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허영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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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산 전경 .  사진 출처 :   유주영 의  인제  한석산  010 


금융투기자본 감시 운동을 함께 하는 회원들과 한석산(寒石山) 등산에 나섰다. 오전 일찍 청량리역에서 무궁화로 원주역에 도착한 뒤 치악산 자락에 살고 있는 회원과 합류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홍천을 거쳐 미시령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를 따라 북상한다. 내린천이 흐르는 인제읍내에 들러 먹을거리를 준비한 뒤 2차선 도로로 접어들고 협곡을 따라 덕적리(도로명 한석산로)에 위치한 다른 회원의 고향집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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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었다가 자동차로 한석산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주차한 뒤 등산을 시작한다. 산길은 벌써 낙엽이 쌓이고 있다. 조금 지나자마자 거대한 벌목현장을 마주한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베어져 쌓여있거나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큰 소나무는 궁궐의 기둥으로 쓰일만한 재목이다. 왜 이렇게 벌목이라는 이름으로 남벌할까? 무슨 수종개량을  한다는 것일까? 국가의 산림정책이 사뭇 궁금해진다. 

 

산림청의 국유임도안내문에는 “본 임도는 산림자원 육성 및 산림보호 등 국유림의 경영 및 관리를 위하여 시설한 산림기반시설”이라 설명하고 있는데 벌목으로 황폐화된 모습이나 임도로 인해 속살이 산을 보니 안내문의 취지와는 달라 보인다. 임도가 무분별하게 벌목한 나무를 실어나르기 위한 도로가 아닌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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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르자 삼거리 표지판에는 우리가 올라온 길이 장승고개, 오른쪽으로 백두대간트레일 홍천(광원리) 61km, 귀둔리(귀둔농협) 14.5km, 양구(후리) 52km, 덕적리(영광교) 5km, 계속 왼쪽을 따라 한석산으로 오르는 길이라고 안내한다.  

 

날씨가 우중충하게 흐리다. 소나기 예보가 있어 우의를 준비했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다. 임도를 따라 구불구불 올라간다. 높이를 더해 갈수록 멀리 남설악의 산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대승령, 가리봉, 주걱봉, 점봉산 등 얼마 전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서쪽으로 보이던 산들이다. 한석산에서는 동쪽에 위치하는 산이다. 한석산은 설악산 국립공원에는 속하지 않는 산이다. 남쪽 더 멀리로 오대산 줄기가 펼쳐진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새집처럼 생긴 나무통 위에는 ‘인제 천리길’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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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트레일’을 설명하는 표지판에는 “산림청은 다양한 산림문화 향유와 산림의 보전적 활용을 도모하고 국가숲길과 지역숲길을 연계한 전국 숲길 네트워크를 구상하였고 국가 트레킹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5대 트레일(백두대간, DMZ, 낙동정맥, 서부종단, 남부횡단 트레일)을 구축, 관리하기 위한 기존틀을 마련하고 한반도 산림생태 벨트를 구축하여 무분별한 산행으로부터 중요 산림지역의 산림생태계를 보호하는 한편 주요 등산로에 집중되는 이용 압력분산과 함께 타부처 및 지자체의 걷는 길을 포괄하고 지역숲길 조성 및 운영, 관리방안에 대한 방향 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시 설명이 이어진다. “백두대간 트레일은 백두대간을 따라 동•서쪽 트레일로 나누어 총 2,165km를 조성할 예정이며 그 첫 번째로 양구군 해인면 후리에서 인제군 일대를 경유, 홍천군 내면 불발령까지 10개 구간 154km를 조성하였으며, 인제는 6개 구간 113km를 조성하여 2021년 5월 국가숲길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1구간(먼멧제) 및 6구간(아침가리)은 예약탐방제 구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불구불 임도의 끝이 정상이다. 2001년 5월 10일 한석산 참전 전우회가 조성한 ‘한석산 점령 제5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한석산은 1945년 남북분단과 함께 북쪽 지역에 위치했으나 1953년 휴전과 함께 남쪽 지역이 됐다. 1951년 한석산에서 남북군대가 치열하게 벌인 매봉•한석산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추운(寒) 돌(石)산에서 남북의 병사들이 죽고 다쳤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는 무수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의미 없는 전쟁터에서 젊은이들이, 어린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한석산 정상으로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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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카카오그룹의 탈세를 고발할 당시 사용했던 피켓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다. 준비해간 간식을 나눠 먹고 다시 오던 길로 하산한다. 다시 먼 산들을 바라본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멋진 광경을 조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과 함께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세차게 소나기가 쏟아진다. 낙엽과 흙내음이 물씬 얼굴을 스친다. 우의를 입고 걷는다. 등산화부터 비에 젖기 시작한다. 조금 지나면서 비는 오락가락한다. 

 

숙소에 도착한다. 산동네라 어둠이 더 빨리 찾아온다. 한 잔 막걸리를 마시며 앞산을 바라본다. 굽이굽이 산줄기를 따라 구름이 피어오른다. 일행들은 한결같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한석산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줄기와 이어지는 산맥의 여운이 진하게 남는 밤이다. 

 

(498회 산행, 한석산, 2023.1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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