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지국가의 탄생> 서평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등록일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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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7일 도쿄 육상자위대의 아사카주둔지를 방문해 10식 전차에 탑승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2022년 3월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와 있던 마에다 겐타로 도쿄대 교수(법학정치학연구과)가 쓴 글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가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관정일본리뷰' 46호(2022년 3월 16일 자)에 쓴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라는 것을 한국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는 "일본 정치를 연구하는 일본 연구자 대부분은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라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라고 털어놨다. 일본을 '선진국'으로 보는 일본 학자들은 20개 정도 되는 선진국 중에서도 일본에 영향을 많이 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4개 국 정도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연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을 동아시아 국가로 인식하게 된 계기로, 남기정 서울대 교수(현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가 쓴 <기지국가의 탄생>(서울대출판문화원, 2016년)을 들었다. 그는 이 책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책은 한국전쟁 때 일본이 사실상 미국의 후방기지로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로부터 전후 일본 국가의 성격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중략> 이와 같이 한국전쟁을 전후 일본 정치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는 관점은 일본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중시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에 창설된 경찰예비대나 조선특수에 의한 호황 등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있어도, 전후 일본은 한국전쟁이 아닌 미국과의 전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다."    

 

이 글만 봐도 남 교수의 책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학자에도 동아시아를 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 준 기념비적인 연구 성과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기지국가의 탄생.png

이 책은, 남 교수가 2000년에 제출한 도쿄대 박사학위 논문(<한국전쟁과 일본 : 기지국가의 전쟁과 평화>)을 2016년까지 상황 변화까지 보면서 대폭 수정 보완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남 교수는 박사 과정을 하면서 '기지에 의해 지탱되는 평화'의 국가를 '평화국가'로 부를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기지국가 일본'의 개념과 틀을 잡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전후 일본이 한국전쟁을 기화로 '기지국가'로 탄생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은 서장과 본론(1~8장), 종장으로 돼 있다. 대략적인 내용을 빨리 파악하고 싶은 사람은 전체 내용을 요약한 종장만 읽어도 된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본론에 담겨 있다. 나는 본론 중에서도 제1장(한국전쟁 직전 동아시아 냉전 속의 일본 : 냉전의 전선), 제2장(한국전쟁의 발발과 일본 : 기지국가의 탄생), 제3장(특별수요의 발생 : '생산기지' 일본), 제4장(일본의 전쟁협력 : '기지국가의 전쟁과 외교)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한국전쟁이 동아시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이 군사, 경제 분야에서 어떻게 한국전쟁을 통해 기지국가로 변모해가는지가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제6장(재무장론의 등장 : '보통국가'론의 원류)와 제7장(무장투쟁의 실패 : '기지국가'에서의 혁명과 전쟁), 제8장('전후 평화주의' : '기지국가'의 평화론)에서는 한국전쟁 때 일본사회의 우파와 좌파, 지식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필 수 있다. 이 부분을 통해 급속히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배경과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남 교수는 한국전쟁은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보면 일본을 둘러싼 미소 간의  힘겨루기라는 의미가 있었다면서, 일본은 한국전쟁의 전 기간 동안 미국의 전쟁 수행을 위한 후방기지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일본은 미군을 돕기 위해 출격 기점으로서의 전진기지, 물자 및 병사 수송을 위한 중계기지, 수리 및 조달을 위한 보급기지, 훈련과 휴양을 위한 후방기지 역할을 수행하며 전 국토가 그대로 '전투기지' 역할을 도맡았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일본이 한국전쟁에 간접 참여한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소해부대, 노무자, 간호원 등이 직접 한국전쟁을 지원했는데 대략 8천명이 넘는 규모다. 이는 참전 규모로만 따지면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중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터키에 이은 6번째다.

이 책에는 2차대전에서 패한 뒤 어려운 상황에 있던 일본 경제가 이른바 '조선특수'로 호황을 맞고,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가 강화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직·간접 지원하는 것을 활용하는 모습도 잘 나와 있다.

남 교수는 일본이 기지국가라는 중간 단계를 벗어나 전쟁국가(정상국가)로 가려고 하는 움직임을 매우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그는 "일본이 '평화국가'로부터 '전쟁국가'로 전락하는 길목에서 '기지국가'로 멈추어 섰던 것이, 한국전쟁을 휴전으로 종식시키는 숨은 요인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군사적 '정상국가'화의 거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일본의 시도는 '휴전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종식시키고 전쟁 재발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일본이 추구하는 정상국가의 성공이 일본의 실패이자, 동아시아의 실패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출간됐지만, 지금의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문제를 미리 본 듯이 서술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일본의 전쟁국가화를 견제하고 막으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편승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남 교수의 우려가 더욱 빨리 현실화할 것 같아 불길하기만 하다.

올해 10월, 일본의 동경당출판이 같은 제목으로 이 책의 일어 번역본을 출판했다. 일본의 학자뿐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동아시아 속의 일본, 동아시아 속의 한일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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