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리종위 (李宗禹)/김정호 (편집위원) 번역
등록일 :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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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30회를 끝으로 <요셉 스탈린> 연재를 모두 마친다. 본 연재는 첫 회에서 소개한 대로 중국의 저자 다이롱빈(戴隆斌)의 저서 <스탈린 전기>를 기본 텍스트로 하여 그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마지막 회에선 원래 이 책의 서문으로 실린 내용을 번역 소개한다. 독자들은 이 서문을 통해 원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ㅡ 편집자 주

 


이것은 스탈린의 각 시기 혁명 활동을 전방위적으로 묘사한 엄격하면서도 통속적인 전기이다. 그러나 이 전기는 스탈린 개인숭배 시기에 쓴 <스탈린 전기 약술>이나  <소련공산당 당사 간명 교본> 등의 저작과는 다르다. 물론 스탈린의 역사적 공적을 전면 부정하는 저술과도 다르다.  저자는 최신 자료와 관점을 사용하여 스탈린의 역사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려는 내용을 제거하려 애썼다.  스탈린의 일생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사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주고자 했다.


이는 쉽지는 않지만 유익한 일이다. 실사구시에 입각하여 스탈린의 생애와 그 활동을 소개하는 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 스탈린과 그가 개척한 소련 사회주의 모델(스탈린 모델)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계산한다면, 이 문제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간의 충돌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지속된 논쟁 주제였다.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는 스탈린과 스탈린 모델에 대한 심각한 충격과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이 비판의 물결은 대부분 스탈린의 개인적 품성과 법과 제도를 파괴하는 문제만을 다루었으며, 스탈린 모델의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건드리지 않았기에 그것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후 소련에서 실시한  '전면적 개혁'은,  스탈린 모델을 철저히 부정하고 다른 어떤 사회주의 모델로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개혁은 오히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계의 완전한 해체를 초래했다.


소련과 동구의 격변, 소련의 붕괴를 초래한 원인은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교훈 또한 여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연구의 착안점을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데 두어야 한다. 오직 이렇게 할 때라야 진정으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총괄해 낼 수 있으며, 세계 첫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의 실패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중국)의 많은 연구자 사이에는 사회주의 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반드시 과학적인 태도로 스탈린 시기에 창립된 소련 사회주의 모델을 연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즉 소련, 동유럽, 나아가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스탈린식 사회주의 모델의 역사, 그 이론과 실천을 반드시 연구하고 토론함으로써 스탈린 모델의 주요 특징과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국내외의 많은 학자가 수많은 글과 논문을 통해 스탈린 모델을 탐구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본인은 스탈린 모델이 적어도 다음 다섯 가지 측면에서 특징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1) 소유제 측면에서 전반적인 국유화와 집단화 추진이다. 국유화와 집단화는 스탈린 모델의 경제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국유화는 실질적으로 일종의 국가독점제도이다. 즉 공업, 은행, 운수업, 상업 등 모든 분야에서 기업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또한 경제의 명맥(命脈)을 가리지 않고 모두 국가가 독점하고 국가 소유로 귀속시켰다. 농업 방면에서는 폭풍과 같이 집단화를 강행하여 자작농을 소멸시켰다. <소련공산당 당사 간명 교육과정>에서 말한 바와 같이, 1936년에 이르러 소련은 사적 영역이 완전히 소멸하고 사회주의 체제가 이미 국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집단농장과 국영농장들이 세워졌다. 모든 상품 유통이 국가와 협동조합 수중에 집중되었으며, 결론적으로 생산수단 공유제가 국민경제의 각 부문에서 확립되었다. 


이점이 스탈린이 소련에서 사회주의 경제기초를 건설했다고 선포한 주요한 근거이다. 스탈린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장기적으로 두 가지 소유 형식, 즉 국가 소유제와 집체 소유제가 병존할 수는 없다. 집체 소유제를 국영농장으로 바꾸고, 전 사회를 단일한 전인민적 소유제로 바꾸어야만 한다. 이렇게 하면 공산주의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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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제시스템 측면에서는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의사결정 기제, 경제관리 기제와 엄격한 계획경제를 실시함으로써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완전히 배척하였다. 국가가 직접 모든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생산을 직접 조직·분배하였으며, 모든 크고 작은 경제 정책 결정을 국가가 통일적으로 수행하였다.  국가가 자금을 통일적으로 조달하고, 생산자료 역시 국가가 통일적으로 조달하였다. 가격, 서비스 비용의 수취, 임금을 모두 국가가 통일적으로 제정하였으며, 심지어는 가정과 개인의 소비조차도 실질적으로 국가의 통일적 계획에 포함시켰다. 


