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럭비공 정치인' 트럼프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그 일이 일어난 방>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등록일 :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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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있는  김정은과 트럼프.

 

2016년, 세계를 경악시킨 두 건의 대사건이 동시에 벌어졌다. 하나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한 브렉시트였고, 또 하나는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었다.​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미국이 그동안 국내에서 축적해온 가치를 송두리째 뒤엎었다. 누구는 그것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면 뭐든지 좋다'라는 뜻을 지닌 ABO(anything But Obama) 정책이라고 부르지만, 트럼프의 행태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단지 전임자 또는 민주당의 정책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미국 정치가 쌓아온 모든 것을 뒤집었다.

특히, 대외정책에서 그런 모습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멕시코와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나토 탈퇴를 위협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맹에는 미군 철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갑자기 몇 배의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적성국 목록에 올라 있는 북한과 이란에 대해서는 금세 전쟁이라고 할 듯 협박하다가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한두 차례 정상회담은 트럼프 집권 4년 중 일어난 외교에서도 가장 극적인 반전일 것이다.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부르고 북한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호언하더니 서로 연애편지를 방불케 하는 친서를 교환하고, 국교가 없는데도 싱가포르(2018년 6월)와 베트남(2019년 2월) 얼굴을 맞대고 협상을 했다. 비록 협상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지만.

2024년 11월에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덩달아 세계 각국도 그의 두 번째 등장이 어떤 영향을 몰고 올지를 두고 긴장을 하고 있다. 필시 한반도에도 지금과 전혀 다른 판이 전개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가치보다는 미국의 이익만 챙기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관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한반도를 억누르고 있는 냉전·대결 체제를  탈피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릴지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한다. 물론 트럼프의 성향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일 테지만 말이다.

<그 일이 일어난 방>(시사저널, 존 볼턴 지음, 박산호·김동규·  황선영 옮김, 2020년 9월)은 트럼프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대외정책을 다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책 중 하나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9월까지 트럼프 대통령 아래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는 메모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재임 중 백악관에서 일어난 일을 그림을 보듯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가 재임하는 기간 중에 트럼프-김정은의 두 차례 정상회담도 들어 있다. 존 볼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네오콘의 대표 인물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통 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서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어떤 때는 트럼프와 궁합이 맞다가도 어떤 때는 어긋났다. 트럼프는 사업가답게 이익(돈)을 언제나 가장 앞세우는 데 비해, 볼턴은 오로지 강경론을 내세우는 데서 발생하는 변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일치했다 불화했다 하는 둘 간의 이런 모습은 이 책 내내 관통하고 있는 통저음이다.

이 책은 1장(웨스트윙으로 가는 대장정)에서 15장(에필로그)까지로 구성돼 있다. 2장부터 14장까지는 볼턴이 재임하면서 다루거나 불거졌던 외교 쟁점을 중심으로 다뤘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외교안보 담당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가 꼭 읽어야 할 곳이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다룬 4장(싱가포르 슬링)과 제2차 정상회담과 제3차 만남을 다룬 11장(하노이와 판문점)이다. 

이 두 장은 김정은과 트럼프, 그리고 북미 외교 당국자 사이의 밀고 당기기를 중심으로 얘기가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나라 당국자들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였고,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외교 당국자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가 생생하게 나온다. 한마디로, 일본은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방해하기 위해 문재인 정권의 뒤를 따라다니며 철통 방어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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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아베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하면, 얼마 뒤에 아베 총리가 미국에 가 문 대통령과 전혀 다른 의견을 전달한다. 총리뿐 아니다.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은 시도 때도 없이 미국을 방문해 완전한 비핵화 없는 북미 협상은 안 된다는 점을 주입했다.

이런 일본 쪽의 의견을 접수한 핵심 통로가 바로 존 볼턴 보좌관이었다. <아베 신조 회고록>에 나오는 북미 정상회담 관련 대목과 함께 읽으며 아귀가 꼭 들어맞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김정은-트럼프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는 양쪽의 기본적인 입장 차이도 있지만 일본의 방해 탓도 컸다. 내가 볼 때는 아베-야치-볼턴으로 이어지는 3각 편대가 트럼프의 대북 유화론에 제동을 걸었고, 이것이 주효했다.

볼턴은 책 곳곳에서 아베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표현을 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문재인의 조현병 같은 생각'이라거나 미국의 이슈(비핵화)가 아니라 한국의 이슈(남북관계 개선)을 앞세우려 한다고 비웃거나 견제한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과 함께 3자가 만나려는 뜻도 철저하게 무시한다. 누가 한국의 지도자가 되든 한국 주도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에서 넘어야 할 산이 무엇인지 꼭 숙지해야 할 것이다. 

볼턴은  안보보좌관의 역할이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정들에 대해 대통령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적절한 관료체제에 의해 실행되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념적 잣대와 관계없이 경청할 만한 견해다.

하지만 그는 에필로그에서 "트럼프는 철학, 전략이나 외교정책, 방위에 관한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에 따라 국가 안보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가 15개월 만에 경질(또는 사표) 된 이유를 이렇게 집약했다. '정치적인 이유'에는 트럼프의 사적 이유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네오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볼턴의 생각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외교정책을 지켜본 사람의 분석이고, 그간 대체로 드러난 트럼프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재집권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트럼프와 트럼프 대외정책 이해하기의 필독서 목록에 올려놔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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