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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영구의 '산길 순례'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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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 비 내린 후 천마산을 찾았다. 녹음이 짙어가고 햇볕은 화창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비구름을 만들어질 낼 듯이 운무가 깔려 있다. 천마산을 오르는 제3코스로 군립공원 관리사무소 주차장에서부터 출발한다. 정상까지는 2.88km로 짧지만  높이가 812m라 약간 가파른 산이다. 

 

이성계가 이 산 이름으로 손을 조금만 뻗으면 하늘에 닿을 듯 높다하여 말 마(馬)자가 아닌 닿을, 갈 마(摩)를 붙였다 한다. 이성계가 전국 여러 전쟁에 참여했고, 요동정벌 전 위화도 회군까지 한 고려장수로서 북방의 높고 험준한 산을 보고 경험했을 터인데 천마산 정도 높이를 하늘에 닿을 산이라 했을까? 

 

그 보다는 이 산에 정상 바로 아래 꺽정바위가 있는 걸 보면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을 갈아엎으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주를 토대로 활동했던 임꺽정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고 강원, 경북, 충청 내륙의 물자가 집결하는 양수리(두물머리)에서부터 천마지맥(예봉산-천마산), 철마산, 불곡산을 거쳐 양주로 오가며 활동했던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차장을 출발해 계단과 등산로를 따라 720m를 지나면 구름다리가 만난다. 계곡에 물이 흐르고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여러 나무들과 어울려 6월의 신록은 절정을 이룬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준다. 중턱에 또 한 번의 약수터를 지나면 깔딱고개다. 전국의 여러 산을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고개를 만나는데 나이, 등산 경험, 근육, 건강상태, 배낭의 무게, 날씨 등에 따라 느끼는 강도는 등산객마다 다를 것이다. 숨이 ‘깔딱’ 넘어갈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는 의미인데 속도를 조금 늦추면 될 일이다. 

 

고개를 올라서면 서서히 높아지는 능선이 펼쳐진다. 350m 지나면 천마산역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상여바위 삼거리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상여처럼 생긴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포털에 올라있는 산행일지를 쳐보니 계룡산, 밀양 비학산 등에 상여바위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상여를 메고 높이 오르던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바위들이 상여로 보여서 그랬을까? 제법 산에 다닌 셈인데 아직 상여처럼 보이는 바위는 보지 못했다. 

 

이 곳 천마산 상여바위삼거리 깔딱고개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거리에 있어 예전에 풍수지리설에 입각해 명산인 천마산 높은 곳에 묘를 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상여를 멘 사람들이 바로 위 689m 높이의 뾰족봉에서 더 이상 못 오르겠다고 버티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천마의 정기를 받은 후손이 왕은 아니더라도 고관대작 벼슬을 하기를 바랐겠지만 그가 노동자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봉건체제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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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족봉에서 몇 백미터 오르면 정상까지 210m를 남기고 천마산역 2.8km, 마석방향 관리사무소 2.68km, 등산로입구 3.1km(출발지는 마치고개) 표지판이 서 있다. 무거워지는 몸과 함께 가쁜 숨을 쉬면서 오르다 이 정도 지점을 만나면 반갑다. 다 왔다는 안도감이다. 그 때부터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마음도 상쾌해진다. 드디어 정상이다. 운무가 깔려 있고 동쪽으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요즘 며칠 새 재난안전본부에서 낙뢰를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자주 온다. 산에서는 날씨가 급변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빨리 하산해야 한다. 그래도 준비해 간 간식이나 커피 한잔 정도는 해야겠다. 그리고 직장에서 해고된 지 10년 지난 노동자를 지지하거나 그 밖에 후쿠시마방사능오염수 문제 등 현안 이슈에 대해 적은 글을 인증샷으로 남긴다. 이런 바람은 풍수지리설과는 상관없다. 땅 위에서 사람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등산객 몇이 건너편 바위를 가리키며 ‘거북이’라고 말한다. 가서 보니 가곡리 방향으로 내려가거나 철마산 방향을 능선을 탈 경우 첫 번째로 넘어야 하는 멸도봉 아래 바위 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천마산을 백번도 넘게 올라 주변 풍경은 너무 익숙한 데 거북이상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됐다. 좀 더 자세히 보면서 의미를 부여해 보니 악어 얼굴도 보이는 듯하다. 올라오느라 힘들어서 헛것이 보이는 건 나이 탓이겠지. 

 

지자체가 임꺽정, 이성계, 상여바위, 호랑이와 마주쳤다는 마치고개, 거북이상 등 천마산에 얽힌 이야기, 요즘 말로 콘텐츠를 좀 더 개발해 천마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다. 천마산의 아름다움에 문화•역사까지 좀 더 풍부해지지 않겠나? 

 

다시 하산한다. 등산로 주변으로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 다래나무...싸리, 으아리, 기린초, 나리꽃...까마귀, 바람소리까지 함께 한다. 다시 원점으로 내려와 계곡에 손을 담그고 시원한 물로 흐르는 땀을 씻고 나니 자연과 함께 물아일체라! 

 

(486회, 천마산, 2023.6.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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