중앙의 계획은 강제성과 명령적 성격을 지녔으며, “계획은 바로 법률”이었다. 따라서 각 지역,  부문,  업종과 모든 기업은 반드시 국가의 통일적인 계획을 집행해야만 했다. 자금 원천, 재료 공급, 생산 수량과 품종, 판매 등에 걸쳐서 국가가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국가는 통일적으로 편성하고, 규정된 지표를 부문 또는 지역에 따라 층층이 하달했다. 각 경영 단위의 임무는 국가가 규정한 이들 지표를 충실히 완수하는 것이다. 각 생산 단위는 상급에서 하달한 임무에 대해서만 책임을 졌으며, 자신이 생산한 제품이 시장 수요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그들과는 무관했다.


(3) 국가의 강제적인 행정 명령 심지어는 폭력적 수단은 전 사회의 각종 경제기구, 생산 및 관리부서가 확실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주요한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은 소련 사회의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경제체제에 조응하여 탄생하였는데,  이는 논리적으로도 부합하였다. 


(4) 사회주의로의 ‘직접적인 이행’ 노선과 방식을 채택하였다. 1920년대 말부터 스탈린은 신경제 정책(NEP)의 실시를 중단하고 전시공산주의로 복귀하였으며, 이 노선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 같은 ‘직접적인 이행’ 노선은  또한 중공업을 최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 급속한 공업화 계획을 신속하게 실현토록 하고, 농촌을 공업화를 위한 자금을 제공하는 원천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농민을 폭력적으로 착취하는 정책 및 절대적 전제(專制)제도가 생겨났다. 


(5) 소련의 정치제도의 고도한 집중은 위의 경제제도의 고도한 집중과 서로 상응한다. 권력은 당의 지도기관(중앙위원회)으로 고도로 집중되었으며, 또 당 지도기관의 권력은 당의 소수 영수집단(정치국)에 고도로 집중되었고, 소수 영수집단의 권력은 다시 스탈린 개인 수중으로 고도로 집중되었다. 


이것은 스탈린 정치제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같은 체제하에서는 당이 정치를 대신하고, 당이 직접 국가 업무를 관리하는데 개입함으로써 소비에트와 국가기관은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상실하고 그 권력이 형식화되었다. 당의 최고지도부는 전체 당의 최고 정책 결정 기관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국가의 최고 결정기관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당내에 민주주의가 결여되고, 사회적으로도 민주주의가 결핍하였다. 특히 당 내부와 사회 전체가 당정 핵심 인물에 대한 효과적인 감독 기제가 부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 지도자는 무한한 권력을 소유하고 당 위에 군림하게 되었으며, 점차 당내에서 개인 집권을 이룩하게 되었다. 


사상, 문화 분야에서도 엄격한 집중과 통제를 실시하여 종종 학술 문제, 학파 문제 혹은 정치문제를 혼동함으로써 '정치 꼬리표'를 함부로 붙였다. 정치적 대비판 운동을 수시로 전개하여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침묵하게" 만들었으며, 여론을 인위적으로 고도로 일치하게 하는 국면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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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모델의 이러한 특징은 의심할 여지없이 스탈린 자신의 이론적인 구상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이론적 구상은 다음 몇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


ㅡ 첫째, ‘사회주의 속성론’ 


스탈린의 견해에 따르면 경제와 문화가 낙후되고 소농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에서도 사회주의는 빠르게 건설될 수 있다. 그는 몇 가지 '제도'를 만들기만 하면 사회주의도 기본적으로 실현될 것으로 생각했다.  예컨대 경제 제도적 측면에서는, 자본가와 지주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재산으로 만들고 국가 소유제를 확립하면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 또한 달성된다는 것이다. 정치제도 측면에서 부르주아 정권을 전복하고, 자본가계급의 국가권력을 파괴하여 소비에트에게 권력을 넘겨주면 사회주의의 고도한 민주주의 또한 실현된다고 보았다. 


정권 건설의 측면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를 끊임없이 강화하여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전 시기에 걸쳐 그것이 존재하도록 하면 사회주의는 결국 패배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분배제도 측면에서는,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원칙을 선언하면, "각자는 능력을 다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가 기본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이 보기에 상술한 기준들을 실천하면 사회주의는 건설되게 된다. 스탈린은 그렇게 생각했으며 또 그렇게 행동했다.  실제로 1936년에 이르러 그는 소련이 이미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했다고 선포했다. 1939년에는 당의 임무를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완성하고,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1952년에 스탈린은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 임무가 이미 완수되었다"고 선포하여, 소련이 이미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들어섰다고 보았다.


