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정호 (편집위원)
등록일 :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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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에 1920년대 중반 레닌 사후  소련의 권력투쟁 관련한  장면이 나온다.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를 비롯한 이들은 곧 '신반대파'로 불리어졌다. 이것은 ‘트로츠키 반대파’와 구분하기 위해서인데,  또 그들의 주요 지지자들이 레닌그라드에 있었기에 '레닌그라드 반대파'라고도 불렸다.


솔직히 말해 레닌그라드는 완전히 지노비예프의 영역이었다. 그는 1917년부터 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의 원래 이름ㅡ주) 소비에트 의장을 역임했다.  이 때문에 어느 부서에나 지노비예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1925년 늦여름과 초가을에 지노비예프의 암시에 따라 그의 추종자 중 한 명인 자루츠키는 현행 제도는 '국가자본주의'이며 당은 '테르미도르식 탈바꿈'*을 하고 있다고 생생하게 묘사한 팜플렛을 썼다.

 

*테르미도르 쿠테타ㅡ 프랑스 대혁명시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급진파 쟈코뱅당을 몰락시킨 온건파의 쿠데타 .

 

자루츠키는 레닌그라드 당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이기도 했다. 당 중앙은 이 사실을 알고 자루츠키의 당직 해임을 요구했는데, 레닌그라드 주 위원회는 19 대 16으로 거부했다. 스탈린은 코마로프와 로포프를 레닌그라드 당 조직의 지도자로 앉히려 했다. 하지만 레닌그라드 당 조직에 의해 거절당해  14차 당대회에 참석한 레닌그라드 대표단에 이 두 사람은 뽑히지 못했다. 대회에 참석한 레닌그라드 대표단은 지노비예프 지지자 일색이었다.


레닌그라드 당 조직의 행동에 대해 모스크바 당 조직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11월에 열린 대표 회의에서 발표한 레닌그라드 당 조직에 대한 성명에서, 지노비예프 지지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열거하며 그들의 행동을 '소외, 분리주의, 히스테리적인 부르짖음, 맹목적인 승리에 대한 의심'이라고 하나하나 반박했다. 레닌그라드가 우호적 토대 위에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모스크바와 화해하려 하였지만, 모스크바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서 양측은 각자의 신문에서 설전을 벌이며 서로를 비난했다.


14차 당 대회를 앞두고 12월 15일 스탈린, 칼리닌, 몰로토프, 제르진스키 등은 연합하여 신반대파에 타협을 제안하는 편지를 썼다.


아래에 서명한 중앙위원은 레닌그라드가 조직한 여러 지도적 동지들에 의한 당대회 준비작업이 당 중앙 노선에 역행하며, 레닌그라드에 있는 당 중앙 노선을 옹호하는 동지들에 반대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중앙은 응당 모든 반대당 노선과 당을 와해시키려는 경향에 대해 반격해야만 한다.


그러나 당 통합을 위해, 당내 평화를 위하고 러시아 공산당의 최우수 조직 중 하나인 레닌그라드 조직이 당 중앙을 이탈할 위험을 방지키 위해, 아래 서명한 중앙위원들은 당 대회에서 중앙위원회의 분명한 정치 노선을 확인하는 선에서 얼마간의 양보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1) 중앙위 총화보고 결의를 작성할 때 모스크바 대표자회의 결의를 기초로 하며, 단 개별적 조문상의 표현은 약간 완화할 수 있다.
(2) 당의 통일을 위해 우리는 신문이나 공보에 레닌그라드 대표회의의 서한과 모스크바위원회의 회답을 발표하는 것은 모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3) 정치국 위원은......당 대회에서 서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4) 당대회 발언시 사르키스(당내 계급성분을 조정하는 문제)와 사파로프(국가자본주의 문제)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5) 코마로프, 로포프, 모스크빈 문제에 있어서의 오류는 조직적 방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6) 레닌그라드 동지를 받아들여 서기처에 참가할 데에 관한 당 중앙의 결의는 당 대회가 폐회되는 즉시 집행한다.
(7) 중앙기관지와의 연계를 강화키 위해, 레닌그라드 당 조직에서 한 명의 사업 일군을 받아들여 중앙기관지 편집위원회에 참가시킨다.
(8) <레닌그라드 프라우다> 주필 (그라드네프) 의 능력이 취약한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반드시 중앙위의 동의 하에 더욱 유능한 동지로 그를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탈린 전집 제7권, 325-326쪽)

