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허영구의 '산길 순례'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록일 :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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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에서 올라오는 태풍 탓에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기상은 주말 연휴 동안 비가 내리는 것으로 예보되어 있다. 호명산은 청평역에서 출발해 몇 차례 올랐지만 바로 되돌아 온 탓에 능선 반대편에 있는 호명호수는 멀리 바라만 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호명호수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상천역에 내렸다. 건너편 경춘국도가 지나가고 있지만 역 주변마을은 조용하다.  조금 기다려 호명호수를 오르는 시내버스를 탄다. 20여분 동안 3.5km 정도 거리를 구불구불 올라간다. 

 

오랜만에 비탈길을 달리는 버스를 탔다. 도착한 곳은 호명호수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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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 양수발전소인 청평양수발전소의 상부 저수지로, 발전(發電)이 필요한 물을 청평호로부터 양수(Pumping)하여 저장 하기 위해 1980년 4월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경기도 가평균 소재 호명산 해발 538m 지점에 있으며 가평8경 중 제2경으로 선정되어 있다.  수려한 산세와 드넓은 호수의 아름다운 경관을 내방객들의 휴식처로 제공하고자 한국수력원자력(주)와 가평군간의 업무협약을 통해 2008.7.1.부터 개방하여 ‘호명호수공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총저수량 267만톤, 수심 30.2m”라고 소개하고 있다. 

 

“전력사용이 적은 심야시간대 전력을 이용해 아래에서 물을 끌어올려 호수에 저장했다가 전력계통 비상시에 물의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설비용량은 40만KW”라고 한다. 작년 우리나라 전기생산량 약 58만 기가와트(GWh, 1GW=10억W)와 비교하면 정말 적은 양이다. 고작 이 정도 전기생산을 위해 이 높은 산에 버스가 올라올 수 있도록 도로를 닦고 호수공원까지 만들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석탄, 원전 등 전체 전기생산의 과잉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을 찾았는데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문제를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잔디밭 조그만 안내판 글씨로 <호명산 유래>가 눈에 띈다. 

 

”옛날 한 스님이 길을 가다가 조종내(청평면 하천리)에 다다라서 바라보니 눈앞에 산자수려한 산이 나타났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잠시 쉬어 가고자 넓게 펼쳐진 멍석바위에 앉아 옆으로 흐르는 냇물에 씻고 있었는데 그 때 강아지 수놈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옆에 와서 앉았다. 

 

‘이 놈이, 난 네게 줄 먹을거리가 없다. 가라’고 하는 데도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앉아 있자 스님이 자리를 옮겨 손을 씻고 있었다. 그래도 강아지가 따라오면서 스님 곁을 계속 배회하며 떠나가지 않으니 스님께서 생각하기를 ‘그래, 이렇게 너와 만나는 것도 서로 인연인가 보다. 같이 한번 지내기로 하자’하고 근처 양지바른 곳에 절터를 잡아 움막을 짓고 불도를 닦으며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커 갈수록 보통 강아지와 다르게 호랑이의 모습으로 커다랗게 자라기 시작했다. 이 호랑이가 뒤산 바위에 올라가 ‘으르렁’ 거리며 울어대면 절 근처에 살고 있던 암호랑이가 ‘으르렁 어흥’하고 같이 울면서 산 정상에 있는 동굴로 향하여 사랑을 나누곤 하였다. 

 

이후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동굴로 몸을 피하여 화를 면하였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호랑이가 우는 산’이라 하여 호명산(虎鳴山)으로 부르며, 또한 그 호랑이가 올라가 포효하던 바위를 ‘아갈바위’라 부르고 있다. 그 이후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네들은 호랑이의 정기를 받아 수태하고자 이 산을 찾아 백일기도를 올리곤 하였다. 그 때 동네사람들이 몸을 피하여 화를 면했던 동굴은 지금의 양수발전소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호수가 만들어지면서 그 형태가 사라졌으며, 지금은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다."

 

이 정도 전설이면 한국수력원자력(주)이 전기생산을 위해 건설한 명칭인 호명호수 공원이 아니라 민중의 애환이 서려 있는 ‘호명산 호랑이 공원’으로 지었으면 좋았을 법 했다. 인공호수를 만들면서 호랑이 동굴도 없애버렸다 하니 안타깝다. 

 

호수 주변에는 궂은 날씨에도 자전거타기 등 주말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매점에서 컵라면 하나 먹고 산행을 준비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다행이 바람이 불지 않아 일회용 우의를 입은 채 우산까지 펼쳐 들고 산행을 시작한다. 호명호수공원 둑길을 건너자마자 호명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기 나타난다. 정상까지는 3.67km다. 

 

능선을 걷기 시작하자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진다. 나뭇잎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청명하다. 잎들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늦가을 낙엽으로 떨어져 수도 없이 등산객들에게 밟힌 나뭇잎 가루가 빗물에 젖어 땅에 스며들고 있다. 산이 온통 비에 젖는 바람에 앉아서 쉴 수가 없으니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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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전체를 구름이 덮고 있으니 주변 전망은 아예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운무 속에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은 마치 몽환 속 영상처럼 신비롭고 아름답다. 중간 중간 사진촬영이나 영상은 빼놓을 수 없다. 결국 빠른 시간에 정상(632.4m)에 당도했다. 청평역에서 오를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비 내리는 오후라 등산객은 아무도 없다.

 

인증샷 찍을 내용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대충 우산을 받쳐 들고 급한 대로 몇 장 적는다. 그리고 간식으로 빵과 커피를 마신다. 우의와 우산을 썼지만 비구름 속을 헤쳐 온 탓에 배낭과 몸 전부 축축해진 상태다. 서둘러 하산한다. 청평역까지는 2.9km다. 하산 도중 멋진 청평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지만 짙은 구름이 때문에 볼 수 없다.   

 

서둘러 내려오니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돌아서 호명산을 바라보았으나 구름 때문에 전체 봉우리를 바라볼 수 없다. 조중천(청평유원지) 다리를 건너 청평역에게 당도한다. 여유롭게 기차표를 예매 한 뒤 식당에 들러 얼큰한 두부전골을 먹는다. 몸의 추운 기운이 누그러진다. 청량리 가는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금방 눈꺼풀이 내려온다. 

 

484회,  호명산(가평), 2023.5.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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