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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정치 방침  토론을 위해 소집된  민주노총 제76차 임시대의원대회  모습 ⓒ 노동과 세계

 

1.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한 총선방침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의 혼재로 인해 논의에 혼란을 초래하고, 자칫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의 심각한 분열을 초래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1) 이번 논의의 출발점은 원래 총선방침, 즉 2024년 선거를 위한 방침 결정이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출한 문건 명칭 역시 “2024년 민주노총 총선방침(안)”이다. 현재의 한국 정당제도와 선거법 하에서 소수파이면서 여러 개로 분열된 진보정당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잠재적 지지표를 최대한 득표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리고 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하에서 이들 표를 가장 많은 의석으로 전환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총선방침은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당’ 건설이라는 정치방침(전략문제)으로 의제가 바뀌었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안)을 보노라면 제시된 후보단일화, 단일 진보정당, 비례 위성 연합정당,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 4개 방안 모두 득표에 있어 유불리를 주요하게 따진다. 하지만 이들 방안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민주노총 지도부는 간과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함정’이 있다. 특히 단순 후보단일화 방안을 넘어서 ‘노동 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과 같은 ‘당 건설’ 논의가 거론되면 이는 전략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전략에 복무하는 것이 전술인데, 여기선 거꾸로 전술을 위해 전략이 복무하는 셈으로 본말이 전도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총선방침을 결정하는데 있어 갖가지 혼란을 초래하게 만든 주범이다.

 

2)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 방안은 기존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건드려 진보진영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오히려 선거에 역작용을 가져온다.


이론상으로 ‘진보대연합정당’을 만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출마 과정에서 진보진영은 자신의 가능 최대치 표를 얻을 수 있고, 또 그 표를 효과적으로 의석수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현실성이 있는지는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내부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그럴 경우 우리는 이 방안이 거의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민주노동당과 통진당 해산 이후 진보정치세력들은 사상적·이론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였으며, 각 정당의 이해관계 또한 현저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정의당의 경우 사실상 사민주의를 표방하면서 시민 정당의 길을 가고 있기에 ‘노동중심성’에 별반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녹색당 역시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정당이므로 ‘노동중심성’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당의 경우 비록 ‘노동중심성’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 근본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이 있기에 총선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약화시켜가면서까지 ‘진보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당의 정체성 말고도 현실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정의당의 경우 정치적 지명도에서 자신이 진보당보다 앞선다고 판단한다. 심상정과 같은 대중적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있는데, 굳이 자신에게 불리한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진보대연합정당에 참여해야 할지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당과 녹색당 역시 비록 당세는 정의당이나 진보당만 못하지만, 일단 진보대연합정당에 참여하게 되면 ‘비례대표 명단’에 최소한 1명씩은 당선권에 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진보진영  전체 몫이 얼마 되지 않은 선상에서, 과연 이들까지 배려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3) 진보정당 간의 분열은 필연적으로 민주노총의 분열을 촉진한다. 민주노총 내에 여러 분파가 존재하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민주노총 중앙단위뿐만 아니라 산별과 지역 그리고 단위 사업장 차원까지 널리 뿌리를 뻗치고 있다. 


이 때문에 만약 민주노총이 특정 정파에 유리한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을 추진할 경우, 이는 자칫 민주노총 전체의 분열을 가속화 할 위험성이 있다. 또 진보세력 외에도 민주노총 내부에 이미 상당수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총선방침과 ‘제2 정치세력화’는 서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지금의 혼란은 총선방침과 전략적 정치방침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총선에서 조합원 표가 분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은 분명 필요하며 이를 위한 방안이 논의되는 것은 유의미하다. 노동진영과 진보진영이 ‘의회활동’을 전개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일정 수의 의석을 확보하고 교두보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2 정치세력화’의 핵심인 양 호도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그를 위해 총선 이후에도 존속할 당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부적절하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상당 정도 전략당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당은 애초 선거를 위해 만들어진 당이기에 ‘의회주의정당’의 성격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의회주의 노선’을 걷다가 실패한 전철을 다시 밟는 셈이 다. 민주노동당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의회주의노선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실패를 딛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먼저 민주노동당의 실패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야 하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찾아져야 한다. 이런 논의는 ‘선거방침’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이기에, ‘제2 정치세력화’ 논의는 선거방침과 구분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3. ‘제2 정치세력화’ 논의를 병행하자!

 

2024년 총선방침은 현 주체적 조건을 고려할 경우 아쉽지만 진보정치 세력 간 ‘후보단일화’ 차원을 크게 넘어설 수 없다. 그 목적 역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최소한의 의회활동 기반의 구축과 함께, 지금 시기엔 특별히 윤석열 파쇼정권의 합법적 등장을 저지하는데 맞추어져야 한다. 


사실 이번 총선 준비에 있어 관건은 다름 아닌 반윤석열 투쟁의 조직을 통해서 현장 ‘동력’을 끌어내는 데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민주노총이 지금 반윤석열 투쟁을 조직하고 있는 강도는 현장 동력을 끌어내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력을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정당’ 건설이라는 정치방침을 통해서 마련하려고 한다면, 이는 투쟁을 회피한다는 인상만을 줄 뿐 애초 합당치가 않다.

 
‘제2 정치세력화’와 관련한 본격 논의가  더 이상 미루어져서는 안 된다. ‘후보단일화’ 차원의 낮은 연대·연합 수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지금부터 ‘제2 정치세력화’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노동 중심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져야 하며, 과거 민주노동당의 성과와 한계가 정확히 짚어져야 한다.  또 지금 시기 당의 중심 임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당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출한 현장에서 10만 명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추진위원 모집’ 은 총선방침이 아니라 이 같은 ‘제2 정치세력화’ 논의 차원에서 다루어질 때라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2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가면서 정말 공감되는 논평이라 느끼게 됩니다.

 제2 정치세력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노동중심의 대안을  찾아 성공하길 바래 봅니다.

 

2023.04.26 08:17:06 답글
붉은여우

좋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2023.04.26 14:01:59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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