 

스탈린 등의 제안에 대해 지노비예프는 '합의'와 '타협'이 아닌 전면적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분명하게 거부했다. '신반대파'는 자신들이 저항해도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당 대회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제14차 당 대회가 1925년 12월 18~31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13차 당 대회는 일찍이 이번 대회를 레닌그라드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었는데, 레닌그라드 당조직이 이처럼 당 중앙의 말을 듣지 않자 회의 장소를 모스크바로 바꾸었다. 당 대회는 의결권이 있는 대표 665명, 발언권만 있는 대표 641명이 전체 109만명의 당원을 대표하여 참석했다.

 

소련 공산당(볼셰비키) 제14차 대회 연단에 있는 스탈린과 다른 사람들(1925년 12월).jpg
소련 공산당 제14차  당 대회 연단에 있는 스탈린과   대회 주석단(1925년 12월)

 

과거 두 차례의 당 대회의 정치보고서를 모두 지노비예프가 작성했는데, 이번 총회에서는 그 자격을 상실했다. 그 대신 스탈린이 매우 긴 정치 보고를 했다. 그는 보고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해 반복해 언급했지만, '신반대파'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스탈린은 확실히 당내에 두 가지 경향이 있음을 인정했다. 하나는 부농에 대한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부농의 위험을 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가장 큰 위험은 전자가 아닌 후자에서 오는 만큼, "제2의 경향에 반대하기 위해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업과 농업에 대해서 언급할 때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영 공업은 사회주의 구성 요소이며, 그 회복과 발전은 사회주의 요소가 자본주의 요소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따라서 지금은 "어떻게든 우리의 국영 대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가능한  빨리 국가 공업화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농촌에서 당이 직면한 기본임무는 농업 발전을 가속화하고 중농과의 동맹을 보장함으로써, 러시아를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 하였다. (위의 책, 245-291쪽)

 

레닌그라드 대표단은 스탈린의 정치 보고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지노비예프를 부보고자로 추천했다.지노비예프는 보고에서 레닌의 가르침을 어기고 신경제정책의 어두운 면을 승리로 간주했다며 부할린을 맹비난했다. 그는 반복해서 자신의 관점을 재천명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불시에 끼어드는 떠들썩한 목소리에 파묻혔다. 그의 연설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고, 단지 몇 명의 대표가 발언을 통해 그를 지지할 뿐이었다. 크루프스카야는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에 반대했다. 반대파 성원을 당의 지도직에서 축출하는 것에 반대하고, 부하린의"부자가 되라"는 구호를 계속해서 비판했다. 라셰비치는 지노비예프와 가미네프를 '제거'하는 것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지만, 그가 발언할 때 조소와 야유가 터져 거의 알아 듣기 어려웠다.

 

부하린도 지노비예프 측의 공격에 날카롭게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신반대파'의 비난을 여러 각도에서 반박하는 한편, 이념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라"는 자신의 구호를 철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스탈린은 '신반대파'가 부하린을 맹공격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 비록 그도 부하린의 "부자가 되라"는 구호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때에는 그에게 부하린이 필요했다. 그는 지노비예프, 카메네프가 10월 혁명 시기에 저지른 실수에 비한다면 "부하린의 실수는 심지어는 주목할 가치도 없다......부하린은 다만 그다지 크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라고 옹호했다. 그는 '신반대파'에게 "왜 계속해서 부하린을 무차별적으로 공격 하는가?"고 물었다. 도대체 부하린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신들은 부하린의 피를 원하는가? 우리는 그의 피를 당신들에게 결코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의 책 321쪽)

 

1920년대 중반 부하린.jpg
1920년대 중반의 부하린

 

카메네프는 대담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대회 발언은 특히 사람들의 귀에 거슬렸다.

