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ㅡ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까지, 북한은 미국과 관계 정상화 꿈 놓지 않았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등록일 :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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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2023년 8월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관해 "2차대전 이후 그토록 바라면서도 이룰 수 없었던 한·일 관계가 개선되어 한미일의 3각 체제를 제도화겠다는 미국 외교의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 러시아(소련), 북한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한일 사이의 뿌리 깊은 역사 갈등으로 그동안 이런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역사 문제에 대해 굴욕적인 방식으로 일본과 타협했고, 이를 계기로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에서 마침내 한미일 3각 체제가 완성됐다. 뉴욕타임스가 이를 미국 외교 70년의 꿈이 이뤄진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의 제도화로 미국 외교 70년의 꿈이 이뤄졌다고 해서,  과연 한국 외교의 꿈도 이뤄진 것일까? 한국이 미·일 진영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면서 중국과 관계가 더욱 냉랭해진 것은 차치하고라도 윤석열 정권이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는 대북 억지력의 강화는 효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9.13 정상회담은 그렇지 않다는 걸 강력하게 보여준다. 북한과 러시아의 접근은 누가 봐도 명백한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반작용이다. 최근 북한의 위성 발사와 윤 정권의 9.19 군사 합의 파기로 점증하는 군사 대결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반도는 한쪽이 강하게 무장하면 상대도 더욱 강하게 맞서는 안보 딜레마를 불러일으키면서 긴장이 격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반도 안보 불안의 가장 큰 화근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도 더욱 난망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온 <핵의 변곡점>(창비, 시그프리드 해커 지음, 천지현 옮김, 2023년 10월)은 북한 핵 문제와 북한 외교의 논리를 알기 위해 꼭 봐야 할 책이다. 저자인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미국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50년 가까이 핵을 연구해온 핵 문제 전문가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7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그중 네 차례는 북핵 문제의 중심지인 영변을 방문해, 북한 핵 개발의 실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관찰했다. 영변을 가장 많이 찾은 외국 과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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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박사는 과학자답게 북한 핵 문제를 이념 잣대가 아니라 과학의 잣대로 판단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그의 혜안이 더욱 값지다.

해커 박사는 북한은 김일성 주석 때부터 미국과 외교와 핵 개발이라는 이중 경로 전략을 취해왔다고 말한다. 

"미국과 반대로 북한은 그들의 이중 경로 전략 속에서 외교와 (핵 개발과 관련한) 기술적 평가를 서로 연계해 활용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앞장설 때마다 나머지 하나는 그와 조화를 이루어 대비책이 되어주거나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416쪽)

한 손엔 미국과 관계 정상화 카드를 쥐고 다른 손엔 핵 개발 카드를 쥐면서 교묘하게 정책을 펴왔다는 얘기다. 해커 박사는, 그러나 적어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까지는 북한이 미국과 관계 정상화의 꿈을 놓지 않았다고 본다.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안전보장을 받으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3년 시점에서 본 북한은 이런 이중 경로 전략에서 탈피하려 하고 있다고 해커 박사는 경고한다. 그는 2023년 11월 초 이 책 출간 기념을 위해 북한 방문 때 동행했던  미국 중앙정보국 정보 분석관 출신의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함께 서울에 와서 강연하면서 북한의 전략 변화로 찾아온 위기 상황을 매우 우려했다. 9·13 북러 정상회담이 북한이 미국과 관계 정상화와 핵 개발이라는 할아버지(김일성) 때부터의 이중 경로 전략에서 이탈한 것으로 진단했다. 즉, 핵 개발에 제동 역할을 한 미국과 정상화를 포기함으로써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고, 이와 함께 한반도의 상황은 더욱 긴장 상태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개 강연에서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했는데도, 한국의 주요 언론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해커 박사는 미국이 이중 경로를 취하는 북한의 전략을 잘 파악해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북한이 지금과 같은 핵 국가가 되는 것을 막거나 크게 늦출 수 있었는데 아들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의 세 정권이 고비마다 실패를 거듭했다고 말했다. 이런 변곡점을 이용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키워왔다.

이 책은 모두 21장으로 돼 있다. 2004년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부터 2010년 7차 방문 때까지 얘기가 14장까지 펼쳐진다. 그리고 15장부터는 마지막 방문 뒤 자료 분석을 통해 본 북한과 오바마, 트럼프 정권까지 일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북핵의 변곡점을 6가지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2002년 제네바 합의 파기,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 무력화, 2009년 4월 북한의 로켓 발사 규탄, 2012년 2.29합의 파기, 2015년 1월 북한의 핵실험 모라토리엄 제안 거부,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이다. 이 중 주요한 변곡점은 3개다. 제네바 합의 파기, 2.29 합의 파기,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이다.

이런 변곡점을 이용해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이전보다 한층 키웠다. 예를 들어, 부시 정권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몰래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제네바 합의를 깼는데 이는 전형적인 소탐대실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당시 상황에서 우라늄 농축으로 핵무기를 만들려면 10년은 걸리는데 플루토늄으로는 6개월이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 정권의 외교 실패의 결과,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때 북한은 초보적인 핵무기 다섯 개 정도를 만들 만큼 플루토늄밖에 없었고 이것을 미사일로 실어 나를 역량은 없었는데, 그가 백악관을 떠날 즈음엔 2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게 됐고 열몇 번의 미사일 실험에 성공했다. 트럼프 정권 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제어할 기회를 놓치면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세 나라(러시아, 중국, 북한) 중 하나가 되도록 만들었다.

"결국 2001년 이후 미국의 역대 세 정부의 정책은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과 그 동맹을 위협할 수 있는 단 3개국 중 하나로 부상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그런 정책들은 북한 일반 주민들을 가난으로부터 구해내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고 그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지도 못했다.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였고, 점점 더 위험해져가는 동북아시아에서 위험한 장소로 남아 있었다. 평화와 안정이라는 목표는 아직도 요원했고 남북한의 화해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 보였다. 2021년 바이든 정부가 물려받은 상황이 이러했다."(555쪽)

해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북미 외교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거나 경시됐던 일화도  털어놨다. 그중 하나가 2017년 말 구테흐스 특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제트 펠트먼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트럼프의 비밀 메시지를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당시 펠트먼의 방북 때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는 사실은, 그가 방북 3년 뒤 <비비시>에 털어놓은 바 있지만, 이 책에서 반 페이지(479쪽) 정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것이 김-트럼프 회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7통의 친서를 주고받는 가운데, 2018년 9월 6일 보낸 김의 편지에서 '핵무기연구소 폐쇄'라는 주목할 만한 제의를 했다는 사실이다. 해커 박사는 그러나 트럼프의 국가안보팀이 하노이 합의를 깨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웠지 이런 의미 있는 제안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로써 해커 박사가 보기에 북한 핵무기를 막을 절호의 기회가 사라졌다.

해커 박사는 다음과 같은 우울한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만약 김정은이 정말로 대외 안보 환경을 개선하려 워싱턴과의 전략적 화해에 이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베이징 및 모스크바와 더욱 밀착하는 자세를 취해간다면, 우리는 북한 핵 문제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는 21세기를 살게 될 것이다."(559쪽)

북한의 외교 노선 변경과 한반도 위기의 고조가 북한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지 미국과 그 동맹국에게는 문제가 없었는지, 해커 박사는 이 책에서 강력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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