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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이 원하는 그림 위해 붓을 든 '길바닥 화가' 이하
민병래 ('황소와 나비' 대표)
등록일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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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화 앞에 선 이하작가 작품명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 이하제공

 

 

길바닥 예술가 이하는 지난 24일 오후 2시 용산경찰서로 들어갔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삼각지역 일대에 붙여 옥외광고물법과 경범죄처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경찰서를 들락날락한 게 벌써 스무 번이 넘었을 게다. 거쳐 간 경찰서가 종로경찰서, 서대문경찰서 멀리 부산진경찰서까지... 다 헤아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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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일 새벽2, 용산 대통령실 앞 도로에 가다

 

그날은 913. 새벽 2시에 이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인 장상일PD와 함께 북한산 밑 정릉의 집을 나섰다. 골목에는 어둠이 무거웠다. 택시를 탄 이하는 240분경 삼각지역 부근에서 내렸다.

 

용산 대통령실이 코앞에 있는 곳. 왕복 10차선 너른 도로에 차는 띄엄띄엄 지나가고 행인은 드물었다. 가슴에 안고 간 '벌거벗은 임금님' 그림 열 개를 중앙차로의 버스 정류장에 네 점, 삼각지역 12번 출구 엘리베이터 유리벽에 두 점, 마지막으로 삼각지파출소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 두 점을 붙였다.

 

이하는 추석 연휴를 마친 시민들이 새벽 출근길부터 이 그림을 보길 원했다. 펜을 매달아 낙서를 할 수 있게끔 했다. 윤석열정부에 대해 시민의 목소리가 담겨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한데 모아 전시회를 열 작정이었기에 다음 날 떼어가겠다고 안내문까지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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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을 붙이는 이하작가 삼각지역의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이다. ⓒ 이하제공

 

그후 새벽녘 삼각지역 일대는 부산스러웠다.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가 달려왔다. 경찰도 출동했다. 나중에는 과학수사대까지 나타나 법석을 부렸다. 지문을 떠 신원을 확인한 용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이하에게 1024일에 나오라고 통보를 했다. '거리의 예술가' 다큐 작업의 일환으로 이하의 부착 장면을 영상에 담았던 장상일PD도 나오라고 했다.

 

풍자와 함께 한 거리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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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게슈타포로 비유한 그림 이 그름을 서울 종로2가 버스 정류장에 붙였다. ⓒ 이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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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을 게슈타포로 비유한 그림. 이하는 이 그림을 서울 종로2가 버스 정류장 등에 붙였다. ⓒ 이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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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가 처음으로 거리를 그림판으로 삼은 건 2011128일 새벽. 서울 종로 2가 국세청앞 버스정거장이 작업터였다. 몹시 추운 날이라 그는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둘렀다. '이명박'을 나치의 게슈타포처럼 그린 그림을 붙일 때 가슴이 쿵쾅거리고 경찰이 덮칠 것 같아 무서웠다. 50장을 준비했으나 한 군데만 붙이고 이하는 현장을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하의 등 뒤에서 "! 쥐박이다" 소리가 나더니 "좋아요, 멋져요"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진을 찍는 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는 이, 정거장은 금세 달아올랐다. 매서운 추위가 슬그머니 뒷걸음칠 정도였다.

 

이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언제 겁먹었냐는 듯 풍자 그림 앞에서 자세를 잡고 잘 나오게 해주세요,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때 이하는 그림 한 장이 권력을 통쾌하게 조롱해 체증을 시원하게 뚫고 위로를 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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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전 재산 29만원 주장을 풍자한 그림 이하 작가는 이 그림을 서울 연희동 주택가에 붙였다. ⓒ 이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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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29만원 전재산 주장을 풍자한 그림 이 그림을 서울 연희동 담벼락에 붙였다. ⓒ 이하 제공

 

그 후 길바닥 화가 이하의 경력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전두환이 추징금을 안 내고 "29만 원이 전 재산이다"라고 버틸 때, 2012년 전두환 집 주변 주택가에 이를 풍자한 그림을 붙였다. 부러 날짜는 517일을 택했다. 순찰경찰에 붙잡혀 연희파출소로 끌려갔는데 경찰은 "잡아 둘 사안이 아니니 풀어주자, 그렇지 않다 훈방하면 문책을 들을 수 있다"며 논쟁을 벌였다.