 

우리는 '지도자'론을 창설하는 것에 반대하며, 우리는 '지도자'를 만드는 것을 반대한다. 우리는 중앙위원회 서기처에 반대한다. 서기처는 사실상 정치와 조직을 하나로 합쳐 정치기구 위에 군림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국이 사실상 전권을 가진 기구라고 주장하며, 서기처가 정치국에 복종하고 정치국이 내린 결의 중 일부 기술적 임무만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바로 나와 스탈린 동지 본인이 여러 차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바로 내가 레닌주의에 충성하는 일부 동지들과도 여러 차례 이 문제를 논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당 대회에서 다시 한번 말하고자 한다. 본인은 스탈린 동지가 볼셰비키사령부를 단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카메네프가 여기까지 말하자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아니야!" "헛소리야!" "그가 승부수를 내놨어!" 무대 아래에서는 함성이 끊이지 않았는데, 오직 레닌그라드 대표단만 박수를 보냈다. 카메네프의 이 말은 실제로 전혀 옳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정치국과 서기처의 권한 구분에 대해서 그가 한 말은 레닌 생전에 이 두 기구를 설립한 취지에 부합했다. 그런데 그의 의도는 스탈린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총서기직에서 해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왜냐하면 스탈린이 당 대표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분위기가 이미 확연했기 때문이다. 그가 연설을 끝냈을 때, 무대 아래에서 또 "스탈린을 원한다!" "스탈린을 원한다!!" "스탈린을 원한다!!!" "스탈린 동지에게 경의를 표한다!" 라는 외침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일어서서 스탈린을 위해 오랫동안 박수를 쳤다. 바로 이번 대표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치국원 및 다른 회의 대표자들 앞에서 스탈린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카메네프가 언급한 서기처와 정치국 간의 관계 및 권한 구분에 대해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서기처를 단순한 기술적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카메네프에게 정말 편리하다면, 아마도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은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함성: "맞다!') 기술적인 서기처가 조직국과 정치국을 위해  마땅히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국이 전권을 갖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정강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정치국은 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서기처와 조직국은 정치국에 복종하지 않나? 그렇다면 중앙위 전원회의는 어떤가? 우리 반대파는 왜 중앙위 전원회의를 언급하지 않는가? 그들은 정치국이 전원회의보다 더 전권을 가지도록 하려는 것 아닌가? (위의 책, 324쪽)

 

이것은 스탈린이 한 시간 넘게 중앙위원회 정치보고에 관한 결론에서 발언한 부분이다. 여기서 스탈린은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소콜리니코프, 라셰비치, 크루프스카야 등을 하나하나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는 라셰비치를 "음모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불렀으며, 소콜리니코프는 대화할 때 끝도 없이 "허튼소리"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카메네프는 "머리가 흐리멍텅한 사람", 지노비예프는 "히스테리", 크루프스카야의 관점은 "극히 터무니없다"라고 말했다.

 

함께 있는 스탈린(왼쪽)과 키로프(레닌그라드, 1926).jpg
스탈린과 키로프가 함께 있다 (레닌그라드, 1926)

 

스탈린은 당의 통일을 주장하며 '신반대파'를 제거(당적 박탈)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는 "정책을 제거하는 것은 우리와는 양립할 수 없다. 당은 통일을 원한다. 만약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가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당은 그들과 함께 이런 통일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당은 그들 없이도 이런 통일에 도달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박수와 분명한 찬동의 소리 속에서 집단지도 원칙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기 전체회의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지도자들이 실성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그들을 바로잡을 것이다.(함성: "맞다!" 웃음소리, 박수).


......만약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제지할 것이다. 이것이 필요하고, 필수적이다. 집단을 떠나 당을 지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레닌이 죽은 후 누가 이 점에 대해 환상을 갖느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박수) 누가 이 점에 대해 설득하려 한다면, 그것 역시 어리석은 짓이다.
집단적 사업, 집단적 영도, 소수가 다수에 복종하는 조건에서 당의 통일을 유지하고 중앙의 각 기관에서 통일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다. (위의 책, 327-328쪽)

 

이 같은 말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확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스탈린은 그것들을 잊어버렸다.


이번 대회에서 트로츠키는 겉으로는 초탈한 채 그들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고소해하며 산에 앉아 호랑이 싸움을 지켜보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 불에 기름을 부으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를 비난하고 싶었지만, 그의 동료들이 말렸다.

