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백무산
등록일 :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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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삼 년 마치면

 

십 년은 군대시절 얘기를 한다

 

몇 달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왔다면

 

허구헌 날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얘기다

 

생각해 보라 그런데
우리에게 노동의 추억이 있는가

 

십 년 아니 삼십 년 노동을 해도

 

누가 그것을 그리운 추억이라 하는가

 

밥과 희망이며 목숨의 진한 흔적들이

 

어째히 아련히 돌아 보이는 추억의 누더기도 못 되는가

 

어째서 그 시절, 비굴한 치부가 되고

 

어째서 그 세월, 묻어 버리고 싶은 아픔이 되고

 

치욕이 되고 더러움이 되고 원한이 되는가

 

추잡한 싸움의 기억만 되살려지고

 

비굴한 패배의 아픔만 만져지고

 

잃어버린 젊음의 울분만 남았는가

 

성숙 뒤에 되새겨지는 것이 추억이라면

 

우리 생명은 분명 노동이 갉아먹고 있었다

 

우리의 빼앗긴 노동을 위해

 

우리는 골백 번 뉘우쳐야 한다

 

그러나 그러나 이제 보아라

 

우리에게도 이런 추억이 남으리라

 

더없이 값진 추억이 남으리라

 

산맥도 떨게 하는 굳센 함성들

 

동지를 위해 흘린 피의 값진 기억들

 

투쟁 속에 다져진 성숙의 쾌감

 

투쟁으로 전진하는 역사의 발자국소리들의 기억

 

우리에게 값진 추억으로 남으리

 

지금 이 따위 것들도 골백 번 뉘우치자

 

18년 전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를 펴내며 시인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86년 이전의 것들이다. 그리고 서서 쓴 것들이다”. 그 시절, 젊은이들은 서서 살았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추억이 없다. 이삼십 년 죽어라고 일했는데, 다들 기억상실증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그래서 온 것은 아닐까. 시집은 네 귀퉁이가 바랬지만, 시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꼿꼿하게 서 있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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