 

결국 서대문경찰서에 보고가 들어갔고,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했다. 판사는 사안이 그럴 정도가 아니라며 기각했다. 경찰과 검찰은 다시 조사를 해, 벌금 10만 원이라는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하는 정식으로 재판을 청구했고 대법원에서 선고유예를 받았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혜정 변호사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분투한 덕이다.

 

'미친 정부' 그림을 뿌리며

 

이하는 24일 오후 3시 반경 조사를 끝내고 용산경찰서에서 나왔다. 이하는 가까운 남영역으로 걸어가면서 허기를 느꼈다. 일찍 도착해 부근 순대국집에 들어갔으나 몇 숟갈 뜨다 말았다. 처음 검찰에 나갈 때도 그랬다. 2012628일 부산에서 박근혜를 백설공주에 비유한 그림을 붙여 선관위로부터 고발이 되었다. 검찰로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전날 동료작가가 힘내라며 수원의 '행궁설렁탕'에 데려갔으나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불안했다. 혹 구속되는 거 아닐까? 온갖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 여유가 있지만 수사기관에 나가는 건 불편하다. 부당한 간섭에 숨이 턱턱 막힌다.

 

이하의 길바닥 화가 경력에서 단연 돋보이는(?) '미친 정부 수배' 그림 사건이다. 이하는 201410, 특별한 방식으로 세월호의 아픔에 동참했다. 그는 유가족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일대의 건물을 살펴 옥상문이 열려있는 동화면세점 건물로 들어갔다. 옥상으로 올라가 '미친 정부 수배' 그림 5000장을 한 움큼씩 한 움큼씩 바람에 날렸다. 35000장을 준비했으나 다 지고 올라가기엔 너무 많았다.

 

시각은 낮 12. 광화문광장에서 농성하던 세월호 유가족, 길 가던 시민, 세종대로를 달리던 버스의 승객들은 모두 하늘을 바라봤다. 햇살을 받은 종이더미는 춤을 추듯 내려오다 솟구치고 땅으로 곤두박질치다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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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정부를 찾는다는 수배전단 이하 작가는 이 그림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이 있는 빌딩 옥상에서 하늘로 뿌렸다. ⓒ 이하제공

 

이하가 마지막 더미를 옥상턱 위로 날리고 24층으로 내려왔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건물경비들이 우르르 내렸다. 맞은편 엘리베이터에선 세종로파출소에서 달려온 5명의 경찰이 내리더니 "경범죄 위반으로 체포합니다"라고 했다.

 

이하는 순순히 응했다. 세월호의 진실이 묻히고 유가족이 사찰까지 받는 현실, 그는 자기를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그림만으론 성에 안 찼다. 비상한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그림에 행위예술을 결합해 세상에 알려야 이 단단하고 나쁜 성채에 구멍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종로경찰서로 끌려가 10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이하는 친구에게 신촌의 적당한 빌딩에서 같은 시각에 그림을 날려달라고 부탁한 터라 서대문경찰서 형사가 종로경찰서까지 출장조사를 나왔다. 밤 늦게 종로경찰서를 나왔는데 신학철, 임옥상, 이철수, 이상호 같은 민중 미술계의 선배가 격려를 보내왔다. 많은 시민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검찰은 현주건조물침입, 옥외광고물법 위반 그리고 신촌에 배포를 지시했다고 교사죄까지 적용 무려 7개 항목으로 기소를 했다. 다른 죄목은 다 무죄가 되었지만 건조물침입은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이 확정되었다. 이하는 없는 살림에 피 같은 돈을 토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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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래: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 줄여서 '사수만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민초들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조명을 비추고 의미를 부여코자 할 것입니다./민병래는 1999년에 광고대행사 ‘황소와 나비’를 창업하여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저서 '민병래의 사수만보(현북스 2021간), 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2022, 원더박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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