 

당 대회는 최종 559: 65로 중앙위원회 정치보고를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소련 사회주의 건설 승리를 위해서 분투하는 것이 당의 기본임무이며, 일국은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소련을 기계와 장비를 수입하는 국가에서 기계와 장비를 생산하는 국가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드시 중공업을 신속하게 발전시키고, 국가를 공업화하여 최신기술로 공장과 농업을 장비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주의 방식에 따라서 농민경제를 개조하는 사회주의 대기계 공업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결의문은 또한 "각종 레닌그라드 당 조직의 일부 지도자들과 중앙위원회 내 그들의 개별적 일파가 공개적인 방식으로 논쟁 하면서, 당 내적인 방식을 통해 의견차를 해소하고 당의 집단지도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면서도 당의 통일을 깨뜨리려는 어떠한 시도와도 단호히 투쟁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런 시도가 어디서 나왔든, 누가 계획했든 상관없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함축적이면서도 엄중한 경고였다.

 

* <소련공산당  당대회, 대표회의 및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의 집성> 제3분책, 74-84쪽 참조.


당 대회는  <레닌그라드 조직 전체 당원에게 고하는 글> 등 ’신반대파‘에 관한 몇 가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레닌그라드 당 조직이 당의 통일을 파괴하려는 시도와 투쟁을 조직할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사람을 파견하여 <레닌그라드 프라우다> 편집부를 개편하는 한편, 원래 카메네프가 대회에서 하기로 한 <경제건설에 있어서의 당면 문제> 에 관한 보고를 취소키로 결정했다. 12월 28일 밤, 중앙위원회는 즉각적인 조처를 취하여 <이즈베스티야> 편집장을 <레닌그라드 프라우다> 편집장에 임명했다.

 

대회는 또한 당명을 소련공산당(볼셰비키), 약칭 연공(联共)(볼셰비키) 으로 변경키로 결정했다.

 

대회의 마지막 순서인 중앙위원회 선거에서 반대파 성원들이 모두 당선되었다. 대회 직후 열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존 정치국 위원이었던 스탈린, 지노비예프, 부하린, 트로츠키, 리코프, 톰스키가 재선출되었다. 하지만 카메네프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강등되었으며 몰로토프, 보로실로프, 칼리닌이 새로운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됐다. 소콜리니코프는 정치국 후보위원 자격을 상실했다.

 

칼리닌, 국가 원수.jpg
칼리닌, 명목상의 국가 수반


'신반대파'는 비록 14차 당 대회에서 정치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여전히 레닌그라드 당 조직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회의가 폐막된 후 레닌그라드로 돌아온 지노비예프는 즉각 레닌그라드 공산주의청년단 성위원회 회의를 소집하고,  '14차 당대회' 결의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그들은 또 한 차례 시당 대표회의를 개최하여 중앙의 노선과 맞설 계획을 짰다.

 

조직적으로 ’신반대파‘를 철저히 분쇄키 위해 소련공산당 중앙은 레닌그라드성 당위원회를 개편키로 결정했다. 당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당 중앙은 레닌그라드에 보로실로프, 칼리닌, 안드레예프, 키로프, 톰스키, 페트로프스키, 몰로토프 등을 포함한 강력한 진용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1926년 1월 5일, 대표단이 레닌그라드에 진주했다. 그들은 지방 당 기구를 우회하여 지방 당과 정부 지도자를 제쳐둔채 풀뿌리 기층조직과 당원들에게 직접 중앙의 결의를 지지하도록  선전을 했다. 그 결과가 아주 좋았다.

 

1926년 2월 10-12일, 레닌그라드 당위원회는 비상 당 대표회의가 소집되었다. 부하린은 이 회의에서 주요보고를 하고 '신반대파'의 여러 관점을 반박하고, 신경제정책(NEP)의 본질에 대해 설명했다. 회의는 '14차 당 대회' 결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하였으며, 성 위원회를 개편키로 결정했다. 스탈린, 몰로토프, 칼리닌, 키로프 등이 성 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지노비예프는 레닌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직에서 해임되고 키로프를 레닌그라드 당서기 겸 북서부 국장으로 선출했다. 


카메네프도 노동국방위원회 주석직 및 인민위원회 부주석직에서 해임됐는데, 노동국방위원회 주석직은 리코프가 맡았다.   이렇게하여 ’신반대파‘는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모두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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