 

서로 몰래 볏단을 가져다 놓았다는 전설을 지닌 의좋은 형제공원을 출발하여 봉수산을 향한다. 조금 지나니 백제부흥군길 3코스 임존성으로 향하는 표시가 나오는 데 거리가 4.25km다. 주변엔 귀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전원주택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다. 

 

‘동구 밖 과수원길’이라는 노랫말이 떠오를 정도로 탱글탱글 열매를 매단 사과나무가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지런히 서 있다. 조금 더 올라서자 ‘봉수산 자연휴양림 수목원’ 바윗돌 표시를 만난다. 뒤돌아 서 내려다보니 예당저수지 푸른 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휴양림 사무소에서부터 임존성으로 향하는 제2코스를 따라 올라간다. 약간 더운 날씨였지만 숲이 잘 가꿔진 탓에 등산로는 나무그늘에 가려져 시원하다. 산 속은 온갖 새들의 지저귐으로 시끌벅적하다. 나뭇잎 사이를 비추는 햇빛으로 인해 푸름의 명암이 눈부시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능선에 올라서자 건너편 산 아래 예당저수지가 펼쳐진다. 임존성은 고개 넘어 200m 정도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임존성 백제 복국운동 기념비’가 있다. 묘순이 바위를 중심으로 성곽둘레는 2,468m이며 북서치, 북문지, 북동치, 동벽 건물지, 남문지가 있었다고 기록해 두었다. 

 

임존성-1.jpg

 

자료에 따르면 임존성(任存城)은 백제시기 고구려 침입에 대비해 수도 외곽기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백제 멸망 후에는 사비성을 되찾기 위한 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로 흑치상지 등이 버텼으나 패배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과 견훤이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한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후로부터 1,363년 지난 세월이니 무너진 성터만 겨우 남아 있었는데 최근 광시면 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남쪽부분만 복원한 상태다. 이 성을 쌓기 위해 많은 백성들의 고초가 있었을 것이고, 또한 많은 병사들이 성을 지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 곳을 ‘백제 유민의 한과 투혼, 그리고 배신과 좌절이 겹겹이 서리고 맺힌 성’이라고 섰다. 

 

임존성-3.jpg

 

복원한 성 바로 아래 큰 바윗돌이 보이는데 ‘묘순이 바위의 전설’ 설명 안내문이 보인다. 

 

“옛날 대흥현 고을에 힘이 장사인 묘순이 남매가 살았다. 그 시대에는 남매장사가 같이 살 수 없었던 시대,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하는 운명으로 남매는 목숨을 걸고 시합을 한다. 누이인 묘순이는 성을 쌓고 남동생은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에 다녀오는 시합이었다. 묘순이는 남동생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성을 쌓았으며 이제 바위 하나만 올려놓으면 성이 완성될 무렵, 묘순이 어머니는 한양에 간 아들이 시합에 지면 죽는다는 걸 알고 시간을 늦추기 위해 묘순이가 좋아하는 종콩밥을 해서 먹인다. 종콩밥을 거의 먹을 무렵 남동생이 성 가까이 온 것을 본 묘순이는 깜짝 놀라 마지막 바위를 옮기다가 그만 바위에 깔려죽었다는 설화다. 지금도 묘순이 바위를 돌로 치면 ‘종콩밥이 웬수다’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둘 중 하나를 살려야 하는데 딸 대신 아들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봉건제시대 남존여비 사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임존성 역사와 관련해 다른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시 1km 정도를 걸어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을 따라가는 등산로는 풀숲으로 우거져 있어 어려움이 있다. 정상에 도착하고 보니 나무들이 둘러쳐져 있는데 그 사이로 예당저수지가 조금 보인다. 장모님이 고향으로 귀촌하신 곳이 이 곳이라 얼굴 뵈러 왔다가 정상에 올랐던 것이 벌써 23년 전 일이다. 당시 임존성에 가지 않은 것은 분명한 데 등산로 코스나 정상 주변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봉수산 정상.jpg

 

몇 가지 내용으로 손 피켓 인증샷을 찍고 1코스로 하산한다. 비교적 낮은 산이고 크게 가파르지 않아 무난하게 다시 수목원까지 내려온다. 등산로 옆 대나무 숲 속 여기저기 신비롭게도 죽순이 올라오고 있다. 자라면 딱딱한 대나무가 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죽순을 식용으로 할 생각을 했을까?

 

다시 출발한 공원 근처를 지나는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할 당시 수령이 1,018년이었으니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온갖 풍파에 시달렸을 텐데 나무뿌리나 줄기도 튼튼하고 특히 나뭇잎들이 싱싱하고 푸르다. 

 

느티나무.jpg

 

안내문은 ‘배맨 나무, 목신제로 치성을 받는 마을의 수호신 느티나무’라는 제목과 함께 “ 높이 15m, 둘레 10m 되는 고목으로 마을에서는 매우 신성시하여 2월 초하룻날과 칠석날 두레먹이를 하면서 고사를 지내오고 있다. 봄철은 나뭇잎이 피는 것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는데, 모내기의 지표가 되었던 나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소정방이 이끄는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훙군의 마지막 거점인 임존성을 공격하러 왔을 때 이 나무에 배를 맸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는 느티나무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샘을 파면 곳곳에서 시커먼 갯벌의 흙과 짠물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백제 멸망은 1,363년 전인데 올해로 수령 1,059년으로 추정되는 나무에 배를 맸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그러나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군대가 신라군과 연합해 계백의 5천 결사대를 궤멸시키고 백제를 초토화시킨 상황에서 ‘소정방의 존재가 너무 각인된 탓이 아닐까? 

 

사비성(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소정방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인천의 소래(蘇萊)포구는 숲이 울창해서 ’솔내‘, 지형이 ’소라‘처럼 생겨서, 좁다는 의미의 ’솔다‘는 설이 있지만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공략하기 위해 중국 산동성의 래주(萊州)에서 출발한 탓에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도 있다. 서울 아차산의 ’워커힐‘ 지명은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미국 장군 ’월튼 워커‘ 이름을 땄고, 맥이더 동상을 세운 것처럼.

 

전쟁에서 승자는 패자의 유물을 빼앗거나 파괴하고, 역사적 기록을 없애거나 왜곡한다. 백제부흥의 마지막 저항, 임존성을 품에 안은 봉수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485회, 봉수산(대흥산, 483m, 충남 예산, 대흥면), 2023.6.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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