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상배 (공공운수노조 경기본부 조직국장)
등록일 : 2024.06.19

 

18-5-민주주의의정체.jpg

 

민주노총을 가리켜 ‘민노총’이라 줄여 쓰거나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정부와 언론이 자주 쓰다 보니 민주노총의 조합원마저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잦다. 이런 경우 엄격하게 정정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노총이란 단체의 기본 방침이다. 이유는 ‘민노총’이란 단어가 탄생부터 불리는 대상의 비하를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문화에 한정하여, 개인의 성만 따서 “김씨”라고 부르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보통은 지위적 우위에 있는 쪽이 격식을 무시하고 상대를 낮춰 부르는 행동으로 본다. 단체나 집단도 마찬가지다. 비록 약칭이라 하여도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름을 임의로 줄이거나 바꿔 부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함이 일반적이다.

 

‘민노총’은 이렇게 단체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고자 일부러 쓰이는 이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이 있다, ‘민주노조’, 즉 자본과 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춘 노동조합 집단의 역사와 대표성을 부정하기 위함이다.

 

민주노총의 설립에 이르기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뿐 아니라, 그것과 궤도를 함께하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는 크고 작은 사건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민주화를 위해 벌어진 다양한 투쟁과, 헤아리기 어려운 희생자의 수가 이 단어에 무게를 더한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다. 과거부터 이어진 민주화(化)는 대체 언제 마무리되는가? 투쟁의 결과로 도달할 더 높은 수준의 민주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답을 두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민주노총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성의 확보에 관한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 쓰는 단어가 같은데, 그것과 얽힌 내용은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수없이 많은 회의에서 민주성을 지키라 요구하지만, 무엇을 기준에 두어야 할지 아리송한 경우가 태반이다.

 

간단하게 단어부터 다시 확인해 보자.

‘민주주의’를 영한사전에서 찾으면 ‘democracy’가 나온다. 반대의 순서로 찾아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점은 원어가 사상의 한 갈래를 뜻하는 ~ism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democratism이란 단어는 멀쩡하게 따로 존재한다. 정치 제도나 사상과 관련한 다른 단어와 비교하면 더 명확해진다.

 

republic은 ‘공화국, 공화제’이지 ‘공화주의’와 다르다. monarchy도 ‘군주제’지 ‘군주주의’로 번역하지 않는다. 이렇게 연관을 지으면 democracy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제’여야 한다. 통치 형식을 구분하는 제도의 한 종류로 말이다. 이런 간단한 수정으로 그동안 간과했던 고민 지점이 잇따라 나타난다.

 

언어는 사용자가 속한 사회의 문화와 관점을 포함한다. 그래서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의 본질을 바꿀 수도 있다.

 

앞서 ‘민주노총’을 ‘민노총’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는, 명확하게 이것을 아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제’ 대신 ‘민주주의’란 단어가 일반형으로 사용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란 의심이 생긴다.

 

하나의 정치 제도가 사상의 한 부류 오해되면 무슨 문제가 일어날까? 바로 객관적이고 완결할 수 있는 과제의 상실, 결과 없는 노력의 반복으로 인한 사회집단이 가진 동력의 낭비, 마지막으로 제도 자체의 그릇된 사용이다.

 

제도는 목적한 기능의 수행을 위한 하부 구조와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 당연히 충족 여부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객관화할 수 있는 기준이 드러난다. 이와 달리 사상은 개념의 집합이다. 논리에 의존하여 주관적인 해석과 주장이 먼저 제시되고, 객관성을 보완할 근거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미래의 일로 넘겨지기 일쑤다. 이런 차이를 이용하여 소수 계급인 자본가가 다수 계급인 노동자를 ‘민주적’으로 지배할 길이 열린다.

 

한국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선 ‘민주제’를 앞에 두고 ‘민주주의’라 읽는 버릇부터 바꿔보자. 민주제는 집단 의사결정의 성원 범위와 결정 방식을 다투는 것부터 시작된다. 자본을 상대하는 단체교섭과 정부를 상대하는 노정교섭은 노동자를 민주제 정치의 주체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민주노조는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운영을 통해 노동자가 민주제를 습득하고, 나아가 전 사회의 운영을 자본가에게서 넘겨받을 수 있도록 역량을 기르는 훈련소이다.

 

출처 :  노동자신문 18호

 

[울산함성 무료구독 신청]  https://t.me/+ji13hLs-vL83ZTBl

 

삭제하시겠습니까?
취소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취소

오피니언

페트로달러 위기와 북한의 브릭스가입

이해영 (한신대 교수)

2024.06.21

오피니언

민주노조가 지향하는 '민주'의 성격

이상배 (공공운수노조 경기본부 조직국장)

2024.06.19

오피니언

윤석열 정권 퇴진투쟁, '생활임금' 확보 투쟁으로 형성하자

노동자신문 편집국

2024.06.18

오피니언

한반도는 지진 안전 안전지대 아니다, 즉각 핵발전을 중단할 때

AWC한국위원회

2024.06.12

오피니언

전쟁과 생활고에 시달린 유럽 유권자, 탈미 강조하는 극우 선택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2024.06.12

한찬욱의 총반격

[기고] 삐라 살포와 대북 방송의 배후 미국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2024.06.11

오피니언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맑스주의자, 레닌주의자에 대해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2024.06.03

오피니언

물신성을 벗어나야 연금 문제를 근본 해결할 수 있다

ㅡ “연금고갈론”이라는 사기성 파국론으로 강도들에게 노후 삶이 강탈당하고 있다 (2)

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4.05.31

“연금고갈론”이라는 사기성 파국론으로 강도들에게 노후 삶이 강탈당하고 있다 (1)

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4.05.30

오피니언

제도권 중심의 탄핵·개헌 정국 예상, '반윤석열 퇴진 투쟁'에 적극 결합해야

ㅡ 정권퇴진 투쟁의 두 가지 당면 목표에 대해 (2)

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4.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