ㅡ 둘째, '빈 땅에서 새로 경제형식을 창조한다는 이론'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  "부르주아혁명은 보통 이미 만들어진 자본주의 경제 형식이 갖추어졌을 때 발생하기 시작하며, 이 같은 형식은 혁명이 공개화하기 이전에 이미 봉건사회 내부에서 성장하고 성숙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기성 사회주의 경제 형태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거나 거의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다."(<스탈린전집>제8권, 21쪽)  "국내에는 어떠한 기성 사회주의적 경제의 맹아가 없었기 때문에, 소비에트 정권은 반드시 소위 ’빈 땅‘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 형식을 창조해야만 한다."(<스탈린선집>하권, 542~543쪽) 


또 그는 사회주의 경제형식을 창조하는 것을 맑스주의가 말한 생산관계는 반드시 생산력의 성격에 부합해야 한다는 경제 법칙에 근거한 행동으로 간주했다. 스탈린의 이 같은 견해에 따르면 '공터'에서 행정 수단과 법률적 수단을 이용하여 사회주의 형식을 창조하고, 생산관계를 변화시키고 소유제 방면에서 전반적인 공유화를 실현하기만 하면, 이는 곧 사회주의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며 생산력 또한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창조된 사회주의 경제 형식이 당시의 생산력 발전 수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더 이상 깊이 고려되지 않았다.


ㅡ 셋째, ‘계급투쟁 심화론’ 


이는 스탈린이 1920년대 말부터 점진적으로 형성한 이론이다. 스탈린은 사회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계급투쟁 또한 점점 더 첨예해질 것이고, 혹은 사회주의가 성취를 이룩할수록 적대적 계급의 반항이 더욱 첨예한 형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이론에 입각해 스탈린은 대량의 인민 내부모순과 당내 모순을 적대적인 모순으로 간주하고 여기저기서 ‘인민의 적’을 잡아들였으며,  ‘대숙청’ 운동을 발동시켜 사람들이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대량의 억울한 조작 사건을 만들어 냈다. 철학, 사회과학, 문학예술 심지어는 자연과학 분야에서까지 잇달아 ‘대비판’ 운동을 벌여, 터무니없이 정치적 모자를 씌워 난폭한 방식으로 타격하였다. 이런 것들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을 남겨 사회주의에 대한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ㅡ 넷째, ‘행정 수단 만능론’


스탈린의 견해에 따르면, 행정 수단을 통해 국가와 사회생활의 여러 방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라 그는 당·정·군의 대권을 자신의 손에 단단히 쥐고, 자기 수중에 있는 무한 권력에 의지해 모든 것을 지휘하고 결정하였다.


결론적으로, 스탈린의 사회주의 모델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맑스와 엥겔스가 이론적으로 구상한 사회주의 모델과 다를 뿐만 아니라, 레닌이 말년에 설계하고 초보적으로 실천했던 사회주의 모델과도 달랐다. 스탈린 모델은 독특한 자기 특색을 지닌 고도의 중앙집권적 ‘국가 사회주의 모델’이었다.  이 스탈린 모델은 경제모델, 정치모델과 이론모델로 구성된 삼위일체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서로 연계되고 제약하는 유기적인 전체를 구성한다. 그중 경제모델은 경제구조, 경제 제도, 경제 운행 메커니즘을 포괄한다. 그리고 정치 모델은 당의 지도체제, 정치구조와 정치권력의 운영 메커니즘을 포괄한다. 이론 모델은 경제모델과 정치 모델의 이론적 반영이며 지도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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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시기  열병식  장면


끝으로, 이 같은 스탈린 모델은 특수한 역사적 조건하에서 생겨나고 형성되었다. 이 모델은 소련의 공업화의 실현, 파시즘에 맞선 전쟁 준비, 과학기술 발전 등에 있어 거대한 역사적 공적을 세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게 운영된 역사를 볼 때, 이 모델은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모델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의 전체 운영 기제와 제도는 활력과 생기가 부족하여 자기 조절을 할 수 없었으며, 그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의 주인인 인민의 적극성이 끊임없이 향상하는 것을 제약하였으며, 그에 따라 사회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하였다. 따라서 그것의 실패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이롱빈 동지의 <스탈린 전기>는 인용한 자료들이 반복적으로 선별되어서 진실성이 있고 신뢰할만 하다. 통속적인 전기이면서도 이 글에는 스탈린 모델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저자의 이성적 사고가  행간마다 녹아 있다. 실제로 이는 저자가  오랜 기간 이 문제에 대한 자료와 사색을 축적한 성과이기도 하다. 물론 일반인이 저작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분량을 들여 스탈린 모델에 대한 상세한 이론적 묘사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독자들은 스탈린 일생의 혁명 활동, 스탈린의 가정과 그 성격에 대한 저자의 묘사로부터 스탈린 개인, 스탈린 모델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비교적 정확하고 객관적인 인식과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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